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밭 한 뙈기/ 권정생

모든 2 2018. 4. 12. 00:03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1988, 지식산업사>

 

................................................................................................................................................

 

(권순진의 시 맛있게 읽기)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난 이와 비슷한 말을 15년 전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로부터 들었다. 나는 사업을 하는 그에게 내 전 재산이라 할 돈을 빌려준 입장이었고 그는 그 돈을 갚을 수 없는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막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그에게서 신이 든 사람의 선언처럼 그 말을 들은 후로 나는 모든 걸 포기했고 그와의 연락도 끊었다.

 

 얼마 전 나와 한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에 기거하는 6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절도피의자로 경찰에 체포되어 붙잡혀간 일이 있었다. 외제차를 두 대씩 갖고 다니며 다년간 절도행각을 벌인 혐의다. 처자식에 손자까지 있는 허 회장은 상가건물 등을 소유한 백억 대의 재산가라고 한다. 증거가 명백한 혐의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다는데, 나중엔 이 사람의 입에서 권정생 선생의 이 시가 다시 인용되지 않을까를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권정생 선생의 이 시는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의 무덤가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12살 차 띠 동갑인 두 분의 우정은 너무나 절절하고 아름다워서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우정의 순수함과 고결함에 감동치 않을 수 없으리라. 나 또한 두 분이 수십 년 동안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글들을 읽어 내려가며 살구꽃 봉오리를 보듯 나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오덕 선생은 임종 직전 일절 조문객을 받지 말고 부고도 장례 이후에나 알리라고 가족들에게 유언했다. 다만 자신의 무덤 가까이에 세울 시비 둘을 지정했는데, 그 하나가 권정생 선생의 <밭 한 뙈기〉고, 다른 하나가 자신의 시〈새와 산〉이었다. 고인의 바람대로 충주에 있는 이오덕 선생의 무덤가에는 두 시비가 마주보고 서 있지만, 이 두 영혼지기가 남긴 시들이 더러 끔찍스럽게 왜곡되고 지독하게 오용되고 있음을 보자면 목구멍으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단단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새와 산

/이오덕(1925~2003)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스승/목필균  (0) 2018.04.12
작은 배/조동진  (0) 2018.04.12
쌀과 살/ 손일수  (0) 2018.04.12
계구우후의 논리/ 박종인  (0) 2018.04.12
전혜린의 시 [그리움]  (0) 201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