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法 / 권기호
그 산정은 한번도 얼굴을 드러낸 일이 없다
노련한 알피니스트들도
그 발밑에서 점심이나 먹고
돌아올 뿐이다.
그 미립자의 얼굴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죽은 나의 발톱에서나
뛰는 심장에 이르기까지
움직이고 있는 그 무엇이란 것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 우주의 벽은
어디쯤에서 닿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지금 보내고 있는 가장 강한 전파로도
다만 은하계와 은하계가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만
추측할 뿐이다.
- 대구시인협회 발행 '1999년 대구의 시'-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게 된다고 괴테는 말했다.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는 말과도 통하며, 그 방황은 더 소중한 것과 높은 곳을 향한 모색의 의미로도 읽혀진다. 그러나 끊임없는 수련과 탐구를 통해서도 결코 올라설 수 없는 산마루가 있다. 오르지 못함은 물론 그 진면목은 볼 수도 없어 다만 그 무릎 아래에서 잠시 노닐다 돌아올 뿐이다.
詩가 아무리 저 높은 곳을 지향하더라도 그 음역에는 한계가 있다. 시인의 詩法은 단순히 시의 정의나 방법론이 아니다. 시의 율법을 넌지시 일러주며 금을 그어놓았다. 그래서 정상의 시란 없는 것이며, 정상에 올라선 시인도 당연히 없다. 대구의 대표적 원로인 권기호 시인은 '장자와 플라톤의 안경을 훔쳐 끼고 밖에 나와 마음대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일부 겸손 모르는 시인을 향해 '기저귀나 채워줘야 할 놈'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나 시가 감당해야할 용량은 '짐작하고 추측할' 뿐이지만 무궁무진이고, 시의 영역은 우주를 넘볼 만큼 광활하다. '우리들은 내일을 꿈꾸는 자,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는다.' 고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말했듯이 시인은 다만 끊임없이 주파수를 맞추고 전파를 쏘아 올리며 꿈을 보탤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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