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에 바침 / 홍수희
그 어디 한(恨)서린 혼령들 있어
외로운 들녘
눈물처럼 무리져 피어 났는가
가도 가도 저만치서 손을 흔드는
베일을 휘감은 비밀의 전설
오늘은 그대 떠나 보내고
내일은 또 너희 누굴 위하여
가지마다 여윈 손 흔들어 주어야 하나
어느 서럽고 야속한 땅에
그리운 한 목숨 그렇게 있어
저절로 붉게 붉게 울어야 하나
꺾지 못할 질긴 모가지,
차마 이승을 뜨지 못한 듯
빗물만 그렇게 마시고 선 듯
그 어디 한(恨) 많은 혼령들 있어
소낙비 스쳐간 들녘
눈물처럼 통곡처럼 피어 났는가
- 시집 <아직 슬픈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띠앗, 2003년)
코스모스를 노래한 시인은 많다. 어느 시인은 길가의 무리 진 코스모스 앞에서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된듯하다 하였고, 김억은 늦가을 찬바람에 시달리는 게 하도 애연해 손잡으니 지고 말더라고 하였다. 또 어느 분은 코스모스 한 떨기에서 투명한 작은 우주를 보았으며 누구는 코스모스를 청상의 애상이 미소로 피어나고 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 못해 토라진 천사의 물기어린 눈동자라 하였다.
코스모스는 그 여린 품성으로 인해 가는 여인네를 연상케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인 ‘살사리꽃’은 가을바람 곁에 살살 흔들리는 연약한 몸에서 연유되었지 싶다. 시인은 코스모스를 통해 이별과 눈물 그리고 한을 노래했지만 명색이 가을의 전령이고, 꽃말이 우주이며 조화인 이 꽃의 의미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눈썹을 간지럽히는 가벼운 속삭임이다가,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기도 한 이 살사리꽃은 철길 옆에서, 혹은 강둑에서 우리들의 연애를 부추킨다. 신의 습작품인 코스모스 핀 좁은 길을 걷거나 시속 20키로의 정숙주행이라도 하고 싶은데 꼭 영혼의 동반자 아니더라도 어디 오른쪽 동행할 친구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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