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와 팬티/ 이수종
- 문정희 시인의 「치마」와 임보 시인의「팬티」를 읽다가
치마 속 신전에는 달을 가리고
숨겨주는 창이 있다
바람을 빨아들이는 들창 주위를 서성거리며
은밀히 숨겨진 비밀을 열고 싶어
사내들은 신전가는 길목에서
치마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영역싸움을 벌인다
거기서 이기면 다 되는가
그건 일차 관문에 지나지 않는
창들끼리의 다툼일 뿐
방패를 뚫고 침입하는
선택받은 승자의 개선을 위해서는
목숨을 건 더 큰 한판 승부가 남아 있다
사내의 완력만으로는 성문을 열 수 없다
문 열려라 참깨하고
주문을 외우며
사내들은 치마 앞에서
치마성의 주인과 내통하는
카드 비밀번호를 맞춰 보아야 한다
성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구도자의 인내도 필요하고
계관시인의 음유도 필요하고
말 탄 백기사의 용맹도 있어야 되지만
힘 하나 안들이고 성문을 열고 맞아들이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더러는 있어
치마 앞에서는 여간 근신하며 공을 드려야 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치마는 딱 한번 열렸다 닫히고
더 이상 끄떡도 하지 않은 채
폐쇄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창은 방패를 이길 수 없고
방패는 창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힘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 시집 『시간여행』 (비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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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치마」 가 발표된 뒤 이에 대한 응수로 임보 시인의 「팬티」가 나왔다. 또 이 시들이 촉발시킨 시가 여러 편이다. ‘치마와 팬티’는 그 중 하나다. 다음은 문정희의 <치마> 일부다.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중략)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내친김에 임보의 <팬티>도 읽어보자.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중략)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현란한 수사들을 가동시켜 ‘취급주의’ 품목인 남녀 간의 성을 들추어낸 작품들이다. 은밀하고도 민감한 주제를 이처럼 유연하게 감싸고서 할 말 다하기는 쉽지 않을 터. 성은 본능의 생식기능 말고도 삶을 떠받히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쾌락의 화수분이다. 치마와 팬티에 감춰져 있으나 시인의 근질근질한 호기와 응시로부터도 숨지 못하고 언제든 들춰질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조선시대부터 답습된 가부장적 성문화와 개방과 자유화라는 물결을 타고 건너온 서구의 성문화, 그리고 남성 중심의 상품화된 성문화, 지금의 ‘미투’캠페인에 의해 재인식되고 있는 성문화 등이 혼재되어 매우 혼란스러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유교적 성문화는 성에 대한 금기와 쾌락의 이중적 성윤리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유교적 성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는 성을 억제와 통제의 대항으로 인식하고 겉으로 드러내어 말해서는 안 되는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성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였음에도 남성에게는 성적 쾌락의 추구는 물론 성적 방종까지도 허용하는 이중적 성윤리를 적용하였다. 서구의 성풍속이 유입되면서 전통적 성문화와 뒤섞이고 이어서 남성 중심의 상업적 성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마초 성문화가 버젓이 횡횡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란 인식 없이 성매매와 성범죄가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이다.
대중문화와 메스미디어는 끊임없이 성충동을 자극하고 성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낳아 성적 쾌락 추구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게 했다. 사실 ‘치마’니 ‘팬티’니 하는 은유를 가능케 한 풍토도 이미 한 시절 전 분위기이고, ‘방패’와 ‘창’으로 남녀의 성을 상징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으리라. 읽기에 따라 성을 왜곡하여 바람직한 성 문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고 잘못된 성문화의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성은 본능적인 쾌락행위임과 동시에 친밀하고 조화로운 남녀 간 인간관계의 고결한 표현이다. 성은 결코 불결하지도, 키득거리면서 가볍게 즐기거나 금기시할 것도 아니다. 방패와 창 사이 ‘힘의 싸움’은 더욱 아닐 것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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