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 / 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 시집 『詩를 찾아서』(창작과비평, 2001)
* 정희성 : 1945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여 대전, 익산, 여수 등지에서 자람.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시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그리운 나무』(2013) 등과 『한국현대시의 이해』(共著) 등이 있음.
이 시는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이후 밀레니엄 시대를 열 때 발표한 작품이다.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경력만으로도 일반에겐 진보 성향의 인사로 분류되는 분이다. 당시 독재타도와 민주화 같은 타깃이 없어진 뒤 쇠퇴한 저항 정신을 노래한 이 시를 노랫말로 안치환은 음반을 내기도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항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고 좋은 세상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리라. 당장 구악의 청산, 사드, 국정교과서 문제, 최선을 다해 다음 대통령을 뽑는 일 등 앞으로도 남은 과제는 산적해 있다. 어떤 이는 광화문 촛불이 꺼지면 어떡하지 라고 공허감을 염려하기도 하지만 광장에 나가지 않고서도 정치에 참여하고 시민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으며 또 얼마든지 그리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여기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기층민중이나 소시민의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기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의 공기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일부 386의 ‘저항’은 밥과 권력이 되기도 했지만,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집권당이 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누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든지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겠냐는 식의 무덤덤함이 자리 잡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봤자 평범한 사람의 삶이 표가 나게 달라진 건 없고, 다른 쪽에선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칼을 갈았다. 하지만 정치의 지향만큼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어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에 견주어 응원과 환호를 보내기도 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분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참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물이 빠지고 구질구질해 보이긴 하지만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저항하는 저 사람들의 행태가 눈에 거슬리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럽다. 중도는 물론 많은 보수 쪽 사람들조차 학을 띠며 등을 돌렸건만, 탄핵이 완성된 이 마당에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는 일부 박근혜 맹신자들이 있어 안타깝다. 이러한 사람들을 밑천으로 어떻게 한번 꿈틀해보려는 정치세력은 더 고약해 보인다. 지난번 박근혜와의 계산된 인터뷰를 진행했던 보수논객 정규재 씨도 3년전부터 ‘새누리당을 버려야 한다. 새누리당을 버려야 정치가 바로 서지 싶다. 새누리당이 완전히 그리고 조속히 무너지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탄식하지 않았던가.
박근혜 씨는 그런 새누리의 잔존세력이 버티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몇몇 정치인과 일부 추종세력들을 믿고서 뭔가 무모한 저항을 도모해보려는 것 같은데 딱하기 짝이 없고 만정이 다 떨어져나가는 기분이다. 합리적인 보수 진영에서조차 수용되기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띠며 악수하는 그녀를 보니, 지난 4년간 그녀가 행한 실정과 패착들이 한꺼번에 역류하는 듯해 매스껍기 그지없다. 과거 그녀의 인사실패가 거듭될 때 새누리의 한 의원도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차려졌어도 식당주인이 구정물 뚝뚝 떨어지는 걸레 같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 손님이 그 식당을 다시 찾겠냐’ 그런데 이건 망한 식당주인이 쓰레기통에 들어간 행주를 다시 끄집어내 엉뚱한 남의 상을 닦으려드는 꼴이니, 그야말로 전두엽에 이상이 있지 않고서는 어찌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하겠는가.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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