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꽃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모든 2 2018. 4. 13. 23:36



꽃이름 외우듯이/ 이해인



우리 산 우리 들에 피는 꽃

꽃이름 알아가는 기쁨으로

새해, 새날을 시작하자

 

회리바람꽃, 초롱꽃, 돌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오이풀, 까치수염, 솔나리

 


외우다 보면

웃음으로 꽃물이 드는 정든 모국어

꽃이름 외우듯이

새봄을 시작하자

꽃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먼데서도 날아오는 꽃향기처럼

봄바람 타고

어디든지 희망을 실어 나르는

향기가 되자

 


- 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2004)


 


 꽃이란 꽃은 죄다 아름답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예외도 있겠습니다만 이럴 땐 시비하지 마시고 그냥 눈감아 주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꽃 이름은 어떻습니까.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 이름도 참 많지요. 그런데 그 꽃의 이름을 외우고 이름을 가만 불러주면 꽃만이 아니라 부르는 사람까지도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김춘수 시인도 그랬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럴 때 내게로 와 꽃이 된 그도 그지만 이름을 불러준 나도 꽃이 되었던 건 아닐까요. 아니면 나비가 되었든가요.

 


 회리바람꽃, 초롱꽃, 벌깨덩굴꽃, 큰바늘꽃, 구름채꽃, 바위솔, 모싯대, 족두리풀, 까치수염, 솔나리...이런 아름다운 이름들을 누가 맨 처음 지어 불렀을까요. 간혹 '도둑놈의 갈고리'와 같은 고약한 이름도 있습니다만 난이도 높은 해학쯤으로 이해한다면 재밌기만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꽃 이름들을 하나하나 외우고 입술을 움직여 불러보면 우리 모국어에 정이 들지 않을 리 없겠네요. 정이 든다는 건 사랑이 무르익어간다는 말의 다름 아니겠고요. 세상에 장미, 백합, 튤립 이런 꽃들만 있다면 화려할지는 몰라도 얼마나 밋밋할까요. 살짝 간지러워질려고 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 올라타 저도 조금 간지러운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란 게 어디 있답니까.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을 뒤지면 다 제 이름을 갖고 산과 들에서 그 이름을 불러주기를 은근히 희망하고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노래가 흥겨운 리듬때문에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던 게 아닐겁니다. 사람이건 꽃이건 그 귀한 이름을 즐겁게 불러주고, 기쁨으로 화답하는 향기로운 나날들을 맞는다면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꽃동산이겠지요. 꽃 이름을 알아가듯, 선생님이 새로 맡은 반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불러주듯 새해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삶에도 아름다운 꽃물이 환하게 들지 않을까요. 어제 면목없는 시와시와 신년회임에도 귀한 걸음해주신 분들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경로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리며 한 분 한 분 꽃같은 이름들을 호명해 봅니다. '꽃이름 외우듯이' 새해를 시작하겠습니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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