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2013년 12월8일(가해)

모든 2 2021. 7. 23. 23:58

「예수님 전에 요한 세례자부터」 강진영 신부(2012, 제주도 강정) 

 

 

+ 마태오 복음. 3,1-1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라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말씀의 향기>

 

회개하여라.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

-허병도 스테파노 삽교 주임

 

  대림 제2주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주인공으로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에 앞서 예수님을 준비한 분이십니다. 대림시기 또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우리는 오늘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귀르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의 선포는 너무도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선포입니다.

  "회개하여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는 단순합니다. '회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나의 발걸음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집을 청소하듯이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의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님이 첫 번째 선포도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였습니다. 그만큼 회개란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별히 우리에겐 고해 성사라는 회개의 장이 열려져 있습니다. 부활과 성탄을 앞두고 판공성사를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은 두려워해야 하지만, 죄를 고백하는 것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나의 죄를 겸손되어 고백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은총으로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나의 약점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부족함을 사랑하고 겸허하게 인정할 때 주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당신의 사랑과 은총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약점과 부족함 또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자랑해야 한다면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들을 자랑하십시오."나의 약함을 통해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과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대림 제2주일을 보내면서 제대 앞에 켜져 있는 두 개의 대림초와 같이 내 마음속에도 초를 하나 더 켜 놓습니다. 두 번째 켜질 초의 이름은 회개입니다.

  "회개하여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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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교회의 새로운 복음화

 

  저희 본당은 매월 마지막 주간을 "가정 성화"주간으로 보냅니다. 매주 가정 소공동체 모임을 할 수 없는 가정도 이 주간에는 반드시 자녀들과 함께 소공동체 모임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간에 중고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가정 과제"가 나갑니다. 가정 과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모님과 자녀가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또 솔직한 마음들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부모님도, 자녀들도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를 바라고, 진솔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막상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 하면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또 성적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딱히 할 이야기도 없어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과제"라는 형식입니다. "과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아이들에게 "가정 과제"를 내주게 되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가족들이 함께 모이게 됩니다. 그런데 가정 과제도 주어지는 것은 부모님과 자녀들이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하는 질문들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 인터뷰를 하는데 부모님이 어린 시절에 가장 큰 사고를 쳐서 심하게 혼났던 때는 언제인지,그렇게 혼날 때 어떤 마음이 들었었는지를 묻습니다. 부모님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 중에 엉뚱한 짓을 하는 아이들의 마음과, 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또 자신들 때문에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이 언제인지를 아이들이 묻고, 부모님의 대답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부모님들의 진심을 만나게 됩니다. 매월 이렇게 함께 대화를 나누어야 할 질문을 담은 가정 과제 용지가 나가게 되고, 가정 성화주간에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이 과제를 수행하고 결과를 제출합니다. 그렇다고 늘 무거운 대화만 나누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만찬을 준비해서 부모님을 대접하는 과제도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심야 영화를 봐야 하는 과제도 있습니다. 또 저녁 시간에 미디어를 활용하지 않고 2시간 이상 부모님과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는 과제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과제 수행을 하지 못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함께해 주는 가정은 과제 용지 안에 참으로 따뜻한 마음들이 녹아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당에서 내주는 과제가 무슨 구속력이 있겠습니까? 시간을 내서 꼭 과제를 수행하고 제축하는 가정은 그것이 "과제"이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과제를 한 것이고, 바로 이 "과제를 수행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작은 따스함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녹이는 가장 중요한 온기를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오종진 신부.복수동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거룩하시도다(Sanctus) 5 - 구조와 내용 2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구약 성경에 자주 등장하고 강조되는 하느님의 대표적인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온전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께 속하는 백성, 땅, 성전 등도 거룩해야 합니다. 세번의 거룩하시도다는 최상급을 나타냄과 동시에 점점 강도를 높이는 표현법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본 환시에서 천사들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했듯이. 이제 지상의 전례 공동체인 우리들도 천사와 성인과 함께 하느님이 보여주신 구원 업적에 감사를 드리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2)>

 

 

혹시 체리만 골라 드시나요?

 

 

  '체리' 좋아하세요? 빨간색이 참으로 유혹적인 여름 대표 과일 '체리'... 6월에서 8월 사이에 제맛인 체리를 어제 먹게 되었습니다. 지인의 생일 축하 자리였죠.  하얀 생일 케이크 꼭대기에 보석처럼 빛나는 체리를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손이 먼저 나가게 되더라고요. 제철이 아니어도 참 달콤했었습니다.

 

  체리는 색뿐만 아니라 성분 또한 충분히 유혹적인 과일입니다. 항산화 물질이 많아 노화방지와 불면증, 변비, 심장질환, 당뇨, 류머티즘 관절염 등을 예방하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으니까요. 이런 까닭으로 만약 체리와 신포도가 한 곳에 섞여 있다면, 체리만 쏙쏙 빼내 골라먹는다 해도 섞여 있다면, 체리만 쏙쏙 빼내 골라먹는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경제활동에서 일어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어떤 소비자가 회사나 기업에서 제공하는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면서, 그 제품에 관련된 이벤트나 판촉물, 선물 등만 챙기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단물만 쏙 빼먹는 그런 소비자들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기업에 어떤 이익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 기업이 제공하는 혜택만 챙기는  소비자를 '체리 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런 소비자가 참으로 이기적이고 얄미운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매주 성당에 나와서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도 때론 하느님이 보시기에 '체리 피커'는 아닐까요? 하느님을 기쁘게 할 일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그분이 주시는 것에만 눈을 크게 뜨고 마치 맛난 체리를 고르듯 우리 자신만 생각한다면, 그 순간 우리 또한 '체리 피커'가 되는 건 아닐까요?

 

  저 자신부터 부끄러움에 얼굴이 체리색처럼 변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에는 인색하면서, 하느님이 제게 주시는 것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제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기만 합니다. 체리만 골라내는 영리함보다, 체리를 받아먹을 수 있는 겸손함을, 체리 맛만 느끼는 혀보다, 신포도의 의미를 기억하는 마음이 참으로 필요할 때입니다.

 

 

 

"교회의 사목자들은 사람들이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견들을 제시할 권리가 있습니다.

복음화는 인류의 발전을 함의하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복음의 기쁨」 182항)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인권주일 담화 -한국 천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묵시 21,3)

   역사의 구체적 여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천명하는 것은 교회의 구원사적 소명이며 사회교리의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의 전례는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이 기간 중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요한 1,14) 강생의 신비를 묵상합니다. 특별히 한국천주교회는 대림 2주를 인권 주일과 사회 교리 주간으로 정하여 인간의 존엄과 신앙인의 지상 소명에 대해 묵상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실로 인간의 존엄과 소명은 주님 강생의 신비와 맞닿아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역사의 상황 안에서 인간의 존엄을 천명하는 것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길(「백주년」 53항)이고 가톨릭 사상의 핵심이며, 사회적 가르침의 근본 원리(「어머니의 스승」 219항)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시도에 부단히 맞서왔고 그러한 상황을 고발해왔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계획에 어긋나는 오늘의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올 한 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은폐축소 시도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 역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치적 권리,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보조성 원리가 뜻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시민의 자유와 이를 위한 국가권력의 한계와 제한입니다. 특히 정보기관과 경찰, 그리고 군대 등 국가의 권력기구를 시민적 통제 아래 두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본질입니다.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며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일 따름입니다.-중략-

 

   형제자매 여러분,

   인간이 존엄한 것은, 성경이 강조하듯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성자께서 인간으로서 인간 가운데에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동행하고 연대(마태오복음 25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더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고 증진되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된 의미를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해야겠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