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이규리
몸이 가느다란 것은 어디에 마음을 숨기나
실핏줄 같은 이파리로
아무리 작게 웃어도 다 들키고 만다
오장육부가 꽃이라,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잘 보라
흔들리면서 흔들리면서도
똑같은 동작은 한 번도 되풀이 않는다
코스모스의 중심은 흔들림이다
흔들리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중심,
중심이 없었으면 그 역시 몰랐을 흔들림,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이
저보다 더 무거운 걸 숨기고 있다
- 시집 '뒷모습' 중에서 -
코스모스를 노래한 시인은 많다. 어느 시인은 길가의 무리 진 코스모스 앞에서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된듯하다 하였고, 김억은 늦가을 찬바람에 시달리는 게 하도 애연해 손잡으니 지고 말더라고 하였다. 누구는 코스모스를 청상의 애상이 미소로 피어나고 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 못해 토라진 천사의 물기어린 눈동자라 했다. 그러나 이규리 시인은 이런 감상적 물기를 다 빼고 행동심리학적 부검을 위해 매스를 들었다.
코스모스는 그 여린 품성으로 인해 가는 여인네를 연상케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인 ‘살사리꽃’은 가을바람결에 살살 흔들리는 연약한 몸의 이미지에서 연유되었지 싶다. 시인은 ‘기척만 내도 온 체중이 흔들리는/ 저 가문의 내력은 허약하지만’ 그 흔들림은 단순반복동작이 아닌 중심잡기였으며, 그 중심은 가히 우주를 떠받칠만한 조화이며 중심임을 간파했다. 명색이 가을의 전령이고, 신이 최초로 빚은 꽃이라는 전설이 그냥 얻어진 수식은 아니었구나.
하지만 지금은 조금 유치해져야겠다.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마른 체형’에 그런 무거운 것 다 숨기고 눈썹을 간질일 가벼운 속삭임이다가,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기도 한 이 코스모스는 철길 옆에서, 혹은 강둑에서 연애를 부추기고 들쑤시기도 한다. 이제 곧 단풍에 밀릴텐데 살살이꽃 핀 좁은 길을 걷거나 시속 20키로의 정숙주행이라도 하고 싶은데, 꼭 영혼의 파트너 아니라도 어디 오른쪽 동행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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