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앉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창비시선집 <가만히 좋아하는> 가운데 -
딱히 맥 풀어질 일이나 느닷없는 외로움이 찾아든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휴대폰도 내던지고, 손목시계도 풀고, 안경도 벗어버립니다. 와이셔츠의 단추도 몇 개 풀어재끼고요. 내 몸 모두 헐렁히 연 채 빈둥거리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는 게지요. 아니 곁을 두리번거리는 것조차 번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지로 평온을 찾고, 안정을 취할 그 무슨 사연이 있어서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럴 때는 이미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냥 있어주는 것으로 돕는 겁니다. 눈빛 교신도 필요치 않습니다. 가만히 앉은 자리 옆으로 내려앉는 낙엽처럼. 나도 그에게 달리 해줄 것이 없기에 그도 그냥 가만 나를 내버려두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적요의 힘으로 같이 고맙다고 힘을 뺀 눈을 마주칩니다. 고개도 까닥하지 말고요. 그냥 고맙다고 말입니다. 실은 이런 것들이 다 고맙게 느껴질 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지고 긍정의 힘도 생기는 법이지요. 때로 산다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닐 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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