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의 화훼농 김씨의 꿈/ 고재종
그래! 나도 이참에 꽃농사 거두면 아반떼 하나 뽑겠다던,
그 차에 읍내 태양다방 화자년 태우고 한바탕 씽씽 밟겠다던,
나라고 맨날 일로만 살 수 있겠느냐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가 키운 장미처럼 붉었지. 아무렴! 그렇게 달려서,
뭐 도회놈들만 줄창 가는 게 아닌 가든집에도 가겠다던,
가서 갈비도 굽고 포커도 치겠다던,
사람일 모르는데 언제까지 이럴 순 없잖느냐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가 키운 백합처럼 환했지.
그래그래! 그러곤 샛강변 러브호텔로 직행하겠다던,
그 쌩통같은 화자년 팍팍 죽여주겠다던,
가능하면 그 누구라도 구워삶아서,
국민 스포츠의 하나인 골프도 배워야겠다던 화훼농 김씨의 꿈,
그의 하우스 안의 황국처럼 부풀었는데, 그랬는데,
아뿔사! 이 웬 재변인가,
그날 그가 그냥 설레는 사이 전기조작을 잘못해서,
온풍기가 터져서, 화훼농 김씨의 꿈, 그 화염으로 더욱 휘황했던,
그날따라 뒷동산 골프장에선 그 꿈의 백구도 더욱 눈부시게 날았다던,
골프군 러브호텔면 가든리의 이야기......가 사실이냐구요?
정말 사실이냐구요?
고재종 시인은 1957년 전라도 담양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0여년 전 광주로 거처를 옮기기 전 까지만 해도 고향에서 3,000여 평의 벼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던 농부 시인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시선이었겠지만 그의 초기 시는 내내 농촌정서의 형상화에 주력해왔다. 눈부신 언어감각으로 농촌의 내밀한 정경을 보여줘 80년대 이후 농촌시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는 '시하늘' 시낭송회에도 두어번 초대받은 적이 있으며 그때의 인연으로 종종 대구에 발걸음할 일이 있을라 치면 시하늘 사람들과 좋아하는 술자리를 가지기도 하였는데, 건강상의 이유와 "너나 시골에서 살지 아들까지 촌에서 키울래?" 하는 주위의 권유와 핀잔 때문에 도회지로 옮겨 살고는 있지만, 그의 눈치를 살펴보면 뭔가 캥기는 게 있는 듯 하다
농촌을 떠났어도 그의 마음의 눈은 여전히 앞들의 나락밭과 계곡의 물너울, 집 근처의 탱자울과 능금밭 주변을 서성인다. 오히려 농촌시, 혹은 농민시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의 합일을 노래하는 자연시,
생명시의 경지로 드넓게 나아가고 있다는게 평론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여기 소개한 골프군...은 풍자시로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사실 농사짓는 일은 하느님과 동업하는 일이다. 매년 가을걷이를 앞두고 홍수니 태풍이니 하여 도시 농촌 가릴것 없이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주었지만 농촌 사람들의 고충과 안타까움을 나처럼 직접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도시민들이 제대로 알기나 할까
사실 농산물의 가격에는 중요한 원가 구성 항목이 하나 빠진 것 같다. 수시로 찾아오는 이러한 재해와 흉작에 따른 손실 보전부분을 평상시 원가에 반영하여 가격이 책정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도시 서민 가계에 곧장 부담을 주게될 것이고, 빌어먹을 땅떵어리 큰 나라에서 할랑하게 소출된 농산물과는 가격 경쟁이 안될테니 그것도 불가능한 노릇이긴하다
그러나 광고비니 업무추진비니 비자금이니 하여 사진 몇장에 모델등 수억씩 팍팍 선심쓰는거 하며, 넥타이 메고 룸살롱가서 써재끼는 돈이며 목에 힘주는 사람한테 갖다바친 뭉칫돈까지 간접비용이라하여 다 원가에 포함시킨 공산품에 비하면 불공평하기 그지없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노동은 농사이며 그것을 업으로 하는 농부는 가장 깨끗하고 뜻뜻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장 기피하는 직업이 된지 오래다. 다행히 최근에는 과학적인 규모의 영농 방식이 많이 도입되어 농촌에도 하기에 따라서는 외래 농산물과도 경쟁력을 갖춘 농사를 지을 수 있다지만, 그래서 외국산 키위와 경쟁력을 갖춘 다래 농사 성공 하나로 장관에 발탁된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하늘이 내린 재난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글로벌 시대에 싼 농산물을 앞세운 나라들과의 자유무역 협정도 피할 재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에서 강기갑 민노당 후보가 여당 실세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상징성과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념과 정치 노선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한미 FTA 비준을 코 앞에 두고 근심으로 가득한 농심이 선택한 결과라 하겠다.
현실적으로는 한미 FTA 등을 피해갈 수 없다 하더라도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농촌 경제를 보호하는 농촌정책이 무엇보다 선행되어 농촌이 살아야 자연이 살고 백성이 살며 나라가 산다는 인식을 정치인들이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가장 정직한 직업으로서 뿐 아니라 보람있는 농사꾼으로서 땅값 따위에 자존심 거덜내지않고 굳세게 허리를 펴고 살아가는 농심으로 환한 농촌, 차마 꿈에도 잊힐리 없는 그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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