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원성당(대전남부지구)
본당 설립: 1979.9.19/주보성인:루르드의 성모마리아
+ 마르코 복음. 5,21-43 <또는 21-24.35-43>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였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내가 저분의 옷을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탈리타 쿰!"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말씀의 향기>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 김철희 시몬 유천동 보좌
어린 시절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장래희망으로 한 번쯤은 대통령을 꿈꾸듯, 교황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성소의 불씨를 지피는 하나의 씨앗이었지만, 교황이라는 직책에서 오는 직무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았다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연중 제13주일이자 교황주일을 맞아 강론을 준비하다가 문득 재작년에 개봉한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앞으로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자, 결국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심정을 밝히며, 사임을 표명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앙적으로 탄탄하지 않고, 결말이 뒤숭숭하기는 하지만, 비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아버지로서 교황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해 줍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인 이상 나약함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교황이든, 신부든, 수도자든, 신자든,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약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자기 힘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낫게 하러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마지막으로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그는, 자기 집의 사람들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마지막 희망마저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분께서 함께 계시지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은 그분께서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상황에 따른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등,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많은 생각들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더 무겁게만 만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말씀만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정말 믿기만 하면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그런 두려움에 쌓인 생각조차 버리고 당신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만큼이나 무거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것을 지고 갈 수 있습니다. 교황주일을 맞는 오늘 특별히 하느님의 은총이 교황님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청하며, 우리 자신들도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말씀과의 친교(2)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창조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은 부르심과 이집트 탈출, 광야 40년 여정과 가나안 정복 그리고 유배와 귀환의 오랜 역사를 통해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역사의 시작인 창조 역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세상 창조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창세 1,3)로 시작하여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는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생명의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고백입니다.
나아가 성경은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곧 창조라고 말합니다. 남의 나라 땅에서 유배의 설움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방을 선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나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이사 45,8)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사람이 되어 오시어 구원의 은총과 진리를 펼치시고(요한 1,1-18), 그 역사가 완성될 때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새로운 창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묵시 21,5)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이처럼 성경은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죄인을 벌하시되 구원으로 이끄시고 결국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우신 뜻대로 세상을 완성해 주시는 모든 과정을 창조라는 주제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세리와 창녀를 친구로 맞아 주시며 그들이 사랑받는 온전한 삶을 회복하도록 해 주신 일도 그들에게 새 삶을 창조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속죄의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느님의 자녀, 하늘나라의 떳떳한 시민이 되도록 우리의 천상적 생명을 재창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이렇게 우리의 죽을 생명을 새 생명으로 다시 창조해 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사랑하려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셔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니 그분이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우리가 말씀을 늘 가까이 대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말씀에 대한 높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 우리의 육신적인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해 주듯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음식처럼 규칙적으로 자주 대하면 우리의 영적 생명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67)>
'복기'의 달인이 되자
바둑 좋아하세요? 저는 사실 바둑보다 알까기를 좋아합니다.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승부가 빨리 나는 게임을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저도 한때는 바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바둑판 위에 달랑 흑돌과 백 돌만 갖고 그렇게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상대방과 대화도 없이 오랜 시간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막상 대국을 끝내고 나면 한결 더 친해진 느낌이 드는 것도 참 신기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복기'였습니다. 대국을 모두 마치고 승패가 확정되면 서로 인사하고 바로 집에 가기 마련인데, 이미 끝난 대국을 처음부터 다시 한 수 한 수 그대로 되짚어 보다니.. 지구 상에서 그런 독특한 게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하수들은 감히 복기는 꿈도 못 꿔 봅니다. 일단 코앞에 보이는 승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한 수 앞도 내다보기 바쁜데, 첫 번째 수부터 다시 모든 걸 기억해 보라니요?
보기를 하는 이유는 되돌아보는 것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어느 지점, 판단이 오류였는지, 승부가 갈린 결정적 패착이 어디였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서로에게 많은 걸 배워갑니다.
승부는 한 번뿐입니다. 하지만, 한번 한 실수는 몇 번이고 반복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일기장에 적었던 후회를 지금 다시 적고 있다면, 작년에 했던 참회의 기도를 지금 또 되뇌이고 있다면, 복기 없는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복기 없는 바둑은 알까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돌아봄 없는 인생 또한 알까기 인생입니다.
짧은 승부에 빠른 결과.. 우리 사회는 우리를 점점 이렇게 승부에 빠른 결과.. 우리 사회는 우리를 점점 이렇게 몰아가고 있습니다. 복기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초스피드의 삶 속에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갑니다.
이제라도 자신과 상대방을 달달 볶는 '볶기'말고, 지나온 자신의 자리를 차분하게 하나하나 돌아보는 참된 '복기'의 달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정말 신의 한 수라는 걸 깨닫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바다를 품은 하늘
하늘에 내준 바다
수평이 보이는 지평에
작은 믿음의
큰 뿌리.
탈리타 쿰!(Talitha Koum) 소녀야 일어나라!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세례자 성 요한이시여!
모든 믿는 이의 교부이신 분,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 속에
그분의 자비심을 증거 하기 위해
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다스려 엄격한 극기 생활 속에
자신의 분수를 지킨 채 거친 광야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며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에 진리의 빛을 밝히려 오신 분.
높은 산을 깎아 내고 골짜기를 메우며
주님의 길을 평탄히 고르셨네.
권세의 이 세상 임금에게
뼈 아픈 충고를 마다치 않고
악에 물든 세상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낮은 자세로 오로지 주님만을 높여 드리고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완성하신
충절한 주님의 종이시여!
자신의 인기를 탐치 않고
정의로움과 의로움으로
만인에게 주님의 구원 사업을
선포하셨네.
님을 아버지로 모신 저는
천상에 계신 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세례자 성 요한이시여!
저의 수호성인이시여!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깨닫고
님의 발자취를 되새겨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렵니다.
너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주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아
죄사함의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리리라. 아멘
-성 요한 세례자 요한/만년동 성당-
교황, 환경 회칙'찬미를 받으소서'발표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경에 관한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를 6월 18일 발표하고 "정의의 새 패러다임으로서 온전한 생태계"를 제시하고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뛰어넘어"생태적 회개"를 할 것을 촉구했다.
이 회칙은 더불어 사는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이른바 '환경 회칙'으로, 총 6장 24항으로 이뤄졌으며, 환경 문제를 가톨릭 신앙의 관점에서 성찰하며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회칙"은 교황이 주요 문제에 관해 교회의 입장을 밝히는 최고 수준 문서로서, 환경에 관한 회칙은 교회 역사에서 이번이 처음이며 앞으로 환경 문제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 후렴구, "저의 주님, 찬미를 받으소서"로 시작하는 이 회칙은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으로 기술만능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으며, 온전한 발전을 위한 접근법으로 다양한 차원의 대화와 생태 교육을 촉구한다.
각 장 별 내용을 살펴보면, 제1장 "더불어 사는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17-61항)는 현재 전 지구적 생태 위기를 다룬다. 지구가 겪는 고통이 우리 자신의 고통임을 인식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을 요청하는 1항에서는 지구의 고통에 대해
* 오염과 기후 변화, 특히 화석 원료 사용으로 초래되는 지구 온난화
* 식수 오염
* 생물 다양성의 감소
* 낮아진 인간 삶의 질과 사회의 붕괴
* 세계적인 불평등
* 문제 해결을 위한 지도력의 부족을 언급한다.
제2장 "피조물에 관한 복음"(62-100항)은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성경에 비추어 설명하면서, 창조의 이야기를 통해 죄가 창조질서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리고 있는지 성찰하도록 이끈다. 인간의 삶은 하느님, 이웃, 지구와의 관계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창조질서의 균형을 깨뜨린 죄는 결국 이 관계의 불화에서 비롯된다고 이른다.(66항)
"고용과 노동 문제도 온전한 생태학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단기간에 걸쳐 더 큰 금전적 이익을 얻고자 인적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 행위이다."(3장, 128항)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101-136항)에서는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그 증상과 심층적 원인을 철학과 사회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성찰한다. 현대의 과학 기술 발전이 '도움'을 넘어 지식을 통한 인류를 지배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생태 위기의 범주 또한 고용과 노동 문제 등으로 확장한다. 인류에 올바른 한계와 바른 자제력을 가르쳐 주는 건전한 윤리, 문화, 영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세계에 대한 인류의 '지배'는 곧 책임 있는 관리임을 강조한다.
제4장의 제목 "온전한 생태학"(137-162항)은 회칙이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안하는 핵심 개념이다.
환경 문제와 인간 사회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포괄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세부적으로 환경 생태학, 경제 생태학, 사회 생태학, 문화 생태학, 일상생활 생태학, 공동선의 원칙, 세대 간의 정의를 다룬다.
제5장 "접근법과 행동 방식"(163-201항)에서는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대화를 통해 인류가 자기 파괴에서 탈출할 수 있으며, 특정 이익이나이념이 공동선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솔직하고 열린 토론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마지막 제6장"생태 교육과 영성"(202_246항)은 모든 이에게 '생태적 회개'(216-221항)를 권유한다. 뿌리 깊은 문화적 위기 상황에서, 교육과 훈련 없이 인간의 변화는 불가능하므로 환경 교육은 모든 교육 분야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 교육을 통해 일상의 습관이 변화하면 이는 생활과 소비의 방식,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권력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이른다.
회칙을 마무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의 신자들을 두 가지 기도, 곧"우리의 지구를 위한 기도"와 "그리스도인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를 바치도록 초대한다.
'찬미를 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제 선정부터 집필,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한 첫 회칙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가톨릭 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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