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 성당(천안 동부지구)
본당 설립: 1960.3.11/주보성인:예수 성심
+ 요한복음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성령이 아니 계시면.. - 남종근 F. 드실 성령쇄신 봉사회 차장
"성령이 아니 계시면 하느님은 멀리만 계십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면 그리스도는 과거에만 머무십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합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면 교회란 한날 조직에 불과합니다."
(이냐시오 드 라타뀨이에 대주교)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 후, 오순절에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가운데 각 사람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도고 용기를 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제자들이 이제는 박해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내렸던 성령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도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안에서 이루어졌듯이, 우리 안에서도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고 완덕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성령께서 도움심으로 우리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계시기에 하느님께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고, 성령께서 계시기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머무르십니다. 성령께서 계시기에 복음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고, 성령께서 계시기에 교회는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느님 안에 영원토록 머물 것이며, 그분을 올바로 바라보고, 그분, 말씀을 영적으로 새겨들으며, 그분의 감미로운 향기에 취하고, 그분을 부드럽게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복음 환호성)
via의 시선(지구를 걷다)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지구는 둥급니다. 그리고 지구는 돕니다. 지구는 둥글게 돕니다. 둥그렇고 둥글게 도는 곳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 때론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하늘을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면, 땅 속 깊은 무덤 문을 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힘든 오늘이 싫어서 철퍼덕 주저 앉았는데 그곳이 하늘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타인이 규정한 하늘과 땅을 살다 보니, 내가 만나는 하늘과 땅이 보이지 않습니다. 힘 있다고 하는 자들이 규정한 하늘의 삶을 찾다보니,진짜 나의 하늘을 향해 가는 줄 알고 달리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색의 하늘, 그런데 그곳이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진 짙은 청색의 바다였습니다.
저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습니다. 웃음은 좋고 필요한 것이지만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법에 쉽게 동의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웃음이 나오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개그를 한다고 알려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표정과 말은 개그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 웃깁니다. 진지함으로 무장한 채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습니다. 왠 자학개그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우습다가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사용할 수 있는 단어, 특히 공동선을 함의하는 단어를 유희의 단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궁금해집니다. 저들에게 사회적 유전의 바탕이 되는 생물학적 유전의 상태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찾아봅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이해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나라는 더 이상 자신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지배하는 나라가 그들의 나라이었고, 그들의 나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지배하는 나라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고발하고 구속했습니다. 지배하는 나라가 싸움에 이기도록 협력하면서 부와 권력을 얻었습니다. 그 부와 권력은 지금 여기에서 유희의 춤을 추는 자들에게 유산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부와 권력을 지키는 수단에 익숙한 자들의 소리, 이제는 듣기 싫습니다.
그들이 가리킨 손가락, 그곳에 하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그들은 그곳이 하늘이라고 우기니, 참 재미있는 개그입니다.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하늘을 만나며, 임마누엘 하느님과 함께 길을 걷습니다. 오늘 행복하소서.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63)>
고수의 가방은 가볍다
등산을 처음 하는 사람이 등산 베테랑인 사람과 함께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산 입구에 도착한 등산 초보자, 조금 후에 도착한 등산 베테랑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짐이라곤 달랑 등에 메는 작은 가방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놀라기는 베테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등산 초보자의 등에는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큰 가방이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이 여행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는 사람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베테랑 여행자가 조금 후에 도착한 초보 여행자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언뜻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큰 가방을 끌고 한 손에는 불룩한 가방까지 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 초보자도 베테랑 여행자를 보고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여행 가방에 비하면 작고 가벼워 보이는 여행 가방 하나만 끌고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가방은 무겁기 마련입니다. 경험이 없어 두려움과 걱정거리가 많기에 사소한 것 하나라도 챙겨야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집니다.
반면에 어떤 일을 여러 번 해 본 사람의 가방은 가볍기 마련입니다. 경험을 통해서 정작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살면 살수록 우리 손에 든 가방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순리입니다. 지혜로워진다는 건 어쩌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것만을 남길 줄 하는 용기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5월보다 더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살아야겠습니다. 그게 바로 인생이란 여행에서 행복한 고수가 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땅에서
오르는 아지랑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찬 이슬이
땅을 키우고
새벽부터 저녁녘
눈감고 귀 열어
온몸으로 드리는
우리의 기도
오소서 성령님!
하나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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