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애가 / 엄원태

모든 2 2018. 6. 17. 14:32

 

애가 / 엄원태

 

이 저녁엔 노을 핏빛을 빌려 첼로의 저음 현이 되겠다.

결국 혼자 우는 것일 테지만 거기 멀리 있는 너도

오래전부터 울고 있다는 걸 안다

네가 날카로운 선율로 가슴 찢어발기듯 흐느끼는 동안 나는

통주저음으로 네 슬픔 떠받쳐주리라

우리는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다

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가는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맞추지 못한 마른 입술로 ......

 

- 시집 '물방울 무덤' 중에서 -

 

 

 비오는 날,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첫 사랑의 마른 입술을 힘겹게 추억한 채 양껏 무게를 내려놓고 들었어야할 음악을 그리 듣지 못한 건 불운이고 불찰이며 무지였다. 속으로 소리를 삼키며 우는 바흐의 ‘샤콘느’를 듣기 전까지는 소리를 죄면서 우는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 비탈리의 ‘샤콘느’를 애잔하지만 그저 평범한 바이올린 곡으로 들었다.

 

 오래전부터 울고 있었던 날카로운 선율이 가슴 찢어발기는 흐느낌인줄 몰랐던 거다. 바흐의 중후한 울음은 확실히 남성적이었다. 첼로의 낮은 음이 통주저음으로 비탈리의 슬픔을 떠받쳐주고 있었다. 따로 울지만 ‘함께 울고 있는’ 거였다. 한없이 내려와 가랑이 사이에서 내리긋는 보잉은 내장의 온 기관과 피부의 솜틀까지 전율케 한다.    

 

 이성복 시인은 음악이란 시에서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라면서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혼자 울지만 유행가건 클래식이건 음악에 빠져들 땐 그것이 다 내 이야기고, 내 슬픔에 이바지한 선율로 들린다. 그 때 누군들 '외따로 떨어졌지만 함께 울고‘있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특히 남자에게는 ’오래 말하지 못한 입, 잡지 못한 가는 손가락, 안아보지 못한 어깨, 오래 입 맞추지 못한 마른 입술‘ 사이로 복제되지 않은 사랑은 끝없는 비상을 한다. 현의 슬픔이 가랑이보다 더 깊은 골짜기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