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5년 주보

연중 제11주일 2015년 6월 14일(나해)

모든 2 2015. 6. 14. 21:30

황새바위 성지/펜화

안종찬 바오로.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 마르코 복음. 4,26-34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말씀의 향기>

 

  보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작아도 행복합니다!  - 이승현 대건 안드레아 당진 보좌

 

  살다 보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어느새 해결되어 있거나, 복잡한 문제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거나,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신앙인은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이끄심에 찬미와 감사를 올립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씨가 자라는 성장과정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수확하는 역할을 할 뿐, 열매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르코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이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와 달리 이미 씨가 뿌려져 있습니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뿌려지는 씨'가 아니라 '성장하는 씨'입니다. 씨가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을까요? 우리는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라는 말씀에서 씨의 성장에 땅이 한몫을 차지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땅 혼자서 이루어낸 일이 아닙니다. 씨만 뿌리고 사라진 사람과 달리, 땅의 외로운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섭리의 작용을 계속해서 받아들입니다. 태양, 기온, 비, 바람이라는 섭리가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땅과 대자연의 섭리로 씨앗은 계속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둘째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는 비유입니다. 너무 작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씨앗이지만, 작게는 2미터, 크게는 3-4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니 놀라운 따름입니다.

  두 가지 비유의 말씀은 뿌려진 씨가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것, 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에 엄청난 내재적(內在的) 힘이 담겨 있음을 알게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섭리가 늘 우리 안에 작용한다는 것, 작지만 그 안에 엄청난 힘이 담겨 있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할 수 있지만, 그 순간에도 하느님의 나라는 그분의 섭리 안에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작고, 부족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참 '작은 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씨앗을 잘 돌보고 가꾸시어 당신 계획의 큰 도구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 조급해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의 섭리가 나를 이끄심을 기억합시다. 내 안에 담겨진 은총의 씨앗이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그 안에 놀라운 신비가 담겨 있음을, 모든 것을 뛰어넘을 엄청난 힘이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개신교 이단 「하느님의 교회」(6)

이영일 야고보 신부/사목 기획국 차장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분별과 대응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본 이단과 교회(밑줄)를 간략히 분별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삼위일체 개념에 대한 혼동과 자의적 해석
 -본체로서는 한 분이시나 서로 구분되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며,높고 낮음,선(後)도 없이 같은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2. 성경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편향성
 -교회는 성경 73권 전부를 무오류(無誤謬)한 하느님의 계시고 받아들이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유기적으로 해석
 3. 교주에 대한 신격화와 교리 일관성 결여,종말론(요한묵시록)강조
 -'하나님의 교회'도 역시 교주인 안상홍 씨를 재림주요,또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며,보혜사라고 주장,일관성이 없이 교주에 관한 교리를 때때로 바꾸어 가며,타 이단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
 4. 기성교회 비판,기존 신자들은 전도의 대상
 - 십자가/성화상 문제,인식일을 안 지키고 주일을 지킨다는 것, 성탄절이 이교도의 문화에서 왔다는 식의 비판,이는 기성교회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 심리적 현상.

 

  그렇다면 이러한 분별을 지니고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 신자들을 만났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까?

 

  우선, 당황하지 마라.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먼저 자신이 천주교인임을 밝히고 정중히 사양하는 방법이 좋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전에 언급한 설문지에 나오는 '주일'이나 '성탄절'문제를 통해, 기존 교회와 신자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들어 혼란스럽게 하며, 집요하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유도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교리적인 반증도 요구할 것이다.

 

  이에 우리가 분명 그들의 논리를 먼저 이해하고, 후에 올바른 신앙과 교리로 변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자들이 그들이 질문들에 대해 조목조목 답하는 것도, 교리지식의 복잡한 문제일 뿐, 그들이 신학적인 분석을 절대 고마워할 리도 없다. 우리들 역시 시간적 여유도 없는 오늘날이다. 따라서 쉬이 집 안으로 들여 논(論)하거나 만남을 오래 갖지는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들을 교리 훈계하고, 계도하려 하기보다 '신앙의 증거', 사랑과 섬김의 본을 먼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이단에 대해 신자들이 지닌 거부 반응이나 극단적인 적대감은 버리고 먼저 마음을 쓰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찾아온 그들은 오히려 환대하고 성심껏 챙겨줘라.' '물  한자 내어줘라.' 분명 성 아우구스티노가 말한 것처럼 그들도 결국 진리를 좇으나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 정도를 이탈한 우리의 형제임을 기억해요 한다. 늘 교회는 주님의 자비로우심에 힘입어, '이단'이라는 죄와, '이탈'한 사람에 대한 미움, 불신보다 언제나 사랑과 용서, 자비, 연민이 우선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누구든지 심판과 판단보다 먼저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주님 말씀대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더욱 자비롭고, 연민의 마음과 도움의 손길을 나눌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청하며 그동안의 글을 마치겠다.

 

그동안 글을 집필해 주신 이영일 야고보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65)>

 

혼자 든 백짓장은 무겁다

 

공통(共通) 보다 공감(共感)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기 마련입니다. 저는 개별과제보다는 팀별 과제를 더 선호합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서로 힘을 합해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끔 팀별 과제를 내주는데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팀원끼리 갈등하고 반목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될 때입니다. 어떤 팀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데, 어떤 팀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상대방에 대한 원망의 한숨만 토해 냅니다.

 

  어째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일을 수행하는데 그 과정이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아래와 같은 차이점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원망 가득한 팀의 공통된 특징]

 

  1. 만나자마자 일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2. 과정보다는 결과에 대해 늘 신경이 예민하다.

  3.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는 일이 빠르다.

  4. 일을 하는 사람만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정말 안 한다.

  5. 돌아서면 각자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웃음 가득한 팀의 공통된 특징]

 

  1. 일보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2. 실수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미안함을 꼭 표현한다.

  3.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고마움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4. 일을 하면서 계산하거나 생색을 내지 않는다.

  5. 돌아서면 각자 서로가 가해자가 아닌지 늘 돌아본다.

 

  종이 한 장보다 얇은 마음의 씀씀이가 극과 극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 작은 차이로 한쪽은 인생 최고의 추억을 완성하는가 하면, 또 다른 쪽은 결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을 만듭니다.

 

  인생은 나 혼자만의 개별과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공동과제입니다. 하느님은 인생을 편하게 살라고 공동과제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두가 고통스러운 공통(共通)의 과제로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한 알의 겨자씨에

우주를 담아

아주 작은 마음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


내 기도 여기 있어

내 삶이 여기 있고.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말씀을 믿는 믿음

 

  며칠 전 아는 분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내주셔서 무심코 열어 보았는데,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고 가슴이 뭉클하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가끔 좋은 영상을 보내주셔서 감사했는데, 너무 좋은 내용이라 하루 종일 잊혀지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동영상 내용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입니다. 16년 동안 여자 다이빙 10m에서 중국이 금메달을 가져갔는데, 여전히 1,2위를 놓고 중국 선수끼리 대결하는 모습을 모든 카메라맨들이  찍고 있을 때, 한 카메라는 미국의 로라 윌킨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성적이 5위였는데 올림픽 출전 3개월 전에 오른쪽 발뼈 부상으로 7주간 병원에 있으면서 올림픽을 포기하려다 출전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3차전까지 1등과의 점수 차이가 60점이나 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로라 윌킨슨은 다이빙대에 서서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렸고, 4차전과 5차전에서 1위로 올라서면서 미국은 36년 만에 여자 다이빙 1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다이빙대에서 무엇을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냐는 질문에,필리피서 4장 13절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외우는 것이라고 하며 "저에게 능력 주시는 분이 이 일을 이루어지게 하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우리는 저마다 말씀 안에서 자신의 신앙을 잘 이끌어 가고 있고, 저마다 감사의 은총을 받고 있는 것도 많을 것입니다. 이 동영상을 보면서 저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와 가족을 위한 기도 중에 다른 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말씀을 믿으며 믿음의 성장을  거듭한다면  더 많은 감사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하고, 주관된 신앙의 중요성에 앞서 커다란 능력과 하느님의 말씀을 잡고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 년의 반을 보내고 있는 지금, 자매님과 형제님들의 마음속에도 말씀을 새기는 좋은 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앗 - 이해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에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해 주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고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