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거위의 꿈/ 박제영

모든 2 2018. 4. 13. 22:37



거위의 꿈/ 박제영


  1997년 김동률이 작곡하고 이적이 작사하여 그 둘이 발표한 노래를 2007년 인순이가 리메이크하였는데 크게 유행했겠다 이에 박제영이 판소리 사설조로 개사하여 안산의 소리꾼 정유숙 선생에게 소리를 부탁하였으니,


  여보게들! 내 이바구 한 번 들어보소 인순이가 요즘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좋다고 찡하다고 장안에 지금 난리가 났는데, 뭔고 하니 꿈이 있다고, 벽을 넘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거시기 뭐냐 거위의 꿈이 있다고 (얼쑤!) 헛된 꿈은 독이야! 정해진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겨! 온 세상이 비웃어도 마침내 운명의 벽을 넘을 거라고! 하늘로 날아오를 거라고! 혼혈 가수 인순이가 무대 위에서 온몸으로 온몸으로 노래하는데 (잘한다!) 무대 아래 김씨 이씨 박씨 최씨 할 것 없이 남자 여자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죄다 눈물 콧물 흘리는 것인데 (얼씨구! 조오타!) 아뿔싸, 김동률도 모르고 이적도 모르고 인순이도 물론 모르는 게 있었으니 지금부터 잘 들으소, 그 거위가 말이여 지 놈 혼자만 벽을 넘은 거라 새가 빠지게 고생한 것 모르는 거 아니고, 죽는 한이 있어도 넘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 혼자 벽을 넘고 하늘로 날아 간 거라 (얼씨구!) 보라 말이여, 혼자서는 도저히 벽을 넘지 못하는 거위새끼들이, 달구새끼들이, 오리새끼들이 꿔억궈억 삐약삐약 꽥괙 벽에 대고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여 (얼쑤!) 그러니까 여보게들! 어찌 해야겠나? 지 혼자서 벽을 넘을 것이 아니라 이놈저놈 다 뭉쳐서 이놈저놈 다 어깨동무해서 저 벽이란 벽 모두 부숴야지! 아무렴 부숴버려야지! (잘한다!) 지금부터 벽을 늘어놓을테니 다 같이 부숴보세, 한 번 가난은 영원한 가난이니 가난벽, 대학 안 나오면 사람도 못 되니 학력벽,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편갈라 싸움질이니 출신벽, 여성이라 안돼 장애인이라 안돼 혼혈인이라 안돼 늙어서 안돼 어려서 안돼 그 놈의 편견벽, 차별벽, 중이랑 목사랑 싸워대는 종교벽, 뭐니뭐니 해도 여의도에서 욕질 주먹질 뒤로 호박씨 까면서 툭하면 국민타령 해대는 저 국회의원들 정치벽, 비정규직 대량해고 정경유착 지 배만 불리는 재벌벽 (얼씨구! 조오타!) 에고 숨차네 여보게들! 오늘은 여기까지 끝내고 남은 벽들은 다음에 또 부수세 꿔억궈억 삐약삐약 꽥괙


- 시집뜻밖에(애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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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용 풍자시다. <거위의 꿈>은 날지 못하는 운명의 거위에게도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역동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표현해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다. 구속된 전직 대통령들에겐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라며 구치소 담장을 넘을 궁리에 격려사가 될 수도 있겠으나, 더 많은 보통사람들은 그 구절을 통해 난해한 희망의 끄나풀을 놓지 않으리라. 모든 새는 날개를 갖는다. 날개를 갖는 새 중에 닭이나 오리 거위들은 날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날 필요가 없어서 날지 않을 뿐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도 있는데 실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거위 간으로 요리한 꽤나 비싼 프와그라란 메뉴가 있으나 요즘에는 대개 흔하고 값싼 오리간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사필귀정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어 3일째를 맞았다. 어쩌면 이 불행한 사태는 우리사회가 그동안 쌓아올린 가치 전도되고 비정상적인 벽 속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해왔던 의식의 소산은 아닐까. 온갖 곳에서 오랜 기간의 적폐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먼저 부셔야할 벽은 역시 정치의식의 벽이다. 정치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선공후사 정신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여전히 자신의 영달만 앞장세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국 정치의 불신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많은 사람이 정치개혁을 부르짖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의 인사검증을 위해 72명을 조사했는데, 이력에 하자가 없는 인사는 단 한 명뿐이었다는 증언은 지체 높으신 분들의 의식과 우리 국민의 뿌리 깊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한 마디로 웅변하고 있다. 오래전 유행했던 일본어인 '민나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들)'란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눈 부릅뜨면 비교적 합리적이고 괜찮은 사람도 없지 않으니 모조리 구리다고 그놈이 그놈이라고 방관해서는 안되겠다.

 

 세월호 이후 모든 인사검증은 전보다 더욱 정교하고 철저해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선택기준도 마찬가지다. 신뢰를 잃으면 다 잃는다. 위정자가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백성을 부리면 아무리 선의라도 백성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논어'는 주장한다. 공자는 식량을 충분히 마련하고, 병비를 튼튼히 하며,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치라며 세 가지로 요약했다. 만약 셋 중 하나를 버리라면 공자는 병비부터 버리라고 했다. 또 하나를 더 버리라면 식량을 버려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신뢰만은 결코 버려선 안 되고, 백성이 위정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공자는 말했다.

 

 모름지기 백성과 정치인 간의 신뢰가 정치의 근본이며, 그것 없이는 나라의 발전도 무망하다는 의미다. 그 신뢰의 바탕 위에서 사회에 구석구석 존재하는 철옹성 같은 비정상의 벽들을 깨 부셔야겠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