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벽화 거리에서/ 강미옥
골목골목 바람이 새어 나온다
죽지 않는 그가 벽화 속에서 환히 웃는다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
젊은 이등병의 열차에서
눈물로 덜컹거린다
술보다 더 깊이 취하게 하는 목소리
그 어떤 무게도 무릎을 꿇린다
세월만큼 표정도 미소도 녹아 내린다
어떤 악기가 저 목소리를 흉내 낼까
어떤 악기가 저 슬픔을 길어 올릴까
골목마다 숨어 있던 그가
벽화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비 오면 그 숨결 더욱 가깝고
바람 불면 그 발자국 귀에 감긴다
흐린 가을하늘에게 편지 한 통 보내면
그도 나도
휴식 같은 휴식에 빠져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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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시와시와>의 조촐한 신년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경기도 광주에서 박경분 시인 일행이 대구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두어 시간 여유가 있는데 어디 갈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왔다. 김광석 거리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인지 궁금해 하는듯했다. 하지만 딱히 관광지로서 사람을 끌만한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해 선뜻 추천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그곳 벽화 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지금의 벽화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에 있어 다른 의미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늘이 김광석의 22주기이다. 김광석은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 집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이곳에서 5살 때까지 살다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울 창신동으로 이사했다. 오늘 그가 살았던 시장통 주택가 골목에는 방학과 주말을 맞아 온종일 북적일 것이다. 길이 350m의 좁은 골목 벽면은 김광석의 노랫말에 얽힌 벽화들로 빼곡하다. 이들은 노래 사연과 함께 벽화가 그려진 곳에 기대어 사진을 찍느라 바쁠 것이다. 그리고 골목 곳곳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김광석을 추억하리라.
오늘은 군데군데서 버스킹 공연도 펼쳐질 것이고 오후 5시에는 벽화거리 야외 콘서트홀에서 추모 콘서트가 열린다. 공연장 앞 쌈지공원에 촛불을 밝히고 헌화할 공간을 마련해 추모 분위기를 한껏 돋울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그다지 보잘 것 없는 김광석 길이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 100선’에 2차례나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엔 150여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명소가 되었다. 그의 죽음에 관한 의혹과 노래를 엮어 만든 뮤지컬도 몇 편이나 나오면서 꾸준히 세대를 아우르는 김광석 감성의 열풍을 더했다.
시인은 김광석과 동시대를 오롯이 함께 살아온 동년배로서 남다른 각별한 정서가 있으리라. 김광석의 ‘술보다 더 깊이 취하게 하는 목소리’는 ‘그 어떤 무게도 무릎을 꿇린다’ 아닌 게 아니라 김광석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들을수록 깊이가 느껴질 때가 많다. 김광석의 노래는 기타 하나로 연주할 수 있는 포크송이라 세월이나 세대를 타지 않는다.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동감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골목마다 숨어 있던 그가 벽화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노래의 힘은 쉽사리 꺾이지 않으리라.
김광석은 90년대의 마지막 정통 포크 가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그의 죽음 이후 포크 음악은 주류에서 비켜나있는 실정이었으나 그의 노래로 받는 위로와 휴식은 여전히 컸다. 오늘날 수많은 김광석이 벽화로 다시 태어나 ‘죽지 않는 그가 벽화 속에서 환히 웃는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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