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의자의 구조/ 이하석

모든 2 2018. 4. 13. 22:24




의자의 구조/ 이하석 

 

의자 위엔 대개 구름이 내려와 앉아 있다

누구든 그 위에 앉으면 그 무게만큼 구름이 떠올라

그의 머리가 구름 속에 꽂힌다

어디선가 우레치고 큰비 내리는데

그는 복잡한 생각에 싸여 앉아 있다

제 의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힘준 발가락 느끼며

 

그 아래는 대개 구조가 단순하다

의자 다리는 네 개

그 사람 다리는 두 개

여섯 개의 다리 중 두 개에는 발가락이 달려

모든 균형이 잡힌다

 

- 시집것들(문학과지성사, 2006)

....................................................

 

  시인들에게 의자는 다채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사물이다. 당연히 이를 소재로 한 시도 많다. 의자가 놓인 곳마다 생각의 행로와 갈피가 있다. 사람이란 본디 계속 서있으면 앉고 싶고, 퍼질러 앉으면 눕고 싶고, 장 누워있으면 좀이 쑤셔 그만 일어서 걷고 싶다. 그 비틀림의 과정 가운데 유용한 도구로 존재하는 물건이 의자다. 어떤 의자이든 휠체어든 흔들의자든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있어 최소한의 축복일는지 모른다. 모든 의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의자의 구조는 다리가 네 개다. 그 의자에 사람의 다리가 두 개 더해지고 열 개의 발가락까지 가세하여 모든 균형이 잡힌다


 반드시 시적 은유를 가져다붙이지 않더라도 사회통념상 의자는 사회적 지위나 직책, 위치를 상징한다. 의자는 자리이며, 자리는 곧장 인사를 떠올린다. 신문의 인사 동정 란에도 의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직장인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은 승진(프로모션)과 이동(로테이션)이다. ‘제 의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기를 쓰고 제 의자를 지키려 한다. 어떤 자리는 앉는 순간 바로 목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 자리는 더러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보이기도 해서 대개의 사람들이 선망한다. 또 어떤 자리는 앉자마자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기도 한다. 거들먹거리면서 보이는 게 없는 듯 안하무인이다.


 그래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우레치고 큰비 내리는데도 더 높은 의자에 앉을 궁리만 튼다. 의자는 한정되어 있고 탐하는 사람은 여럿이어서 의자 차지게임은 계속된다. 의자는 늘 사람 수보다 적어서 한 사람씩 나자빠지게 한다. 노래를 부르며 둥글게 도는 동안 심판의 호각소리를 듣는다. 결국 최후에 남은 1인만이 승자가 된다. 그는 차지한 의자에 앉아 잠시 승리감에 도취한 채 최대한 끗발을 행세하려고 든다. 하지만 결국 너무 높이 떠있어 두 발이 닿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왕관의 무게를 견디듯 의자의 균형을 견뎌야 하는데 까닥하다간 허방으로 굴러 떨어진다.


 평범한 사람조차 낙오하지 않으려 발가락 열 개까지 안간힘을 다하건만 최고위의 자리에 앉은 박근혜는 어떠했나. 청와대 관저 내실에는 흔들의자가 있다. 그녀는 청와대 본관 공식 회의나 외부 행사가 없으면 늘 관저에 머물며 침대 아니면 흔들의자 위에 있었다. 최순실이 관저에 들어오면 대개 그 흔들의자에 앉았다. 최순실은 배석한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국정을 보고받았으며 박근혜는 앞뒤로 흔들흔들하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최순실이 결론을 내리면 박근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집무실에 앉혀놓고 최소한의 발가락 노릇을 대신할 신하들도 없었다. 그녀가 앉은 의자의 모든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지당한 이치였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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