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거산성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이주기(移住期)에 형성된 성거산 소학골 교우촌과 1830년 대에 형성된 서들골 교우촌은 박해시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신처요, 은신처였다. 1866년 10월(음력) 교우촌이 발각이 되면서 23명이 순교했다. 현재 병인년 10월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공주 감영에서 순교한 5명의 시신만이 성거산 성지 제1줄무덤에 묻혀 있고,이외에도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계신다.
마르코 복음1,12-15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그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의 향기>
시간 속의 광야 사순절 -신인수 안드레아 탄방동 주임
'슈퍼 블러드 블루문(Super blood blue Moon)' 지난 1월 31일 우리 하늘에 뜬 달을 일컫는 말이다. 평소 하늘을 살피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날은 한 번쯤 하늘을 올려 봤을 것 같다. 안타깝게도 탄방동성당 마당에서는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달에 관심이 없었는데 언론을 통해 그런 달이 뜬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뉴스가 있었지만 밤 10시 나를 움직인 것은 달이었다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매일 새로운 뉴스가 나오고,새로운 정보를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런 현실에 중요성을 더해 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기준과 잣대로 무엇을 선택하는가? 성공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인가? 무엇이 우리 삶의 선택의 기준인가? 과연 그런 선택의 기준으로 사는 삶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가?
오늘 복음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광야의 거칠고 황량한 생활 그 자체가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어떤 뜻이 있을까 상상해 본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예수님께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고,또 식별이 필요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30년 동안 세상에서 어머니와 이웃들속에 어울려 사셨던 예수님께는 삶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지혜들이 나름대로 가치 있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공과 명예,돈,권력이 매력적인 가치로 세상을 통해 그분께로 전달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만 마주 대할 수 있는 광야에서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의 생활이지만 참된 기준을 세우는 그 자체가 예수님께는 천사의 시중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된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시간 속의 광야가 사순절이다. 비록 삶의 공간과 시간을 떠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으로 우리 삶의 결핍을,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 내면의 기준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성공,돈과 권력과 명예가 최고의 가치라 말하는 세상의 유혹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길을 묻고,그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순절 광야를 살아가는 길이다.
via의 시선(오늘,행복하세요)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뒹굴뒹굴거립니다. 침대와 밀착된 몸을 분리하기 싫습니다. 명절의 긴 연휴,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낼 것입니다. 굳이 나갈 필요도 없고 나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긴시간 동안 이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서로의 만남으로 기쁘고 행복한 날,저는 이 날을 홀로 쉴수 있고, 그나마 길게 다른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내 멋대로 지낼 수 있는 자유의 날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지냅니다. 애써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아니라 어딘가가 떠오르면 거처를 벗어나 길 위에 섭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습니다. 날씨도 풀렸으니 떠나도 될 것 같습니다.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행복의 기억을 잃어버리며 사는 것 같습니다. 잊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며 삽니다. 잃어버리며 사는 행복의 자리는 고독이라는 기억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고독 안에서 경험되는 느낌은 고요입니다. 불편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미러링되는 나를 경험하지 않고,의식하고 행동하는 나를 바라보는 나를 봅니다.
지금의 나, 다시 뒹굴거리고 싶은 나를 느낍니다.
오늘, 행복하십시오. 오늘,누군가를 만나서 그리고 그 누군가 때문에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저도 고요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겠습니다.
원탁의 식사
얼마 전 해외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비록 3박 4일의 짦은 여행이지만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행 전에는 사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라,처음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낯선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금방 사라졌습니다. 원형 식탁 덕분이었습니다. 원형 식탁은 나이도,사는 곳고,직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게 한 마법의 도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여행 내내 원형 식탁에서 밥을 먹다 보니,서로 얼굴을 잘 볼 수 있고, 대화가 자유롭게 이루어졌으며,누구 한 명이라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중화권 나라에서는 가족들이 자주 볼 기회가 없어 명절에 한자리에 모일 때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는 원형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형 식탁보다는 직사각형 식탁이 더 인기가 많습니다. 둥근 식탁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데다가,식구가 많지 않은 경우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행복한 시간.. 비록 원탁에서 식사하는 가정이 많지는 않겠지만,마음만이라도 모나지 않은 원형 식탁에서 식사하는 그런 느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눈이 마주치고, 조금 더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그런 둥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지상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요?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사랑을 전하려고 모인 훈훈한 설날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광야에서
숨이 멈춘 듯
긴 호흡
가슴에서
휘돌아 나오는
마음의 기도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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