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식당의자 / 문인수

모든 2 2018. 5. 19. 15:34

 

식당의자 /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

 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

 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

 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 시집<'배꼽' 창비시선> 제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

 

 

 요즘에도 한쪽 팔걸이만 있는 의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7~ 80년대의 사무실에는 그런 의자가 있었다. 나도 한동안 오른 쪽 팔걸이만 있는 그런 의자에 앉아 사무를 보았던 적이 있다. 그 의자를 차지하기 전에는 그냥 직각의  맨 의자였고, 그 의자 다음으로 양쪽 팔걸이가 있으며 소박하게 돌아가는 의자에도 앉아 보았지 싶다. 등받이 깊고 빙글빙글 잘도 돌아가는 차장님의 회전의자를 부러워 하면서. 재낄만큼 재껴진 의자에 몸을 푹  맡긴 채 양 다리를 책상 위에 꼬아 얹고 깊은 사색에 돌입한 부장님의 의자를 투기하면서.     

 

 한 때 생맥주를 전문으로 파는 프랜차이즈 호프집이 창궐했던 적이 있었다.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고 객장을 최대한 활용키 위해 손님들이 앉는 의자는 등받이도 없고 겨우 엉덩이와의 접점 면적 만을 고려한 좁은 이동식 빙글의자였다. 그 의자엔 얼른 마시고 다음 손님을 위해 자리를 비워 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요즘엔 그런 의자를 객장에 둔 채 의도한 바대로 몇 회전씩 굴리며 호황을 누리는 호프집은 별로 없지싶다.        

 

 의자를 소재로 쓴 시는 많다. 내가 읽은 시와 내가 얼른 의자와 함께 떠올린 단상 말고도 더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더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의자가 상징하고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아 사유의 응시도 많다는 얘기다. 문인수 시인이 보았던 식당 의자는 야외용 간이의자다. 경우에 따라 보송보송한 햇빛이 내려앉는 해변과 평수 넓은 잔디밭과 물빛 고운 수영장 같은 장소와 잘 어울리며, 실제로도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의자다. 그러나 시에 등장한 의자는 같은 종류지만 돼지창자를 구워 파는 막창집이거나 삶은 오징어 숭숭 썰어 초고추창에 버물인 안주와 함께 소주를 파는 천막 식당의 흰색 간이 의자였겠다.      

 

 그래서 식당의자는 아무런 계급이 없다. 누구나 먼저 엉덩이를 들이대기만 하면 임자다. 한때 덜거덕거리며 부산하게 끌려다녔던 이력은 이제 오간 데 없다. 속을 다 파내고 뼈만 남아 앙상한 네 다리가 비로소 또렷하게 보인다. 몇 날 며칠 비를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도 않는다. 오래된 충복 같기도 하고 인도의 요가승같기도 한 그 의자에게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란 별칭이 조용히 씻긴 굿 한 판 홀로 치룬 '전문가'에 의해 주어진다. 참으로 대단한 사유의 깊이며, 시퍼렇게 날선 시선이 아닐 수 없다.   

 

 문인수 시인은 일찌기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란 말을 했다. 하필이면 장마 기간에 수성못을 찾은 것 부터 예사 행보는 아니지만 못물이 잔잔할 때였더라도 사물의 뒤집어진 면과 그늘을 전문으로 포착해내는 시인에게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자가 만약 흰색이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란 생각은 해본다. 우선 살 다 털어낸 뼈다귀로 보였을까 라는 의문부터 갖는다.

 

 전에 문인수 시인과 단체 산행을 했을 때 시인이 하신 말씀 하나가 생각난다. "요즈음 산에는 온통 검은 등산복 입은 사람이 천진데 대자연과는 전혀 배색이 맞지않고 기이하게 느껴져 이런 현상을 잘 정리하면 시가 하나 나올 수도 있지" 하기에 "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마치 산에서 어린이용 영화에 나오는 특공대나 외계인을 보는듯한 이질적인 느낌이랄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자연의 풍광 보다는 역시 엉뚱한(?) 사유에 더 심취하신 분이구나 생각했었다.

 

 문인수 시인이 이 마른 장마에 궁리중일 올 여름휴가도 아마 저 식당의자의 폼새와 닮아있을 것이다. 낮게 낮게 임하면서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뼈저린 생을 건져올려 그 궁핍과 소박함을 토닥거리며 위로해줄 언어를 발굴해 내는 것으로 여름 한 철을 보낼 것이다. 플라스틱 성형으로 단순하게 찍어낸 저 식당의자를 저토록 환한 여백의 결무늬로 다시 찍어내듯, 요가 수행승의 몸처럼 숭고한 동작을 만들어내듯 말이다.

 

 그래서 시인이 미당문학상 수상소감에서 '내일 다시 시를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라고 한 말씀은 소위 비주류 시인으로서 그동안 맺힌 한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었지, 결코 그 상의 크기로 감읍하거나 감격에 복받쳐서 한 말실수(?)는 아니었다고 굳게 믿는다. 작품집도 낼 만큼 내고, 미당문학상 말고는 상도 탈만큼 타신 분인데 단지 늦깎이 등단, 학력, 지방거주 라는 것들이 핸디캡으로 작용한다는것은 가장 고결한 정신적 가치를 숭상하는 문학동네에서 납득키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2년 연속 후보에 오르고 3년 째(제7회) 후보에 오른 뒤 어느날 몇몇이서 함께 밥을 먹는자리에서 중앙의 한 유력한 주류시인으로 부터 들은 얘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최측 입장에선 흥행이란 요소도 있고 해서 나이와 등단경로, 학력과 지명도 시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는 입장이라 문시인의 경우 작품은 손색이 없지만 아무래도 후보군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란 말을 들은 바 있다면서 "나도 그런 부분 이해는 한다"는 일정부분 동의한다는 취지의 말은 하였지만 내심으로 어디 100% 수긍할 내용이었겠나.

 

 아무튼 이제는 그런 질긴 한 다 털어내고, 'TV책을 말한다' 같은 곳에서 실로 오랜만에 시집을 소개하며 매상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며, 문인수 시인의 존재 만으로도 문향 대구의 자존심을 세우고 자부심을 획득하였으니 온갖 것 다 견뎌낸 저 식당의자처럼 스스로 날개를 활짝 펼치는 전문가의 그 특별한 솜씨만 오롯이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