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연중 제31주일 2017년 11월 5일(가해)

모든 2 2017. 11. 6. 15:04

 

전의성당(공주지구)

본당 설립:1980.4.11/주보 성인:성 요셉

 

+ 마태 복음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장터에서 인사받기를,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또 이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말씀의 향기>

 

가을의 나무처럼! 그리고 주님처럼! - 백현 바오로 둔산동 주임

 

 

   11월 위령성월은 교회의 마지막 달입니다. 이 한 달 동안 교회는 죽음을 묵상하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위령성월 속에서 가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생명의 태동을 알리는 연녹색의 봄이 있었고,녹음이 짙은 여름도 있었지만,가을이 주는 낙엽의 빛깔은 결코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자연을 닮아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뭇잎은 낙엽이 되기를 선택하면서 아름다운 빛깔로 변해갑니다. 나뭇잎을 떨궈낸 나무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고,새로운 생명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죽음은,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여야 합니다. 매 순간 삶에서 당신의 거룩한 죽음을 바라보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잘 살려고 하는 것보다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큰 숙제이자 사명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멋들어지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결코 잘 사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고, 더 많이 안다고 자처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가슴에 새기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누군가 잘 보라고 잔칫집에서는 윗자리에 앉았고,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찾았고,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했습니다. 만나면 지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들은 그러지 말라고,섬기는 자 되라고. 낮추는 자 되라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과 삶이 없다면,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비굴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낮춤과 섬김은 낙엽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떨굼과 섬김은 가장 아름답게 하고,그 떨굼을 통해 겨울의 죽음을 넘어서 봄의 생명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낮추고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낮춤과 섬김으로 세상에 힘을 주고 생명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위선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내 안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떨궈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으로 넘어갈 수 있고, 하느님께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11월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느님께 맡겨져 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죽음조차도 하느님의 품 안에 있음을 감사하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via의 시선(무엇을 할 것인가)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주간의 글-

 

  다투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자신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 목에 핏대를 세웁니다.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화를 느낍니다. 적대감을 낳는 환경을 유지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때문에 그들은 '내 편'과 '네 편'으로 구분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적이 분명해야 선택과 행동이 쉬워서일까?

 

  그런데 그들에게는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보입니다. 그때그때,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 따라 동지와 적은 새롭게 규정됩니다. '승리'를 위한 진군이 최상의 덕인 그들에게 '명료함'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욱'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담이 덜한 사소한 일에 갑자기 화를 냅니다. 솔직하게 말했다가 상처 받을까 두려워 하는 사람들,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감추기 위한 선동의 언어로 '나와 너'를 분리시키고 갈등을 유인합니다.

 

  어린아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이미 어른이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일정부분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그리고 지도층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입니다. 힘도 있고 돈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뀌지 않습니다. 역설과 지혜가 아닌 독설의 저주로 사람의 삶의 상태를 파괴시키는 사람들,그들은 독설의 저주로 얻을 것이 많다고 실제로 그렇게 믿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끊임없이 외적요인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탓하며 기웃거리기를 반복합니다. 그들에게 '카타바시스'-밑바닥으로 떨어지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매몰비용의 오류 속으로 깊이 빠져들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의 정당화에 악착같이 매달립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의 점이지요. 선으로 이어지는 점,저는 그 지점에서 한 때의 문제를 일시적인 것으로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영속 혹은 지속되는 문제로 만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떠나보내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이 미래의 기쁨이 될수 있도록 미래를 떠나 현재로 돌아오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살 수 있는 그리고 살아가는 마지막 시간과 장소는'지금 여기'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85)>

 

어머니가 천사인 이유

 

 

  누구나 자신의 자녀를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이춘선'마리아 자매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막내아들이 사제서품을 받고 첫 부임지로 떠나는 날 마리아 자매님은 아들에게 작은 보따리 하나를 건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풀어 보라고 당부와 함께..

 

  아들은 보따리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 부임지에 도착하자마자 풀어 봅니다. 그 안에는 자신의 배냇저고리와 한두 살 무렵 입었던 작은 옷,그리고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글을 배운 적이 없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쓰신 편지에는 이런 짧은 글이 적혀 있었죠.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봉헌한 '이 춘선'마리아 자매님에 관한 책을 읽으며 엄마라는 존재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모진 가난 속에서도 마리아 자매님은 자녀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하시면서 자녀들을 성당에 보내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영혼이 굶어 죽는데 육신이 배부르면 뭐하겠느냐?"

 

   삶의 고통을 이겨 내며 결코 길을 잃는 법 없이,오로지 주님의 빛을 따라 사신 어머니는 그 모습 그대로 자녀들에게 등불이 되었습니다.

 

   여덟 명의 자녀 가운데 네 명의 아들을 신부님으로,한명의 딸은 수녀님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이춘선'마리아 자매님.. 누구도 이루지 못할 기록을 남기신 것이 아니라,누구도 잊을 수 없는 하느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오랜 여운으로 남기셨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한 계절이 접히고

문턱 없는 마음으로

바람이 들어오면

 

저만치

12월의

투명한 그림자 위로

낙엽이 지천이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