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모든 2 2018. 5. 12. 11:01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박기평이란 본명을 두고 '노동자 해방'이란 의미의 필명을 쓰는 박노해. 민중시인, 저항시인이라고만 알고 있는 이들에겐 그의 시라고 얼핏 믿기 어려운 구석도 있겠다. 하지만 가만 들어보면 세상사는 태도에 대한 정갈한 담론이 담겨있다. 구원과 답들은 기꺼이 우리가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기 위해 일관된 노력을 한 바로 그만큼만 오는 것이니.

 

 저 아득하고 먼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들을 보면 아직과 미래 사이에 맴도는 삶이라 해도 충분히 세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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