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모든 2 2018. 4. 13. 22:35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올 봄에는
저 새 같은 놈
저 나무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봄비가 내리고
먼 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벗이여
이제 나를 욕하더라도
저 꽃 같은 놈
저 봄비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해다오
나는 때때로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

 

-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창작과비평, 1999)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장제원 의원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홍준표 대표에게 배워서인지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냥개마냥 아무데나 날뛰고 아무렇게나 주끼더니만 결국 이런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전후 사정을 떠나서 점잖고 교양 있는 보수라면 그 막말들만으로도 정나미가 떨어져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을 나타낸다. ()은 입 구() 세 개를 포개놓은 형태의 글자다. 즉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 쌓이고 쌓이면 그 사람의 품성이 드러나게 된다는 뜻이다. 평소에 구사하는 말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성, 품위가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일상생활에서 늘 신경 쓰이고 가끔 뱉어놓고도 돌아서면 바로 후회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욕()은 화난 감정을 직설적으로 상대에게 모욕하기 위해 내뱉는 말이다. 법보다 가까운 게 주먹이라지만 주먹보다 가까운 게 욕이다. 화가 뻗힐 때 욕이라도 해주면 다소 감정이 누그러지기도 한다. 막말은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뱉는 말이다. 욕보다는 막말이 한 수 아래이기는 하나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기는 마찬가지다. 막말로도 충분히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정치인들이 세간의 비난에도 막말을 거듭하는 이유는 지지층에 소구력을 갖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적대적 진영 관계로 갈라놓아야 살길이 열린다는 생각에서다. 실력으로는 안 되니까 자꾸 거친 말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지만 썩은 풀숲에서는 나쁜 냄새만 진동한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욕을 얻어먹고서도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욕이 배따고 들어 오냐며 애써 태연한 척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그만큼 더 통증이 깊다는 뜻의 다름 아니다. 악의 없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곡해하면 듣는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거늘 욕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런데 들어서 기분 좋은 욕은 없을까? 아니 좋을 것 까지는 없어도 태연히 듣고 넘길 욕은 없는 걸까. 오래전 대구 북성로 공구골목에 욕쟁이 할머니로 소문난 복어요리집이 있었다. 할머니의 맛깔스러운 음식도 음식이지만 그보다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할머니의 귀에 착 감기는 욕이 무엇보다 일품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단골들은 더 이상 그 욕을 들을 수 없었다. 왠지 쓸쓸하고 허전했다.


  그리고 바뀐 주인의 음식 맛이 그다지 변치 않았음에도 단골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 결국 그 복집은 폐업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할머니한테 들었던 욕은 욕이 아니라 음식 맛을 돋우는 양념이자 추임새였던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허허 웃으며 식사를 즐겼던 것은 욕쟁이 할머니가 욕을 욕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손님 역시 욕을 욕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마음을 담느냐에 따라 듣는 사람의 반응과 미치는 파장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할머니가 복지리처럼 맑고 순수한 사람임을 잘 알기에 평소에 들으면 기분 나빴을 수 있는 욕이 전혀 악의 없이 들리면서 오히려 그 욕이 손님과의 친화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욕쟁이 할머니는 부산 서면 뒷골목에도, 전라도 해남에도, 서울 노량진 시장에도 명물처럼 존재해 어쩌면 전략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욕 문화를 연구한 김열규 교수는 욕에도 카타르시스의 미학이 있다며, 그 전략과 전술을 논한 바 있지만 그 할머니들이 모두 그 논문을 탐독했을 리는 만무하다. 시인은 욕의 순화나 미학의 차원을 넘어 마조히즘으로 접근하였다. 이 봄의 이름을 빌려 수식하는 욕이라면 얼마든지 마구 퍼부어도 좋다고 한다. '새같은 놈' '나무같은 놈' '봄비같은 놈' '꽃같은 놈' 또 산수유 꽃봉오리 같은 년, 들어서 기분 좋은 욕이 되고 마는데 결국엔 속내를 드러낸다. 꽃 같은 놈이 되고 싶다고. 나의 벗에게도 말한다. 욕을 할 일이 있더라도 좀 가려서 가급적 우아하게 고쳐 욕해 주길 부탁한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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