바다경전/ 박창기
뭍에 있어도 마음은 자꾸 바다로 달린다. 뜻도 모르면서 바다경전에 푹 빠져서는 읽기만 했었던 나에게 최초의 시는 바다였다. 온몸으로 읽는다고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교만에 찌든 허상에 매달려 있을 때 파도 꼭대기에서 떨어지던 나를 보고서는 경전의 가장자리에서 헤매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려 준 것도 파랑이었다, 파랑은 바다만이 뱉어내는 언어, 그 언어의 속살과 갈비뼈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슬 퍼런 채찍을 들었지만 외면한 쪽은 나였다. 만신창이가 된 이즘에 와서야 바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바람은 나보다 경전을 더 잘 읽었다. 바람은 파랑을 수도 없이 데리고 경전의 구석구석을 다독이듯 읽었다.
그 큰손으로 바다를 다루는데 파도 같은 경전이 어쩌지 못하는 걸 보면 보잘것없는 나를 변화시켜야한다는데 동의하고 만다. 겨우 몇 장의 경전을 넘겼을 뿐인데 심연의 끝장을 넘기기까지는 몇 번의 허물을 벗고서야 다시 나게 될지 이즘 해변에 서면 파랑이 남긴 언어의 파편을 줍는 것이 고작이다. 유년의 빛바랜 꿈이 잠들어 있는
- 시집 『바다경전』중에서 -
미당은 23년간 자기를 키운 게 팔 할은 '바람'이라 했지만 시인에겐 반세기 넘도록 그의 시심을 일군 경작지가 바다인 것 같다. 미당의 어투를 빌자면 어떤 이는 바다에서 당당함을 읽고 어떤 이는 바다에서 용기를 읽고 갔으나 시인은 젊은 시절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겸손을 뒤늦게 읽은 듯하다. 그래서 박창기 시인을 가까이에서 보면 당당함과 순수함이 한 몸 안에 고루 섞여 녹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정신 아니고는 ‘詩하늘’이라는 경제적 대가없는 시 보급 운동에 지금까지 13년간이나 주역으로 매진할 수 있었겠나 싶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묻힌 어느 주교의 무덤 앞에 적힌 유명한 비문이 있다. "내가 젊고 자유로울 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불가능했다. 황혼의 나이에 이르러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으나 그마저 허사였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켰다면 그걸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적어도 시인에게 깨달음의 시점은 이 보다는 훨씬 앞선 것 같다. 깨달음의 영어 표현은 '밝아짐(enlightenment)'이다. ‘詩하늘’운동의 최초목적이 좋은 시로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나, 그 꿈이 얼마나 채워졌는지는 계량하기 힘들다. 파랑주의보가 수십 번 더 발령되고 바람은 늘 속독으로 앞질러 경전을 읽어가겠지만 꾸준한 자기갱신과 겸손으로 바다 앞에 선다면 세상은 조금씩 밝아지리라 믿는다. 그 소망을 밝히는 촛불 하나 가만 따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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