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긍정적인 밥/ 함민복

모든 2 2018. 4. 13. 23:39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6)


 

  시를 웬만큼 읽는다는 독자치고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우선 이 시에 나오는 금액은 20여 년 전 사정임을 감안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균치로 따지면 시 한 편 원고료가 삼만 원 보다 더 나아진 환경 같지는 않고 여전히 작품이 수록된 책을 보내주는 것으로 퉁 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마이너리그에서는 시도 주고 시를 실어주는 대가로 책값 명목의 돈까지 얹어주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시집은 자비출판이 대세이며 제 돈으로 시집을 찍어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쭉 돌리는 것으로 만족해하며 시 쓰는 보람을 찾는다. 지금이나 그때나 인세가 10%로 책정되어있으나 그걸 받아본 사람은 극소수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이 나올 무렵 함민복은 강화도의 한 폐가를 보증금 없이 월10만원에 세 얻어 살고 있었다. 지금은 장가들어 강화에서 부부가 인삼장사를 한다는 소문을 오래 전 들었지만 당시엔 마누라와 자식도 없이 혼자서 고욤나무가 서 있는 마당에다 살림을 부렸다. 그곳에서 그는 긍정적인 밥의 힘으로 적지 않은 시를 썼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 농담도 곧잘 했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으면서 따뜻하고, 허황되지 않으면서 사는 냄새가 물씬하여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솔직히 시의 값이야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제 원리대로라면 그저 내놔도 팔려나가기 힘든 세상이긴 하다. 실제로 시 한편 써서 쌀 두 말과 바꾸어 본 시인이면 그런대로 이름값을 하는 시인이다. 대다수 시인들은 그래도 시집 한 권의 값이 국밥 한 그릇과 맞먹는 사실에 분통을 터트리지는 않는다. 다문 몇 권이라도 서점에서 팔려나가기만 하면 그것으로도 고맙고 흐뭇하다. 오히려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이 아무리 정신의 풍요를 선택한 사람이라 해도,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과 그 노동으로 얻는 밥 한 공기 앞에 가끔은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것이 시인이다. <시와시와>가 시 운동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궁극적으로 독자와 시인을 함께 받들기 위함이다. 그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프로선언을 했던 것이다. 무슨 독립운동 같은 사명감은 아니지만 이미 재미없어도 해야 되니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와 작가, 즉 고객 만족을 우선시하는 프로의 정신이 없고는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독자에게는 가성비를 최대한 높여 책을 공급하고 작가에게는 재수록일지언정 국밥 한 그릇만큼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대가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약소하지만 일단 초대시 형식으로 모신 글들부터 떡국용 현미 가래떡과 수제 영양떡 몇 개를 넣어 보냈다. 아마 이 조시로 가면 웬만한 시인들은 모두 긍정적인 밥으로 시와시와 떡을 드실 수 있으리라. 다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이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