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 6 / 김용락
가만히 생각해보니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달]의 윤석중 옹이 여든의 노구를 이끌고
새싹문학상을 주시겠다고
안동 조탑리 권정생 선생 댁을 방문했다
수녀님 몇 분과 함께,
두 평 좁은 방 안에서 상패와 상금을 권 선생께 전달하셨다
상패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권 선생님 왈
"아이고 선생님요, 뭐 하려고 이 먼 데까지 오셨니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
내사 이 상 안 받을라니더......"
윤석중 선생과 수녀님들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서울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오전
안동시 일직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소포로
상패와 상금을 원래 주인에게 부쳤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봉화서 농사짓는 정호경 신부님
"영감쟁이, 성질도 빌나다 상패는 돌려주더라도
상금은 우리끼리 나눠 쓰면 될 텐데......"
김용락 시집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문예미학사, 2008>
시집 뒷표지에서 고은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은유니 외율이니 하는 시적 기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다. 그래서 시인 스스로도 '시같지 않은 시'라고 했을 것 같기도 하다. '조탑동'은 지난 해 세상을 떠난 '몽실언니'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사셨던 안동 시골 마을 이름이다. '조탑동에서 ...' 연작시는 시의 제목 그대로 권정생 선생에게서 '주워들은' 그대로를 옮긴 일종의 르포 시인데, 김용락 시인은 그 말씀들을 그냥 흘려듣지않고 꼬박꼬박 새겨들은 뒤 이를 우리들에게 조곤조곤 다시 전하는 형식을 취했다.
상을 만들어 준다거나 카메라를 들고 우루루 몰려 조탑동을 방문하는 일 따위가 선생에게는 모두 속물적 전략전술 쯤으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물론 새싹문학상이나 환경단체의 방문을 두고 그리 생각하신 것은 아닐 테지만 일상에서 우리들이 숭고하고 거룩하며, 순수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 가운데 많은 것들이 청빈한 성자의 삶을 살아가는 선생의 눈으로 볼라치면 씨잘데기없는 짓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정생 선생께서 간구한 삶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의 오두막집과 십여년간의 교회 종지기 생활, '김서방'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한 마리와 더불어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신 괘적에서 유추하자면 우선 물질이나 안온한 일상의 행복은 전혀 아니올시다 임이 분명하다. 동화작가로서의 선생님이 아이들과 자연에 대한 마음이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되는 바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와 평화는 물론 선생의 작품을 보면 가난하고 소외된 평범한 이웃과 무고하게 고난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선생은 세상을 뜨기 전, "인세는 어린이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남북한이 서로 미워하거나 싸우지 말고 통일을 이뤄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시의 뒷부분에 언급된 정호경 신부님은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쓴 유언장에 다른 두 분의 이름과 함께 재산관리인으로 지목받은 분이시다. 내용이 좀 긴듯 싶지만 재미(?)도 있고해서 유언장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 이 사람은 술은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신부. 봉화군 명호면 :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 세번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 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진실이 가득 배어있으면서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김용락 시인은 이런 선생의 삶과 생각을 우리들에게 곧이곧대로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시인이 '주워들은 시 같지않은 시' 몇 편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시대에 이런 권정생 선생을 가졌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나 선생을 가진 것으로 선생께서 간구하는 그런 세상이 냉큼 오지는 않는다. 김용락 시인이 마련한 유리용기에 선생의 투명한 삶과 생각을 알짜배기로 담아 전하는 것으로 세상이 크게 달라지리란 믿음을 갖기도 어렵다.
선생의 사후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등에서 얻어지는 인세가 만만치 않을텐데 과연 그 눈먼(?) 돈의 규모가 얼마일까 궁금해하는 속물적 관심하며, 그 돈의 행방이 과연 유언의 내용대로 쓰여지고 있을지 의심하는 통속적 눈초리 밑에서, '무지한 트랙터 밑에서 냉혹한 신자유주의 아래서 교양으로 위장한 당신의 무관심 속에서'('마늘을 갈아 엎다' 일부) 선생의 말씀이 씨가 되고 거름이 되어 대지를 꽃피우기란 참으로 쉽지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논밭과 바꿔먹은 김용락 시인의 세상 보는 안목과 마늘 팔아 대학 다니고 교수 되고 정치를 도모했던 김용락 시인의 깃발이 보이지않는 민중시를 통해 아직은 얻어들을 게 호박넝쿨처럼 많은 세상이다. 그 멈춤의 시기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김용락 시인에겐 '조금 가혹한 것 같지만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인생 기왕 풍찬노숙인 걸 그게 역사인 걸' 어떡하랴. 당신의 시에서 말하는 포즈처럼 아직도 그렇게 세상은 모순과 대립 투성이인걸 어쩌랴. 이하석 시인의 말씀처럼 '김용락 같은, 지독·지극한 회의론자이면서도 낙관론자'가 아니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랴.
이제 우리는 소주처럼 친근하고 맑고 차갑고 들이키면 따뜻해지는 그의 말을 가만히 가슴 모으고 들어주는 실속있는 시간만 좀 만들면 쓰겠다. 정작 시같지 않은 시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상황에서 김용락 시인의 '시 같지않은 시'를 만나는 것은 삶같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회의하는 우리들을 더 짙게 회의토록 하고 어쩌면 획기적으로 태도를 바꾸게될 동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뭐 꼭 태도나 인식의 변화까지는 아니라도 내일 저녁 '시하늘 시낭송회'로 발걸음 하여 다시 그의 말을 듣는 것이 그리 씨잘데기없는 짓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저 세상사람이 된 친구 신현직교수를 그의 시집에서 다시 만난 것 또한 낭송회 진행을 맡은 나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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