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원 신부(2014)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1,11)
+ 마태오 . 28,16-20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의 향기>
복음 선포와 홍보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르 13,31)
-김용태 안드레아 홍보국 차장-
미디어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많은 뉴스와 이야깃거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가능한 손전화나 전자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뉴스를 검색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뉴스가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작고 가벼운 뉴스를 물론이고,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뉴스들도 얼마가지 않아서 사라지고 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무엇인가 새로운 뉴스들로 가득한 신문과 포털 사이트들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자신도 이런 뉴스처럼 사라져버리고 말겠지?'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또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가벼움을 느끼며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전해지고 있고 더 널리 퍼지고 있음을 바라보며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대중 매체의 발달로 다양한 수단을 통해 홍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달하고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사실 본질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두서없이 전해서는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크고 가장 매력적이면서 가장 필요한 것에 집중할 때,단순하지만 설득력 있고 힘찬 선포가 됩니다. 실천 없이 말만 하는 사람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말없이도 행동하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더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홍보주일을 보내며 입으로만 복음을 말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또한 우리의 삶이 주님을 알리고 전하는 복음의 도구가 되기를 청해봅니다. 이 세상에서는 숩게 잊힐 우리들이지만,하느님 안에서는 영원히 남아있을 사람들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세상으로(4)
선교는 복음의 핵심으로부터(1)
계시된 모든 진리는 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그 가운데 복음의 핵심 곧,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더 직접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진리의 서열 또는 위계가 있다'고 한 것이나 토마스 아키나스 성인이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 또한 그고유의 '위계'를 지닌다고 가르친 것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교를 핵심으로 하는 사목은 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강요하려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라고,그리고 다른 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나와 다른 이들의 공동 선익을 추구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특정한 이념적 선택에 바탕을 둔 고리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복음의 향기'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며 단호히 강조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이 사랑의 초대가 희미해질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교황님은 우리가 복음을 살아가고 선포할 때 구체적인 역사 즉 언어와 상황의 일정한 한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신앙의 유산과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은 서로 별개의 것입니다." 즉, 각 시대에 맞는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표현하는 방식의 다양성을 찾기 위하여,교회 안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들도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어떤 관습들은 오랜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고 또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이러한 것들을 재고해야 합니다."교황님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시며,교회가 나중에 추가한 규범들이 "신자들의 삶에 짐이 되지 않도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앙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호함을 지닐 수밖에 없지만,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로 우리가 전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복음 선포자의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격려하십니다. 사실 복음 선포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선포하면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삶을 회피한다면,그의 말이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미사 속 숨은 보화>
기념 Anamnesis 1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것을 기념하여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교회는 이 명령에 따라 매일 성찬례를 거행하며 그리스도를 기념합니다. 미사는 곧 그리스도의 기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찬 제정문을 바치는 것은 이 기념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여기에 기념 기도를 더 붙이는 것은 교회가 주님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말씀에 대한 환호 다음에 곧바로 기념기도를 바칩니다.
<6.4 지방선거 투표합시다!!>
올바른 투표는 그리스도인의 의무
길거리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만 보아도 눈물이 나려 합니다. 미안하고 안쓰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정작 자신들은 해맑게 웃고 떠들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슬픔과 아픔,분노의 감정이 온 국민의 마음을 할퀴고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 이후 '실제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물을 때 마음은 더 착잡해집니다. 돈의 숭배와 개인주의,경쟁 일변도의 사회에서 불의와 비리를 묵과해 왔던 나라전체가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변화는 요원하지만 한 것일까요? 또래 친구들의 사고 순간을 매체를 통해 지켜보고 엄청난 상처를 안고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감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입시 경쟁의 바다 속에서 숨 못 쉬고 있는 학생들이 숨 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소명을 깨닫고 삶의 참된 가치를 지향하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교육자들을 도와 교육환경을 개선시켜 줄 교육감을,선거를 통해 학생들에게 선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육이 입시 경쟁의 바다에서 구조되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는데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게 해 줄 혁신적이고 훌륭한 교육감이 필요합니다.
지방 자치 단체장과 교육감 선거에 임하면서,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기보다 '누가 하느님 마음에 더 드는지 '를 여쭙고,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후보의 공약이 복음의 정신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가,누가 진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가'라고 분별의 기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 비슷비슷해 보이고 누가 잘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후보의 진정성과 됨됨이, 그 분들이 제시하는 전망과 실천 사항을 꼼꼼히 읽어보고 토론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니다. 교육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투표에 반영되도록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겠습니다. '어른들이 알아서 결정해 줄 테니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뼈아픈 폭력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여러 후보자들에게 실망하여 기권하는 것은 '무관심'의 방법으로 가장 나쁘게 정치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성지가 너무나 더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왜 정치가 더러울까? 왜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의 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그들 탓으로 돌리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기준으로 분별하여 투표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권리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입니다.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일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이단(異端)신흥종교,신천지를 조심합시다(4)
요즘 어떠세요? 신천지는 이렇습니다③
불신에 대한 관심
우리 안에는 작지만 많은 불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만이 곧 불신이 되어 우리를 하느님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성당은,구역은 특별할 것도,재미도 없어요. 신앙생활이 이런 줄 알았으면.. 그런데 요즘 ○○본당에 ○○도 한다던데."
"우리 성당은 내가 잘 될 때만 인정해 주던 공동체더군요.경제생활이 어려워지니,저를 피하더군요."
"신앙생활의 궁금한 것들을 전혀 해소하지 못해요.신앙의 궁금증들이 있어도 신부님이나,수녀님들과 함께 대화해본적도 없어요."
"아는 것 하나 없는데,그저 성당의 구역장,단체장을 맡기네요.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하나같이 부담스럽기만 해요."
이렇듯 누구나 한번쯤은 교회와 사람들에 대한 작은 불만을 갖곤 합니다. 그런데 이 불만들에 대해 신천지인들이 관심을 보인다고 합니다.
먼저 신천지인들이 한 본당에 위장하여 들어갈 때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신앙생활만을 잘 포장하며 자신에 대한 신임을 높여 갑니다.그리고 나서 공동체 안에,혹은 구성원 사이에 있는 작은 부족함을 드러내어 불만을 표현하게 만들어 그들은 우리 공동체에 불신의 싹을 틔우려 한답니다.
마침내 그들은 공동체 안의 불신을 더욱 눈에 잘 보이게 만들려고,신자들과 신자들,신자들과 신부님,신부님과 수도자들 사이에 거짓과 이간질마저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느덧 우리는 그러한 분열을 이끄는 불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보다 다른 이의 부족함만을 곧잘 바라봅니다. 누구나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장점을 지니고 있고,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체의 단점만 보기보다는 장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게습니다. 그럴 때 불만보다 먼저,이해를 통해 더 좋은 신앙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먼저 바라보시지 않으십니다.
-이영일 야고보신부. 사목기획국장-
성령께 드리는 기도(2)
비오 10세 교황의 성령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영이시고, 빛과 사랑의 영이신 성령님, 당신께 저의 이성과 저의 마음과 저의 의지와,이승과 영원의 저의 전 존재를 봉헌합니다. 저의 이성은 언제나 당신의 말씀과 당신이 확실하게 이끌고 계시는 가톨릭교회의 가름침을 기꺼이 듣겠습니다.
비오니, 성령님, 항상 제 마음이 하느님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하시며, 제 의지가 하느님의 의지를 닮게 하소서. 또한 저의 전 생애가 우리 주님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덕을 충실히 본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당신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하소서."
헤리베르트 뭘렌의 성령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저는 지금 제 삶에서 저를 모욕하거나 저에게 상처를 준 모든 이를 당신 성령의 힘 안에서 용서하고자 합니다.제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도 저의 행복과 건강을 더 원하고 계시는 주님, 청하오니,아직도 당신의 용서하시는 힘으로 채워지지 못한 저의 삶과 영을 채우러 오십시오.
저는 제 자신을 계속하여 질책함으로써 제 스스로를 변명하려는 유혹을 끊어 버리렵니다. 더불어 저는 다른 이들 앞에서 제 자신을 정당화하고,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려 온갖 이유들을 찾으려는 유혹을 끊어버리겠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 삶에서 저를 가장 많이 다치게 한 이를 위해 은총을 청합니다. 제가 가장 큰 적으로 여기는 어려운 이를 용서하며,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고 한 이를 용서할 힘을 갖게 하소서,
주님, 제가 받은 상처만을 잊으려 애쓰기보다 진실로 용서하게 하소서. 제가 더 잘 용서할 수 있도록 저를 준비시켜 주시고, 당신이 시작하신 것을 제 안에서 완성하소서. 또한 저를 악에서 구하시며, 고쳐주소서.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계실 분들과 함께 이 기도를 바치며 성령의 위로를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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