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치골성지
성지는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자들이 숨어 살게 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마리아 신심 단체와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에 대한 신심이 최초로 생겨난 곳이다.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5대 교구장)는 병오박해가 끝나갈 무렵,수리치골 교우촌의 한 오두막에서 박해받는 조선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1846년 11월 2일)하고 '성모성심회'조선분회를 조직하였다.
+ 요한 복음 2,13-25
<이 성전을 허물어라.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말씀의 향기>
내 안의 우상 들여다보기 - 이의철 가밀로 노은동 주임
재의 수요일을 통해 이마에 재를 얹으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한 사순의 여정이 벌써 절반이나 지나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구 시노드와 교구설정 7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의 사순 시기는 우리에게 더 큰 의미와 은총의 자리매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로운 시기에 사순 제3주일의 말씀,곧 십계명의 선포라는 제1독서의 말씀과 십자가의 표징이라는 제2독서의 말씀,그리고 복음 말씀인 성전의 정화는 여전히 천년만년 이어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이 세상과 죄 많은 내 육신의 우상에서 헤매지 말고,지금이라도 생명의 하느님께로 온전히 되돌아오라는 주님의 간절한 권고이자 아련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나의 모든 우상들을 치우고,던져 버리라하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그 자리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참된 정결례를 사순 시기 동안 준비하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상의 욕심,지금 나에게 그것은 무엇일까요?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만,그중에 가장 으뜸은 이 신앙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습관화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곧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주님께 대한 무관심이라는 우상이 가장 크게 머물러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매번,매년 이 거룩한 사순 시기를 주님의 거룩한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바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에 대한 농도를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신비로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님 사랑의 체험에 얼마나 진정한 나만의 의미성을 가지려 내 스스로가 노력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많은 교우님들은 성서필사,사순특강,나눔실천,십자가의 의미를 가지려는 나의 정화를 향한 능동적인 실천인지를 거듭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 의미를 찾으려 노력한다면 십자가의 신비를 통한 주님의 참된 사랑을 체험할 것이요,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내가 숨기고 있는 나의 우상 안에 머물러 또 다시 전례력의 한 부분으로 이 사순 시기를 무의식적으로 보내게 될 것입니다.
사순 여정의 절반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분명이 여정은 작년과는 다른 여정이자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것을 희망하며 자신의 소중한 십자가의 의미성을 이 시기에 찾아 노력하는 것이 그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제자됨이자 참된 지혜입니다.
따라서 이 사순의 여정 안에서 나를 위한 완전한 희생의 대속인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묵상해 보는 거룩한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1,24)
via의 시선(나를 보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남자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강박의 틀,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져야 했고, 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숨겨야 했습니다. 감정의 자리에 규율과 규칙을 심어 놓고,감정이 몸을 흔들 때 규율과 규칙의 끈을 잡았습니다.
감정을 숨기기 위한 좋은 방법은 중독입니다. 이른바 합법적인 중독을 선택합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유흥, 힘들 때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찾지 않습니다. 찾아봐야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잊기 위해서 몸과 마음에 다양한 알콜을 채웁니다.
마주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직면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직면과 도피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만취와 잠 등의 중독으로 도망쳤습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 보지 않으면 됩니다. 세상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과 즐거움을 주는 것,즐거움을 주는 것을 선택하면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한 번 뿐인 삶,즐겁게 살기도 바쁜데 심각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누군가의 주장에 동의의 합장을 합니다. 그런데 즐거울수록 외롭고 허전합니다.
그리고 허락되어진 시간이 채워질 수록 이전에 경험했던 즐거움이 더이상 즐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움의 중독에 빠졌던 몸과 마음의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몸과 마음이 경험하는 즐거움과 고통의 크기가 반비례로 경험되면서.. 묻게 됩니다. 이제서야 나를 마주합니다.
강하지 않은 나,아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강하지 않았던 나를 봅니다. 생존을 위해서 강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봅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벽할 수 없었던 나입니다. 그럼에도 살기 위해서 완벽함을 선택해야만 했던 나를 만납니다. 나약하지 않았던 나를 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약하게 보여야 살 수 있었던 나를 만납니다.
TV화면에 보이는 장면이 나의 감정을 흔듭니다.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제가 흘리는 눈물은 나를 위한 눈물입니다. 어린 시절 내가 갈망했던 따뜻함을 지금 눈으로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짜 팀의 탄생
혹자는 우리에게 '너희는 잘 하지만 너희가 나설 곳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팀은 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울랄라 세션'의 리더 임윤택씨가 울먹이며 말한 수상 소감입니다. 그 당시 이 수상 소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15년의 무명의 시간을 함께 꿋꿋하게 지나온 사람들의 진실한 고백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아무리 친한 사람끼리라도 서로 한 팀을 이루면 오래가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갈등이 표출되고,서로의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팀은 해체될 위기에 처합니다.
특히 팀이 잘 나갈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상황이 어려워지면 갈등은 더 심각하게 증폭됩니다. 결국 좋았던 사람끼리 서로 원망하며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울라라 세션을 통해 팀이 어떻게 탄생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팀은 특공대가 아니었습니다. 각자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고 팀이 유지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각자 잘 할 수 있는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상대방과의 조화를 위해 자기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그때 비로소 진정한 팀이 탄생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동안 각 나라에서 온 수많은 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기쁨의 눈물은 메달의 색깔이나 개수보다 서로 아름답게 배려하며 키워 온 사랑의 결실이라는 것을..
인생은 평생 어떤 팀에 속한 팀원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가족,학교,직장 그 어디에서나 우리는 팀을 이룹니다. 행복한 팀워크를 위해 무엇을 할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사흘 안에
세운 성(城)에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성(城)은
주님이십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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