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그리스도왕 대축일 2013년 11월 24일(다해)

모든 2 2021. 7. 23. 23:57

 황영준 신부(2012, 바티칸)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 루카 복음. 23,35-43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고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참된 메시아 -"이 땅에 주님의 정의와 사랑이 실현되게 허소서" -김대건 베드로 직장직종사목 전담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때마다 하느님의 도움을 받은 판관들이 나타나서 다스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임금을 원하였고, 사무엘 예언자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하면서 드디어 이스라엘에도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을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왕권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면서 안정된 제정일치의 왕국을 다스렸으나, 솔로몬의 아들들에 의해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 이후에 북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멸망을 하고, 남유다 왕국도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가 돌아오면서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면서 유다 왕국은 종교를 중심으로 더욱 굳건하게 뭉쳤습니다.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종교적으로는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왕국의 아픈 역사를 겪은 민중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임금이 나타나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것을 희망하는 메시아사상을 꿈꿔왔습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어로 바꾸면,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됩니다. 결국 메시아사상은 이스라엘에 왕국이 설립될 때부터 왕에게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유다인들은 다윗 왕처럼 이스라엘 왕국을 부흥시킬 강력한 왕의 도래를 기다려왔습니다. 이렇듯 민중은 예수님에게서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기대했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완성을 보여준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어떠합니까?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이심을 성경 전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서주간"을 보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각자의 삶 속에서 "참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왕"의 사랑을 더욱 깊이 닮아가야겠습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45) -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4편 -제2부 : 주님의 기도(2)

 

지난주,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첫 세 가지 청원들(하느님의 이름, 나라, 뜻)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바람을 기도드리기 전에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그분께서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립니다. 그 다음 우리는 나머지 네 가지 청원들을 바칩니다.

 

  네 가지 청원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 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 곧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모두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청합니다. '양식'은 곧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양식이라는 말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항상 넉넉한 양식을 청하도록 가르치시지 않으시고, 다만, '오늘'필요한 양식만 청하라고 제한하셨습니다. '하루의 양식을 청하는 것'은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느님께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체의 양식을 받아 모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반드시 먼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먼저 우리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를 청하는 기도는 두 가지를 내포합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 하느님 앞에 죄인으로 깨닫기 어렵다는 점ㅇ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의 잘못을 성찰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기 노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기를 원치 않으시고, 악을 행하도록 시험하지 않으십니다.(야고 1,13 참조) 그러나 우리는 '영'과 '육' 사이에서 싸우고 있기에 늘 유혹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에 '동의'하게 되면 우리는 죄를 짓고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느님과 함께 깨어 있길 청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탄, 악마, 마귀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우두머리"(요한 14,30)에 대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악마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칠 때는 아멘으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을 동의하면서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집필해 주신 김두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한 호흡 내어

찬이슬 되었네.

 

내일 긴 숨으로 

오늘을 맞으리.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신앙의 해를 마치며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윤영중 신부. 사목 기획국 차장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2011년 10월 11일에 자의 교서「믿음의 문」(Porta Fidei)을 발표하시며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렇게 선포된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며,「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인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하여 오늘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세속주의, 상대주의, 물질만능주의 등을 우려하시면서 지금 교회는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신앙의 해"를 선포한 목적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에 대한 신앙의 아름다움'에 대해 온 교회의 관심을 갖는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바탕을 둘 때, 그 온전함과 모든 광채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해"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리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우리에게 '오늘의 시대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믿음의 문」,5항)과 가톨릭 신앙의 근본 내용을 담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이해를 위한 노력을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황님은 "신앙의 해"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에 맞추어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구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다양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먼저 각 본당에서 "신앙의 해" 개막미사 때 성경,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가톨릭 교회 교리서, 빵과 포도주, 빈 바구니를 봉헌하면서 "신앙의 해"를 충실히 지낼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교구 차원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대전과 천안지역에서 '신앙의 해 특강'을  5차례 실시하였습니다. 사제들 역시 이 "신앙의 해"를 의미 있게 보내고자 '신앙의 해 1일 연수', '사제 성화의 날', '신앙의 해 사제단 도보성지순례'를 실시했습니다. 그 밖에도 각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특강, 피정, 교육, 성지순례, 성경공부, 성경 쓰기 등을 통해 이 "신앙의 해"를 알차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앙의 해'를 보내며 신앙은 결코 단 한 순간에 튼튼해지고 깊어질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신앙은 우리의 평생 동반자이며, 믿음은 믿음으로써만 강해집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한 "신앙의 해"는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막을 내리지만 우리 신앙 여정은 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평생 동반자인 신앙과 함께 우리의 삶을 가꾸어 갑시다.

 

 

 

하느님을 보겠다는 임금님 -레오 톨스토이

 

     「너는 재치가 있고 훌륭한 정신이 있구나. 헌데 하느님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를 대답해 보아라.」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 목동이 말했습니다. 「제가 간청을 올려도 화는 내지 마십시오. 허지만 수를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임금님은 「하나, 둘-」하고 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하고 목동이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가 아니라 하나 이전에 있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나? 하나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아주 현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임금님. 하느님 이전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이 대답은 먼저 한 대답보다도 더 임금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네게 많은 상을 내리리라. 하지만 그 전에 셋째 질문에 대답을 하여야 한다. 하느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목동은 임금님의 마음이 누그러진 것을 알았습니다.

   「좋습니다.」하고 목동은 대답했어요. 「그 질문에도 대답을 하겠습니다. 단 한가지만 미리 간청하건대, 잠시 동안만 우리의 옷을 바꿔 입었으면 합니다.」그리하여 임금님은 제왕의 표지가 있는 옷을 벗어서 목동에게 입혀주고, 자신은 목동의 초라한 웃옷을 입고 푸대까지 걸쳤습니다. 그러자 목동은 푸대를 걸치고 서 있는 임금을 가리켰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은 이런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을 왕좌에 앉히시고, 다른 사람을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시고 계십니다.」그러고 나서 목동은 다시 자기 옷을 입었습니다.

  임금님은 생각에 잠겨 서 있었습니다. 목동의 마지막 말이 그의 영혼을 불태우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용기를 차리고서 임금님은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난 하느님을 보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