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집/ 황학주
프라하 성 뒷길,
카프카는 연금술사들이 주거했던 울긋불긋한
좁은 골목에 살았다
막다른 유리 골목 밤 새워
비금을 데워 금을 새기는 카프카의
독신 주택은
골목 쪽으로 일제히 굴뚝을 단,
충직한 고독이 연금술을 가르치는
작은 집들에 끼어 있었다
가래를 끓이며
금으로 쓴 것들은 오래 살았다
프라하 성 뒷길
왕을 위해 일하던
모든 불안하고 지루한 익명이 세례를 주어
- 시선집 『상처 학교』 (생각의나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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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개인 독일 일정을 마치고 동유럽 단체관광객과 합류해 체코의 프라하로 넘어왔다. 일반 관광객에게는 얼마나 흥미로울지 의문이지만 프라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도시다. 유대계인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나 폐결핵으로 41세의 짧은 생을 마치기까지 몇 차례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프라하 성 뒷길, ‘연금술사들이 주거했던 울긋불긋한 좁은 골목’ ‘카프카의 집’ 앞에 와있다. 카프카는 이곳에 와서 작품을 쓰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나도 황학주 시인처럼 세상의 ‘모든 불안하고 지루한 익명’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그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을까.
릴케는 “카프카의 작품 가운데 나와 관계가 없거나 나를 놀라게 하지 않는 구절은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오래 전 <변신>과 <판결>을 읽었을 것이란 기억만 남아있을 뿐, 소설의 중반 이후 내용은 가물가물하고 흐릿하다.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를 다룬 소설이란 수험생용 모범답안정도로만 요약 정리되어있을 따름이다.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구절들이 놀랍긴 했으나 나의 문학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다만 그의 생애에서 부친과의 불화는 공감했던 바다. 그런데 독창적인 묘사와 그의 기묘한 작품 세계는 지금도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카프카의 집이 있는 골목길은 처음엔 성에서 일하는 집사나 시종들이 살았으나 차츰 금박을 만드는 가난한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을 얻었다. 황금소로 22번지에 그가 한때 집필에 몰두했던 파란집이 있다. 이 골목길엔 모두 색 바랜 빨간 지붕을 이고서 옹기종기 파스텔 톤의 작은 집들이 동화처럼 놓여있다. 빵만으로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우쳤던 카프카는 동시에 빵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 신경증과 엉거주춤 사이에서 격렬하게 진동하는 카프카를 힘겹게 느낄 수 있었다.
보험회사 등을 다니면서 그는 빵을 위한 직업과 밤의 글쓰기 작업을 규칙적으로 이어갔다.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 시대의 카프카에게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최종심급의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누이들이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자주 프라하성위로 떠오른 달을 쳐다보았을 것이며, 어쩌면 가끔 맥주의 거품을 즐기면서 구원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를 밥벌이와 분리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며, 그 순간 그에게 글쓰기는 신성한 목적행위의 전부였으리라.
카프카는 “내 내면적 삶을 서술하는 것의 의미는 다른 모든 것들의 의미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라고 일기에 썼을 만큼 문학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를 ‘끼적이는 짓’이라 부르며 자신의 삶에서 별 것 아닌듯한 식의 표현도 종종 했다. 생전에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은 이런 이중적 태도 때문은 아닐까. 카프카는 아버지와의 갈등, 순탄하지 않았던 연애를 포함 평생 불우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카프카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발표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로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낸 유서에서 자신의 모든 글을 불태워줄 것을 당부했을 만큼 다른 보상이나 명성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불확실성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사후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책들과 엽서 등이 좀 더 눈에 띄게 진열된 카프카의 집은 이 골목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기념품점이 되어있었다.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는 그의 말을 늘그막에 다시 환기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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