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는 시읽기

전혜린의 시 [그리움]

모든 2 2018. 4. 11. 23:57

 

 

그리움/ 전혜린  

거리만이 그리움을 낳는 건 아니다.
아무리 네가 가까이 있어도
너는 충분히, 실컷 가깝지 않았었다.
더욱 더욱 가깝게, 거리만이 아니라
모든 게, 의식까지도 가깝게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움은,

- 유작집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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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멀다 해서 더 그립고 가깝다고 해서 덜 그리운 건 아니다. 오히려 지척의 손에 잡히는 곳에 존재하는 그리움이 더 간절한 절망적인 그리움일지 모르겠다. 전혜린은 누구를 이토록 그리워했을까. 또 무엇을 그토록 열망하다가 그리 서둘러 갔을까. 전혜린은 지난 주 김광석처럼 1월에 태어나서 1월에 자기 결정권에 의해 떠난 사람이다.

  1934년 1월 1일 유복한 집안의 큰딸로 태어난 그녀는 경기여고를 나와 서울법대 3학년이던 1955년 독일로 유학, 전공인 법철학 대신 문학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 1960년부터 여러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강의했으며 1964년에는 성균관대의 조교수가 된다. 이때까지 활발한 번역활동을 통해 많은 독일문학을 소개했으며 틈틈이 수필과 일기 형식의 글을 썼다.

  하지만 그토록 소망했던 ‘단 한 편의’ 소설은 결국 쓰지 못했다. 날카로운 성찰과 서늘한 지성, 특유의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완벽함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방어적 태도 때문인지 그 열망을 이뤄내지 못하고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아침, 세상의 모든 그리움과 사랑을 남긴 채 평소 좋아하던 흰 장미 한 송이만 가슴에 안고 먼 길을 떠났다.

  그녀의 번역 작품 ‘생의 한 가운데’처럼 자유롭게 불꽃같이 살다가 갔으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고 속된 권태로운 삶을 경멸하고 자신을 인식(그녀는 지적 탐구를 그렇게 명명했다)의 제단에 바치려 했던 광기를 온몸에 휘감고 그렇게 간 것이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순간들의 삶을 염원하던 그녀에게 단조로운 일상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과도한 지성과 지성의 지나친 지배가 오히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유머 한 구절의 틈입도 허용치 않으려는 염결성과 지성적 권위로는 사실 단편 소설 하나 써내기도 어렵다. 전혜린은 영감을 위하여 일상성을 피하고 비범한 생활의 영위를 열망했다.

  하지만 그녀의 비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지성의 포로였다는 점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있다. 세코날 40알을 털어 넣기 전 그녀는 ‘장 아제베도’라고만 알려진 익명의 누군가에게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줘! (중략) 나도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나를 살게 해줘" 라고 구조를 요청했고 절규했다.

  그 부치지 못한 편지의 주인공은 물론 1년 전 이혼한 전남편 법학자 김철수는 아니었다. 제자이자 연하의 남자로만 알려진 그의 실명은 유품을 정리했던 여동생이 고의로 뺐다고 한다. 뮌헨의 슈바벤, 축축한 안개 사이로 오렌지색 가스등이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그곳은 전혜린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그곳에서 발원하는 그의 미완의 소설은 그를 흠모하는 독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계속 쓰이고 있다.

 

-권순진의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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