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7년 주보

부활 제 5주일 2017년 5월 14일 (가해)

모든 2 2017. 5. 14. 22:30

 

온양 용화동 성당(아산지구)

본당 설립:1985.8.19. 주보성인:세례자 요한

 

+ 요한 복음 14,1-1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 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길. 진리. 생명 - 손범규 임마누엘 변동 주임

 

 

  죽음에 임박한 예수님의 고별사 중 일부분인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당신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길은 바로 하느님과 사람을 위한 '십자가의 길'로서 '높은 곳은 깎고, 낮은 곳은 메우고, 굽은 곳은 바로 잡는 길, 즉, 죽음을 통한 부활의 길인 것입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폐휴지를 모아 근근이 살아가는 할머니가 어느 날 리어카를 끌고 골목길을 가다가 옆에 세워 둔 수입 승용차 옆구리를 긁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할머니에게 젊은 부부는 "죄송합니다. 할머니께서 지나가시지 못하게 저희가 주차를 잘못했습니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한다.

 

  명성 있는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김 씨는 백화점 주차 관리인으로 재취업하여 근무하던 중, 백화점에서 들어오는 차선이 막히자 한 고급 승용차가 역주행으로 진입을 시도한다. 제재를 하였더니,육두문자가를 쓰며 목을 조이고 친다. 김씨는 솟구치는 감정을 누구러뜨리고 어금니를 꽉 깨문다. 차주는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잠시 후 총지배인이 내려와 하는 말, "김 씨, 저 사람은 우리 백화점의 VVIP야! 자꾸 이런 소란을 피우면 해고야."

 

  무엇이 진리이며 생명의 길인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안하무인격의 삶의 길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해 지신을 내려놓고 나눌 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이며, 생명의 길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새 아침에 나의 편향적인 삶으로 애달파하고 고통 중에 있는 영혼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via의 시선(빛 속에서)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입에 달고 사는 단어가 있습니다. 매일 이 단어를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끔은 나 자신에게도 말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랑"을 말할 때 이 단어가 주는 풍요로움과 기쁨 대신에 정신의 푸석거림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건조함의 상태에서도 말할 수 있는

"사랑", 맺고 있는 관계도 건조해집니다.

 

사랑하면 예쁘진다고 합니다. 얼굴에 빛이 난다고도 합니다. 사랑하면 내면의 빛이 밖으로 분출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존재가 사랑을 시작하면 내재하시는 하느님이 빛이 존재를 밝혀 줍니다. 나를 둘러싼 기반생태가 빛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빛으로 가득찬 세상,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이라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사랑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쁘지 않습니다. 즐겁지도 않습니다. 어제의 사건으로 걱정하고 내일의 불안에 주먹을 꽉 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말합니다. 더군다나 사랑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기르칩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하는 오늘은 매일의 반복, 어제와 같은 오늘입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받으면 예뻐집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몸은 변화를 시작합니다. 정신을 여는 마중물(사랑)이 존재 안으로 들어오면, 몸은 빛을 내기 시작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영이 존재를 이끌어가십니다. 그래서 사랑받은 존재는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됩니다.

 

사랑은 존재에 관한 언어이지 역할에 대한 언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사랑은 곧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 권력, 학력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기준이 됩니다. 존재가 배제된 역할, 역할 수행이 존재를 결정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은 역할 수행을 인증하는 인감도장이 될 뿐입니다. 사랑의 언어를 회복시켜야 하는 시기입니다. 존재를 향한 마중물로서의 사랑의 언어를 되찾아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원 안에서 하느님이 스며있는 존재로 현존합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평등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이 스며있는 존재, 그(그녀)는 바로 당신입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60)>

 

공자 천주(孔子穿珠)

 

 

공자가 진나라를 지나갈 때의 일입니다. 누군가 공자에게 구슬 한 개를 선물했는데, 그 구슬에는 범상치 않은 구멍이 하나 나 있었습니다.

 

그 구멍은 신기하게도 안에서 아홉 구비나 휘어져 있어,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을 바라보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구슬을 실로 꿰어 보려던 공자에게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도저히 실을 꿸 수 없게 되자, 공자는 문득 바느질하는 여자를 떠올립니다.

 

"그래,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 구슬에 실을 꿰는 것 또한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가까운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에게 공자는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꿀'을 생각해 보라고 답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던 공자는 얼마 후 드디어 비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멍 한쪽 끝에 꿀을 발라 놓고, 나무 아래를 기어 다니는 개미를 잡아서 허리에 실을 묶어 반대편 구멍에 밀어 넣었습니다. 개미가 이쪽 구멍에서 꿀 냄새를 따라 저쪽 구멍으로 기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구슬에 실을 꿸 수가 있게 된 겁니다.

 

"공자가 구슬을 꿴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 '공자천주'에 얽힌 일화입니다. 이 이야기가 뜻하는 것은 아무리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기보다 학식이 못한 사람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던 아이도, 택시 안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기사분도, 바쁜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도, 오랜만에 만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반겨주는 동창도 한순간 모두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었습니다.

 

내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학교의 교단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교단에서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알려준 고마운 선생님들까지 함께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사랑은,

믿음은

향기이다.

 

깊을수록

은은한 그 향기는

삶의 기온을 품은

우리의 꿈이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