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슬퍼할 권리 / 노혜경

모든 2 2018. 5. 12. 10:51




슬퍼할 권리 / 노혜경

슬퍼할 권리를 되찾고 싶어.
잔잔하게 눈물 흘릴 권리 하며,
많은 위로를 받으며 흐느껴 울 권리,
핑핑 코를 풀어대며 통곡할 권리.
지나친 욕심일까―
그러나 울어 보지 못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아니야 울고 싶은 마음조차 먹지 못하고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마련하여
눈물나는 영화를 보러 가서는
남의 슬픔을 빙자하여 실컷실컷 울고 오는
추석날의 기쁨.
고작 남의 울음에 위탁한 울음.
하도 오래 살았더니 울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그러니 누가 나를 좀 안아 다오.
그 가슴을 가리개 삼아 남의 눈물을 숨기고
죽은 듯이 좀 울어 보게. 

-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중에서 -

 

  

 옛날 변사조의 쥐어짜는 신파로는 울음은커녕 코미디도 되지 못하는 요즘 세상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울음조차 귀하디귀해서 권리이면서 기쁨이라고 한때 ‘노사모’ 멤버였던 시인은 말한다. 그 감성이 짐짓 거품이 아니라면 나는 그런 여자를 숭배하며 꿈꾼다. 마냥 꿈만 꿀 게 아니라 꽉 안고 함께 울고 싶다. 울고 싶은 일에 울지 못했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싶다.

 

 여성의 정체성을 두고 말들이 많긴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눈물은 남성뿐 아니라 세상을 굴복시키는 도구로서 충분히 유효하다. ‘남의 슬픔을 빙자하여 실컷 울고 오는 추석날의 기쁨’은 낡은 필름 속에 꽁꽁 갇혀버리고 말았지만, 안구건조증세가 파다하게 번진 세상살이는 역시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럴 때 ‘마더 데레사’, 말년의 ‘오도리 햅번’같은 삶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소문내지 않고 어려운 독거노인들의 겨울을 위해 연탄 몇 백 장 그늘진 곳에 놓아두는 이웃의 ‘통 큰 여인’을 보면서, 전파를 타지 않은 ‘사랑의 리퀘스트’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핑 코를 풀어대는 슬픔을 포함하여, 마르지 않은 눈물샘은 언제나 세상을 데우는 아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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