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4년 주보

연중 제 20주일 2014년 8월 17일(가해)

모든 2 2014. 8. 17. 23:00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하느님의 귀는 모든 것을 들으십니다.

그런데 그냥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정말 듣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들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2006.8.7강론 중)

 

+ 마태오 복음 15,21-28

 

<아,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하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말씀의 향기>

 

주님! 저는 강아지라도 좋습니다  "겸손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나기웅 엘리야 태안 보좌 

 

  찬미예수님! 이번 한 주간도 예수님과 함께 기쁘게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스무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느님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열려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우리가 가져야 할 참된 믿음의 자세에 대해 묵상하게 해 줍니다.

  먼저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는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의 주어짐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배를 다녀온 다음 하느님이 특정한 장소에만 배타적으로 매여 계시는 분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양살이하던 바빌론 땅에서도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셨고,이 예언을 통해 그들은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의 대상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분의 계약을 충실히 준수하려는 온 세상 모든 민족들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유대 민족은 자신들만 선택된 민족이라 생각하여 다른 민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만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하느님의 뜻과는 어긋난 행동입니다.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불순종의 역사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어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한 이방 여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믿음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만이 자신을 구원해 주실 주님이라는 믿음으로 예수님 앞에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거듭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러헤 대답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방 민족들에 대한 구원을 거부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요즘처럼)이방 민족을 사악한 무리라고 여겨 전혀 상종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말씀을 건네고 있으며,예수님의 사명은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었고, 이후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것은 당신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은 그녀의 대답입니다. 그녀는 자칫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말씀에도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며 지극히 겸손한 대답을 올립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아,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믿음의 자세로 주님께 청하고 있습니까?

 

 

<「복음의 기쁨」을 안고 세상으로(15)

 

공동선과 평화,사회적 종교적 대화

 

  교황님은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이 자신의 특권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들을 침묵하게 하거나 적당히 구슬리는 거짓 평화의 시도를에 맞서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고 단언하십니다. 그리고 책임 있는 시민의식을 강조하시며 평화와 정의와 형제애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십니다.

 

 첫째,"시간이 공간보다 앞선다."시간은 미래의 충만에 희망을 갖고 함께 전진하는 것이고, 공간은 눈앞의 권력과 자기 과시의 수단들을 장악하여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하라는 무모한 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눈앞의 결과에 매이지 말고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갈등은 우리 가운데 늘 존재합니다. 갈등을 분열의 이유가 아니라 일치를 이루어야 할 다양성으로 이해하고,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해결하고,새로운 전진의 연결고리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셋째,"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실천으로 옮겨지지 않는 생각이나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약속은 강생으로 실재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선언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미사여구로 전락시키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넷째,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크다,"세계화와 지역화 사이에도 현실적으로 긴장이 존재합니다. 개인이나 지역문화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보존한 채 공동체 혹은 세계에 진심으로 통합될 때,언제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이들과 비난받을 만한 이들조차 수용하는 보편질서와 공동선을 추구하는 힘이 살아있어야 참된 통합이 가능해집니다.

 

 이어서 교황께서는 "복음화에는 대화의 길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평화의 복음'(에페6,15)을 선포하고 이를 위해 모든 국가권위와 국제권위와 협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성과 과학의 빛 역시 신앙의 빛처럼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고, 과학의 진보에 주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인간의 중심성과 최고 가치를 언제나 존중하게 하고자 합니다. 교회 일치 운동은 "모두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하신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며,복음화가 받드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로마11,29)이기에 우리는 유다민족을 특별한 관심으로 바라봅니다.우리가 그들과 히브리 성경 본문을 함께 읽고 하느님 말씀의 풍요로움을 이해하는 상호 보완성도 존재합니다. 나아가 모든 비그리스도교 신자들과 나누는 이른바 종교간 대화는 세계평화를 위해 필수조건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이 대화의 성공은 진리와 사랑의 열린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총대리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님-

 

 

<미사 속 숨은 보화>

 

봉헌기도 Oblatio 2

  제1양식의 봉헌기도를 보면,교회가 바치는 성체와 성현이라는 제물이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거룩하며 흠 없는 제물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제물을 봉헌하기에 자신의 부당함을 아는 교회는 구약으 대표적인 제상인 아벨과 아브라함과 멜키세덱이 바친 제사를 상가하며 기꺼이 받아주시길 청합니다.

  아벨은 맏배를 바친 의로운 분이었고,아브라함은 외아들을 바친 분이며,멜기세덱은 대제관으로 빵과 포도주를 바친 제사장이었습니다. 봉헌기도는 구약에서 의롭게 여기는 제물보다도 더 거룩하고 깨끗한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받아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부당함을 절감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26)>

 

아름다운 부탁

사랑은 돌려주는 것보다 전해주는 것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중학교로 출퇴근하고 있는 신입교사가 송 선생님,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학년부방 김 선생님이 송 선생님을 부른다. 퇴근 방향이 다른 데도 함께 가자며 굳이 자기 차에 송 선생님을 태우는 김 선생님.

 

  이런 일이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었다. 퇴근 시간 마주칠 때마다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시는 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많았던 터라,이번만큼은 기필코 그 동안 받은 은혜에 꼭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밝은 표정으로 운전하고 계신 김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송선생님 : 혹시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김선생님 : 그건 갑자기 왜?

송선생님 : 매번 데려다 주시니 감사해서..

김선생님 : 무슨 소리?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송선생님 : 그래도 저도 뭔가 해드리고 싶어서요.

김선생님 : 정말? 그럼 부탁하나 해도 돼?

 

  이제야 드디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송 선생님은 김 선생님의 제안에 귀를 기울였다. 쑥스러운 듯 김 선생님은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수줍게 이런 부탁을 했다.

 

김선생님 : 나중에 송 선생님도 자동차로 퇴근하게 되면 누군가 꼭 태워줘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그 고마움을 갚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송선생님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내가 받아서 행복했다면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하라는 그 부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탁을 받은 그날 밤,도시의 야경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유난히 따뜻해 보이는 이유는 송 선생님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를 사랑했으니 나도 사랑해 달라는 것이 우리 방식이라면,너를 사랑했으니 너도 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그것이 하느님의 사랑 방정식이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를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타 종교와 일반 사람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방한은 교회의 큰 어른이 우리를 찾아오는 큰 행사이기에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성모승천대축일 미사,124위 시복식 집전,꽃동네 방문,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과 청년대회 폐막미사,평화 기원미사 등 교황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 일정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소중한 보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교황님과 함께하며 우리는 단지 많은 사람이 모여 교황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는 특별한 기억을 넘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남겨주신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중에 젊은이들에 대해,그리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

 

  이 시대 젊은이들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늘 경쟁하도독 부추김 받고 성공해야 한다는 망상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또한 그 안에서 젊은이들이 신앙을 갖고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방법으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표징이 바로 교황님의 방문과 대화였다고 여겨집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소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서로 단절되고 벽을 쌓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젊은이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그들에게 신앙을 전해주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일은 바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삶을 공감하며 이해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꿈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일,그래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힘을 내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그 안에서 하느님의 힘을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이 될 것입니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우리는 주변에서 사회복지기관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복지제도를 통해 어려운 이들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커다란 사회복지시설은 어려운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건강한 이들은 그들이 복지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한편으로는 사회 밖으로 격린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봉사활동을 하던 한 학생에게 느낀 점을 물어보니,"전 나중에 이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사회복지시설을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지며,복음에서 나병환자가 마을 밖으로 쫓겨나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치유해주시며 다시 마을로 돌려보내신 예수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나뉘고 분열된 모습이 아니라 함께 아우러져 사는 것을 바라실 것입니다. 우리가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첫째일 것입니다. 돌처럼 굳어가는 우리의 마음이 살처럼 부드러워지길 기도합시다.

 

  그 밖에도 교황님의 방한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리고 더 특별하고 소중한 메시지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남은 그 모습을 닮아 우리도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지 위한 노력들을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마음모아 기도합니다."

2014. 8.14 - 8.18

 

 

  성모승천대축일 교황님 미사 강론 전문

 

  그리스도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온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는 성모님께서 육신과 영혼을 지니신 채 천국의 영광 안으로 올라가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들의 숙명을 보여 줍니다.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처럼, 우리도 또한 죄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승리에 온전히 동참하도록, 그리고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주님과 함께 다스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1독서에서 선포된, '태양을 입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묵시 12.1)이라는 '큰 표징'은 하느님이신 아드님 곁에 영광스럽게 앉으신 마리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시는 미래를 알아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시는 미래를 알아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한국인들은 그 역사적인 경험에 비춰 이 국가의 역사와 민족의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모님의 사랑과 전구를 인식하면서, 전통적으로 이 축일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는, 새로운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어 죄와 종살이의 왕국을 무너뜨리시고. 자유와 생명의 나라를 여셨다는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1코린 15,24-25 참조)을 들었습니다. 참된 자유는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자유입니다. 하느님과 형제 자매들을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유이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기를 기다리는 기쁨이 가득한 희망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입니다. 오늘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 우리는 또한 한국 교회의 어머니이신 그분께 간청합니다.

 

  세례 때에 우리가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또한 이 나라의 교회가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충만히 부풀어 오르게 도와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빕니다.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뵙니다.

 

  고귀한 전통을 물려받은 한국 천주교인으로서 여러분은 그 유산의 가치를 드높이고 이를 미래 세대에 물려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새롭게 회개하여야 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일치하여 우리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운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루카 1.54-55참고)

성모 마라아께서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기에 복되십니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진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영광 속에 앉으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희망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희망은 '우리 생명을 위한  안전하고 견고한 닻과 같아'(히브 6,19 참조)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앉으신 곳에 닿게 합니다. 이 희망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이 제시하는 이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그런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는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입니다. 이러한 절망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가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를 누리며 기뻐할 수 있도록, 그 자유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형제 자매를 섬길 수 있도록, 그리고 다스림이 곧 섬김인 영원한 나라에서 완성될 바로 그 희망의 표징으로서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모님의 은총을 간청합시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