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위한 순종」조중원 신부(2014)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죽음에 이르기까지,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8)
+ 마태오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26,14-27,66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ㅇ 그러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겨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ㅇ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따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ㅇ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엑 말씀하셨다.
*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말씀의 향기>
일구이언(一口二言)과 일구일언(一口一言) "세상의 사람이되 세속적인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박종훈 안토니오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는 우리는 전례를 통하여,일구이언(一口二言: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한 가지 알에 대하여 말을 이랬다저랬다 바꿈을 이르는 말)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먼저,예수님 앞에 서 있는 군중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곳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자신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놓고, "다윗의 자손께 호사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라고 환호하며 그분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좀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환호하던 군중들이 갑자기 돌변하여,이제 와서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악에 바쳐 소리를 질러댑니다. 같은 사람의 입에서 환영과 기쁨의 외침이 배척과 분노의 외침으로 바뀌었으니,이는 분명히 일구이언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제자들의 떠나감에 대하여 예고하셨을 때,베드로는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과의 관계를 추궁 당하자 베드로는 세 차례에 걸쳐서 "모른다"고. "알지 못한."고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합니다. 같은 사람의 입에서 서로 다른 말이 발설되고 있으니, 이 또한 일구이언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비단,예수님 앞에 서 있는 군중들이나 베드로 사도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제주 해군기지 건설,한미 FTA체결,세종시 행정수도 이전,대통령임기에 관한 개헌 논의,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외에도 더 많은 사안들이 있을 듯합니다만,지금까지 열거한 사안들은 정권을 잡은 여당과 야당 간에 그리고 다시 정권이 뒤바뀐 상황의 여당과 야당 간에 계속 말이 뒤바뀐 사례들입니다.
군중들,베드로 사도,그리고 여당과 야당.. 그들이 일구이언하는 데에는 한 가지 공통된 목적이 있는데,바로 이권입니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일구이언함으로써 추구하는 이득을 얻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이렇게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이권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할 '때마다. 사회는 점점 불신의 늪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득실에 따라 상반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비추어 일관된 목소리를 내는 것,바로 이것이 참신앙인의 모습이고나아가서는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불신을 걷어내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세상을 가꾸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70)>
'청소년이해'를 위한 꼭지(13)
-'인터넷 과다사용 청소년과의 '대화'
인터넷 사용이 많은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거나,또는 상담을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할까요? 인터넷 과다사용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거나 상담을 할 때 꼭 알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아이들을 중독으로 몰지 말라: 학생 스스로 부정적 인식을 가지면 대화나 상담이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②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려 하지 말라: 생활습관상의 문제이므로 조급하게 몰아붙이면 오히려 부작용이 유발할 수 있습니다.
③ 공부를 강요하지 말라: 공부에 관심자체가 없으므로 공부만으로는 동기부여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④ 컴퓨터를 없애거나 못하게 하면 역효과: 금단현상,부모와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⑤ 게임을 못하게 하려고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지 말라: 상담자와 청소년 사이의 벽이 높아지면 상담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⑥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 말라 : 오히려 서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과다청소년과 실제적인 대화나 상담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다음의 몇 단계가 필요합니다.
1단계는 과다사용 청소년에 대한 몇 가지 자료수집이 필요합니다.
① 중독 척도를 분석하여 인터넷사용 실태나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② 학교 생할은 어떤지 파악해야 합니다.
③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의 컴퓨터 이용시간과 사용시간,집 안에서 컴퓨터의 위치, 아이들이 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부모들이 잘 알고 있는지,아이들이 컴퓨터를 할 때 부모님의 태도,여가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등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나 학부모에게 자료 조사 시 자료수집에 관련되어 청소년들 당사자가 가능한 모르게 해야 거부반응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2단계는 라포 형성 입니다. 즉 간단한 보드게임을 함께 하거나,좋아하는 것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며 긴장감 줄이기,아이들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이 만나서 소외감을 방지하기,모바일 등을 이용하여 친밀감 형성하기 입니다.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것은 라포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인터넷 이야기를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단계는 인터넷 이용 실태 분석으로 이제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4단계는 적극적인 대화로써 인터넷을 과다 사용하게 된 원인을 찾아야 하고, 스스로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고 분별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또 과다 인터넷 사용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 함께 돌아보고,힘과 용기를 주어야 하며,인터넷을 자기 생활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신현문 발렌티노 신부 대전 정림동 살레시오 청소년수련원 원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성찬 제정과 축성문
Narratio instituionis et consecratio 2
성찬 제정문은 최후 만찬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감사 기도의 각 양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서술되어 있지만,본질적인 내용은 같으며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그래서 단지 서술문이나 사실 전달을 위한 내용으로 생각하기 쉽지만,실제 성찬 제정은 분명 성부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빵을 먹고 마시는 일이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임을 말씀하셨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찬 제장과 축성문을 들을 때,우리의 심판을 먹고 마신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8)>
부동자세만큼 슬픈 건 없다
살아있음은 변화한다는 것
저녁 식사를 마친 엄마와 아이는 아빠를 마중 나갔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엔 벚꽃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이 가로등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참 보지 좋았다.
엄마 : 아빠 얼른 보고 싶지?
아이 : 그럼요! 첫 번째 버스에서 내리시겠죠?
엄마 : 난 세번째 버스!
아이 : 버스 알아맞히는 사람 업어 주기!
엄마 : 좋아! 엄마가ㅏ 이기면 업어줘야 한다.
아이 : 그럼요.저 키도 컸고 힘도 세졌어요.
엄마 : 그래...나무처럼 쑥쑥 커서 엄마도 좋아.
아이 : 엄마! 저기 저 나무엔 왜 꽃이 안 피었어요?
엄마 : 그야..죽은 나무니까 그렇겠지.
아이 : 나무가 죽었는지 어떻게 아세요?
엄마 : 봄이 왔어도 달라진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있음을 '가늠하는 기준은 '변화'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아침이 저녁이 되어도,오늘이 바람이 어제의 바람과 달라도,전혀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부동자제로 서 있는 나무는 분명 죽은 나무입니다. 작은 바람 한 줌에도,실낱같은 한 뼘 햇살에도 반응하는 나무가 생명의 나무이듯이 우리가 살아있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달라야 합니다.
절대 변하지 않기보다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바라보시는 눈길..그것이 하느님의 눈길입니다.결코 변화하지 않는 완고함보다 변화하면서 그안에 타인을 품는 따뜻함..그것이 하느님이 우리를 한없이 믿고 기다려주시는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겠지만,변화하는 사람에게 4월은 행복한 부활의 달이 아닐까요? 변화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당은 그저 특별한 건물일지 모르지만,변화하는 사람에게 성당은 기적이 시작되는 인생의 소중한 랜드마크는 아닐까요?
앙상한 내 영혼
투명이 꽃피운 것은
몸과 피로 대속하신
주님의 큰 뜻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세상을 보는 지혜 中 - 발타자르 그라시안 -
아픈 손가락을 보이지 마라. 그러면 모두가 그것을 찌를 것이다.
아픈 것을 하소연하지 마라.악惡은 늘 약점이 있는 곳을 노리니까.
그대가 분노하면 타인의 기분만 돋구워줄 뿐 아무 쓸모가 없다.
나쁜 의도는 범행을 찾으로 돌아다니면서 아픈 곳을 찾을 때까지 수천 번
시도할 것이다. 그러니 신중한 자는 결코 자기가 상처 입은 것을 말하지 않고
개인적 불행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운명조차도 그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드러내지 마라. 전자는 끝나도록,후자는 지속되도록 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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