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참스승/목필균

모든 2 2018. 4. 12. 00:30

 

 

참스승/목필균

  

이름만

배우지 마라

 

꽃 그림자만

뒤쫓지 마라

 

꽃이 부르는

나비의 긴 입술

 

꽃의 갈래를 열어

천지(天地)를 분별하라

 

몸으로

보여주는 이

 

-시집『꽃의 결별』(오감도, 2003)-

 

 

 

  30년 전 K항공사에 근무할 때 뉴욕으로 짧은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탑승 항공기가 JFK공항 착륙을 앞두고 20여 분이나 선회비행을 계속했다. 현지 기상상태는 쾌청이었고 기체의 결함도 없었다. 그런데 왜 기장은 돌발적인 그라운드 컨디션에 의해 착륙이 지연된다고 기내 방송을 했으며, 실제로 20분 이상 공중을 뱅글뱅글 돌았을까. 활주로 사정 때문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나중 항공사 운항관리실에 도착해서야 풀렸다.

 

  원인은 허드슨 강 하류에 서식하는 수백 마리의 큰 새떼들이 각자 입에다 큼지막한 조개를 하나씩 물고 와서 일제히 공항 활주로에 낙하를 하여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 새들은 썰물의 바닷가에서 껍질이 딱딱한 조개를 먹이로 낚아채긴 했으나 그냥은 도저히 그 속살을 파먹을 재간이 없으므로 시야가 훤히 터이고 바닥의 강도가 보장된 활주로를 이용해 껍데기는 남기고 벌어진 조갯살만 파먹고 달아난 것이다. 

 

  ‘버드스트라이크’등 운항도중 새들과의 충돌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런 일로 항공기의 이착륙에 지장을 초래한 사례는 처음 듣고 목격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공항과 항공사 사무실에 웬 아이들이 잔뜩 진을 치고서 노트에다 무엇을 열심히 적거나 그곳 직원들을 성가시게 붙들고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인근 초등학교 2개 학급의 아이들이 '인간의 구조물을 이용한 새떼들의 먹이 행위'를 현장학습 나왔다는 것이다. 

 

  새떼들은 대개 한 달에 한번 하현달이 뜰 무렵 그 공습을 감행하는데, 한 교사가 그 사실을 알고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학교로 연락해줄 것을 요청해 즉각 그날의 현장학습이 이뤄진 것이다. 아이들은 그 신비한 자연의 에피소드뿐 아니라 조류에 의한 비행 안전의 장애, 비행 원리, 항공기의 발달사, 승무원이 되는 길, 기내 서비스 등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한 심도 높은 현장취재가 직원들의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되었다. 

 

  항공사측도 홍보와 미래 고객과의 소통 차원에서 나쁠 게 없는 윈윈 교육인 셈인데, 나는 이 기막힌 열린교육과 현장학습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과연 우리나라였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나 싶었고 한때 교육계의 키워드처럼 대접받았던 열린교육과 체험학습에 대한 우리의 현실이 궁금해졌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대학'과 '입시'라는 현실 앞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실험이 그동안 주입식 교육과 입시위주 교육의 병폐에 맞서 아동을 속박하지 않는 자연적이고 자율적인 학습을 도모하는 창조적인 사고력 개발이란 이념에도 불구하고 학력저하를 초래한다는 비판과 함께 '비효율성' '비현실성'이 지적되어 맥을 추지 못하다가 지금은 거의 폐기되었다. 열린교육이 루소로부터 시작된 진보주의 교육실험이란 평가가 있어 삐딱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그러나 미래를 짊어질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균형적 발달을 강조하는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의 좌표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열린 교육의 실천과 그 정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를 쓸 당시 초등교사 시인이 시를 통해 보여주는 메시지와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이가 바로 참스승이라고 정의한 것은 열린 교육이 폐기된 현실에서 뜻하는 바가 크다.

 

  선생님 개개인으로는 이를 지지하고 몸소 실천하고자 애쓰시는 분도 적지 않겠으나 교육의 현장 역시 '상명하복'의 조직 특성이 가동되는지라 제도가 잘 마련되지 않고 조직이 유연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특히 이즈음의 졸업시즌이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키팅 선생과 더불어 1967년작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마크 선생(시드니 포이티어)이 꼭 생각난다.

 

  온갖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해와 인내로서 학교에 밝은 빛을 불러들이고, 결국 그 노력과 포용력으로 천지 분간 못하는 문제의 아이들을 감화시키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이 영화에 학생으로 출연한 루루가 클라이맥스인 졸업 파티에서 주제가를 부른 압권의 장면이 떠오른다. '꽃의 갈래를 열어 天地를 분별하라'며 그것을 몸으로 보여준 마크 선생님과 같은 이 땅의 많은 참스승을 기억하며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To sir, with love"

 

-권순진의 시 맛있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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