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봄, 모종 / 진란

모든 2 2018. 5. 19. 14:55

 

봄, 모종 / 진란

 

갔다, 그는 오고싶으면 왔다가 금새 가버린다.

하고싶은 말이 하도 많아 전화기를 들었다놨다

눈 앞에서는 속내 드러날까 눈길을 피하는데

왜 또 무슨 상상을 하길래

그러냐고 오히려 핀잔을 튕기는구나

새로 옮긴 그 땅에서 뿌리를 내리느라

나름 애간장 조이며 사는 것이더냐고

바람만 건듯 불어도 밤새 뜬눈으로 지새는걸

네게로 가는 신호음은 부재중이고

잔뜩 부은 눈두덩이에 실핏줄 선 마음을 넌

 

그래, 너도 더 살아보아라 꼭

요담에 너만큼만 길러보아라

봄바람에 가방도 잃고 술에 쓰러져잤다는 말

네가 간, 그림자 뒤에 오금오금 파고드는 진자리

속곳까지 젖어버리는 빗물에 봄은 피어나겠지

환한 햇살에 마른 자리 버석거리는 실어의

흙두엄, 그 봄빛 속에 너는 오고싶으면 왔다가

가버리는 짤막한 해후, 그 막연함을 아는지 

 

 

 

 뽀빠이 이상용이 진행했던 군 장병 위문 방송인 '우정의 무대'란 텔레비젼 프로가 있었다. 어느날 한가롭게 TV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보는데 마침 이 프로의 하일라이트격인 "엄마가 보고플 때~"음악이 나오자, 같이 보고있던 큰 아들아이가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게 아닌가. 하기야 그냥 듣기만 해도 누선을 자극하는 가사와 멜로디라는 생각은 그 이전에도 했던 것 같다. 그때 속으로 누가 넘쳐서 주체못할 모정이 있다면 우리 아이에게도 조금 나눠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진란 시인의 아들자식에 대한 정은 애틋한 연인 이상의 것으로 읽혀진다. 시의 첫부분인 '갔다'는 마치 절절히 사랑하는 연인이 간절하게 내민 손 탁 뿌리치고 떠날 때 지르는 탄식같다. 돌아서면 또 보고싶고 하고픈 말도 많은데 '금새 가버린' 그는 참 야속하다. '전화기를 들었다놨다' 조바심 피우는 것 하며, 손길 닿지않는 곳으로 옮겨간 그를 향한 그리움과 '바람만 건듯 불어도 밤새 뜬눈으로 지새는' 애간장은 영락없는 연인의 감정 그것 이상이며, 받지않는 전화에 '잔뜩 부은 눈두덩이'하며 '실핏줄 선 마음'은 꼭 실연이라도 당한 모양새다.

 

 엄마의 자식 사랑은 보편적 진리여 지극선이긴 하지만 시인의 그것은 유난히 지독하다. 2연에서는 '그래, 너도 더 살아보아라 꼭/ 요담에 너만큼만 길러보아라'라며 일반론적 모정으로 조금 후퇴하는 듯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가 떠나간 '그림자 뒤에 오금오금 파고드는 진자리'에서 '속곳까지' 다 젖고 만다. 가히 극진한 모종이며, 모정이 아닐 수 없다.

 

 시를 읽으면서 어쩌면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가 모두 이와같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아비를 비롯해 가족 사랑은 물론이고 문학에 대한 열정, 적극적인 세상 살이, 꽃 한송이 피우는 일에 까지 이 시에서와 같이 진을 뺄 만큼 감성의 세포가 정열적으로 작동할 것만 같다. 시인의 관상(?)에서도 충분히 그런 징후는 발견된다. 강낭콩같은 붉디붉은 진보라의 정열이 느껴지는...삶의 곳곳에서 발휘되는 그 진함과 쫀득함을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그 뜨거움과 열정이 다 좋을 순 없다. 그만큼 필연적으로 상처가 되어 돌아올 개연성도 크므로. 특히 아들 자식 사랑은 더욱 그렇다. 이 시를 나눠 읽은 가까운 독자들은 데미안을 얘기하기도 하고, 짝사랑이 느껴진다고도 하고, 이제는 하늘과 바람에게 맡겨두고 조바심은 거두라는 조언도 하면서 위로를 보내지만 사실 그건 위로나 동감의 표시가 아니라 현실적 처방이다.

 

 시인의 아들이 군복무 상황인지(전에 그렇게 들었는데 제대 여부는 모르겠다), 어디 원지로 유학을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개의 건장한 대한민국 청년은 엄마의 도가 넘치는 관심과 사랑은 부담스러워한다. 더욱 모종을 심고 보살피는 육종방식같은 사랑에는 질려할 지도 모르겠다. 의심할 것 없이 그 당시 '엄마가 보고플 때~'노래를 슬그머니 피했던 나의 큰 녀석 같은 놈은 시인의 자식사랑을 부러워할 테지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시인의 아들은 이 시의 제목 '봄.모종'만으로도 무척 민망해 할 것 같다. 

 

 차라리 유머적 비유로 그 부담을 좀 흡수할 수 있는 '고추 모종' 이나 '고추 모종 성장기'라면 몰라도...그게 아니면 듣고있는 노래의 제목 '이 죽일 놈의 사랑' 정도라야 더 합당하고 근사하며, 독자와 아들로 부터 긍정을 이끌어낼 수 있지않을까?  흔히 엄마의 옷고름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를 마마보이라 하듯이 그 역할 전환 개념인 보이마마(이런 용어가 실제 존재하지는 않지만)가 되지않으려면 시인은 조금만 더 늠름해져야겠다. 정열적인 감성 세포의 준동을 조금만 눌러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