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연중 제28주일 2016년 10월 9일(다해)

모든 2 2016. 10. 9. 22:30

서산 동문동 성당(서산지구)

본당 설립:1908.5.9 /주보성인:수호천사

 

+ 루카 복음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중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의 향기>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에 속한 나 자신 - 김용덕 야고보 진산성지 전담

 

오늘 복음의 초점은 열 명의 나병환자가 치유받는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양하러 돌아온 한 명의 사마리아 사람이 가진 천진난만하면서도 감동을 자아내는 믿음에 있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루카 17,17-19)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대하면서 분명히 열 사람 다 처음에는 믿음을 가졌었는데, 막판에 와서는 왜 한 명만 믿음이 남았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은 과연 무엇을 바라고 계신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시도해야 할 것은 아홉 명의 믿음과 한 명의 사마리아 사람이 가진 믿음의 구별이다. 이는 곧 감사의 구별이기도 한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결국 예수님께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병도, 불치병도 아니요.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도, 천재지변도 아니다. 문제는 늘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바로 나 자신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들의 '믿음'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들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철저한 허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청을 들어주는 그런 존재인가? 그런 하느님이라면, 나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 신은 무가치한가?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하느님의 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해왔던 그 많은 일들이, 어쩌면 나의 욕심, 혹은 나의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말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들의 신앙은 '나의 청을 들어주는 절대자'라는 허상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개그맨 이동우 씨의 실화> 개그맨 이동우 씨는 결혼하고 100일쯤 지난 뒤 '망각 색조 변성증'이라는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는데, 그 사연을 들은 천안에 사는 40대 남성이 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쁜 마음으로 한걸음에 천안으로 달려갔지만 동우씨는 눈을 기증받지 않고 돌아왔다. "왜 그냥 돌아오셨나요?" "이미 받은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눈을 기증하겠다는 천안의 40대 남자는 '근육병'환자였다. 사지를 못 쓰는, 성한 곳이라곤 오직 눈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동우 씨가 말했다.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조 때 유한준이라는 문인이 석농 김광국 수장품에 붙였다고 하는 글을 옮기며 마무리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via의 시선(자연재해???) -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이른 아침 4시 즈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누굴까?' 유리창으로 검은 물체가 보입니다. 긴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습니다. 흐느끼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저게 뭐지?'

 

   창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탄성. 경외심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잘났다고 주장하는 인간 존재가 지닌 나약함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람이 외치는 소리에 반응하는 피조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피조물이 드러내는 몸의 응답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바람이 품고 있는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품어 주시는 하느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흔히 자연재해라고 말합니다. 천재지변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 창조의 모습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그리고 보시니 좋았다."하느님께서는 먼저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나누신 하늘과 땅은, 하느님 창조의 업적이 지속되며 번성하게 하기 위한 보호막입니다.

 

   하늘과 땅은 존재들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존재들의 지속과 풍요를 위해서 반응합니다. 외부로부터 적대적인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면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듯이, 하늘과 땅은 하느님 창조의 업적이 위협받으면 창조의 업적을 지속시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지구는 자원의 총합이 아닙니다. 지구라는 행성은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그래서 유기체의 어느 한 부분이 손상되면 회복을 위한 반응을 시작합니다.

 

   자연재해라는 단어는 인간의 삶의 상태를 숨기기 위한 거짓 언어입니다. 그리고 자연재해라는 단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용되어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선택한 삶의 상태를 숨기고 싶어 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풍요와 편리의 욕구에 충실하게 응답한 우리가 만든 결과입니다. 재해를 입은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가 자연자원이라고 부르는 대상-강과 바다. 산과 들에 자신의 거처를 정하고 있는 피조물들-입니다.

 

   낮게 지어진 집은 바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일정한 경계선을 지키면서 지어진 집은 바다의 분노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재해는 없습니다. 다만 재해라고 불려지는 것을 유도하는 인간의 욕심이 있을 뿐...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30)>

 

낫 놓고 기역자만 알기보다

 

 

오래전 야학 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신 할머님께서 저를 보자마자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던 일이 기억이 납니다.

 

"요즘 진짜 살맛나!"

"무슨 좋은 일 있으셨어요?"

"그런 게 아니라.."

"아, 지난번 단풍구경 가신 거요?"

"단풍 구경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지!"

 

도대체 단풍을 이긴 기쁨의 원천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저에게 할머님은 예상 밖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혹시 약국에 가는 기쁨을 알란가 몰라?"

"약국이요?"

"몸이 아파야만 가게 되는 곳인데 기쁨이라뇨??"

"내가 예전에 약국 갈 때는 말이야..

 

솔직히 한글을 몰라서 약국을 나타내는 그림 표시판을 보고 갔었어. 그런데 그동안 열심히 배웠더니 이젠 완전히 달라."

"뭐가 다른데요?"

"이젠 그림이 아니라 '약국'이라는 글씨를 보고 갈 수 있거든."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계신 할머님의 얼굴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순수한 기쁨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때보다 분명하게 느꼈던 적은 없었을 겁니다.

 

할머님의 그 환한 미소는 제가 혹시 그동안 까막눈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합니다. 매일 기도서를 읽으면서 말씀의 뜻보다, 눈으로 그냥 글씨로 된 그림만 읽고 있는 건 아닌지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한 번을 읽어도 할머님께서 느끼신 그 '발견'의 기쁨으로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고 싶습니다. 오늘이 마침 한글날입니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께서는 단순히 문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보는 창문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그 문을 열고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닐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그 때문에 난

상처도

그랬으면 좋겠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천주교 대전교구 시노드 사무국

http://synod.djcatholic.or.kr 

 

 

 

교구 시노드 (synod)란? "함께 길을 걷는다"(Syn+hodos)는 뜻을 지니며, 교구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개최하는 '대의원 회의'를 말합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며, 이에 따른 교구의 사목 계획이 수립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성직자, 수도자, 전례, 본당 사목, 특화 사목, 교회 운영 분과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성직자 분과

신학교 입학자 감소의 요인을 검토했습니다. 다양한 요인을 찾아보았는데, 학생 인구 감소에 따른 현상, 종교성 감소, 가정 신앙의 약화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물론 교구의 정책적 노력의 부족한 측면도 돌아보았습니다. 교구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본당 신부들의 관심도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선배 신학생이 있는 본당에서 후배 신학생이 나온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화사목 분과

특화사목 분과의 6대 소위원회(성지, 청소년, 가정, 노인, 교정, 병원 사목)중 가정사목소위원회에서는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가정폭력, 성폭력 상담소 등의 고충민원 상담 분야 전문가들과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교회에서 이런 일까지 간섭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합니다. 일부 사목자와 수도자들이 내담자에게 '더 똑바로 살아라', '기도해라' 등의 비전문적 상담을 하면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목자나 수도자들이 고충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의 영역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전례 분과

교구 시노드의 일환으로 준비되는 설문지에 포함될 분과의 질문항목을 확정하였습니다. 전례분과의 주제는 3가지 간추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례집전자에 관하여, 두 번째는 전례교육의 중요성에 관하여, 그리고 세 번째는 전례와 신앙인의 삶에 관하여 묻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전례를 통하여 파견되는 신자들의 삶에 관한 주제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본당사목 분과

교회가 본당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장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하나의 토론주제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위원들의 본당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자료를 검토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토의하였습니다. 기존의 교구 소공동체 교육이 소공동체와 구역반 모임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된 형태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과, 대부분의 본당이 소공동체 모임과 구역반 모임을 혼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 등장했습니다.

 

수도자 분과

교황님은 수도자가 매력적일 때 성소자가 있게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수도자가 어떤 모습일 때 매력적인가? 를 물어봐야 할지 검토 중입니다. 또한 교황님 말씀처럼 수도자들이 변방으로 가야한다고 보았을 때, 대전교구의 어디가 변방이고 또 누가 변방에 있는 사람들인지를 생각 보았습니다.

 

교회운영 분과

교회운영분과의   의제가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지난 6월에 열렸던 교구 사제연수 당시 사제들이 제안했던 주제들과 분과회의 때 제안한 주제들을 통합한 것이며, 이를 총 6가지로 확정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재정 및 인사관리 (2) 교구 직제와 조직운영 (3) 주교님과 사제의 관계 및 소통 (4) 주임과 협력자들 (5) 사목교서와 사목현장 (6) 신학교 운영

앞으로 분과는 6가지 주제별로 스키마를 작성하기 위해 주제별 담당위원을 선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기로 하였습니다.

........................................................................................................................................ 사무국 행정지원단 홍보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한 개괄적 이해

교회를 새롭게 바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무엇을 주제로 다루었나?

 

 

III.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진행과정 - 제3회기

  1964년 9월 14일, 바오로 6세 교황은 개회연설에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분명하게 밝히고, 교계제도와 주교직의 기원, 본성, 사명, 권한을 고찰하는 것이 공의회의 중요한 업무'라고 규정하였다.

 

  공의회 제3회기에서 다루게 될 안건은 중요한 문제들만 다루기로 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였는데, 이는 교황이 제2회기 폐막 연설에서 공의회가 다음 회기(제3회기)로 끝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의회는 제3회기 안에서'교회', '주교의 사목 직무', '종교의 자유', '유대교와 비그리스도교', '하느님의 계시', '평신도 사도직', '가톨릭 동방 전례의 교회', '현대 사회 안에서의 교회', '사제', '그리스도교 일치' 대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회기가 진행되면서 안건을 다루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었다. 마침내 공의회는 제4회기를 가지기로 결정하였고, 교황은 공의회를 통해 거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세 개의 교령 <일치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교회 헌장>(Lumen Gentium), <동방 교회에 관한 교령> (Orientalium Ecclesiarum)을 반포하였다.

 

  교황은 제3회기 폐회 연설에서 "<교회 헌장>(Lumen Gentium)에서 밝혀진 교회의 신비에 대한 가르침으로 교회의 참된 모습이 신자들이 뚜렷하게 이해되기를  기대"하면서 "마리아를 신자들과 사목자들의 어머니로 선언"하였다.

.................................................................................................................................... 사무국 행정지원단 교육팀

 

인터뷰에 참여한 사제들은 이번 시노드 안에서 현안으로 논의하길 바라는 주제로 '가정'과 '사제'를 가장 많이 언급하였습니다.

 

 

 

 

교구 시노드에 대한 사제단 인터뷰 요약 ③

 

 

 

 

  가정에 관해서는 "가정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 요소이며 청소년, 성소, 노인 문제 등의 시작점이자 해결책인데, 현대 사회 안에서 그 위상과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교회 역시 구체적인 도움이나 방안 제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사제에 관해서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제들의 신원과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재정립이 필요하며, 성소 계발에 대한 문제의식과 신학교 운영의 변화, 사제들의 쇄신과 변화를 위한 지성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교육 기회의 제공, 은퇴 후 삶에 대한 전반적인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현대 사회 안에서 사회 복음화와 신자 재교육을 위한 장기적인 연구와 투자", "교구 사목의 진단, 연구, 비전 제시를 위한 통합사목연구소의 설립"을 제안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또한 "순교 신심과 실천 방안에 대한 연구" "초고령화 시대에서 노인 사목에 대한 연구와 투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 및 "시노드의 좋은 정신과 성과 유지를 위한 시행 법규와 구체적인 지침서 마련", "교구 내 수도자들을 위한 위상과 역할의 재정립"과 "수도자들의 교육과 양성을 위하여 교구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미래를 감안하여 본당 설립과 건축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 사무국 행정지원단 조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