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연중 제 23주일 2016년 9월 4일(다해)

모든 2 2016. 9. 4. 22:30

온양 신정동 성당(아산지구)

본당 설립 : 2004. 1. 8/주보성인 : 조화서 베드로, 조윤호 요셉

 

+ 루카 복음 14,25-33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 이르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 할 것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말씀의 향기>

 

교적 포기 신청서 - 방경석 알로이시오 전민동 주임

 

  어느 교우가 작년부터 냉담하던 중에 이단종교로부터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천주 교리 중에서 삼위일체, 사랑 많은 하느님이 인간의 잘잘못을 따져서 영원한 지옥불로 고통을 준다는 가르침, 사람이 죽으면 천당과 지옥, 연옥을 간다는 영혼불멸 사상들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잘못된 가르침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고, 지난 50년 이상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모태신앙인으로 살아왔으나 이제는 교적을 포기하고 떠나겠다는 글을 보내왔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가르치밍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50항부터 141항까지 성경과 성전과 유권적 해석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 읽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50년 동안이나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쉽게 신앙을 바꿀 수 있는 뿌리 없는 신앙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185항부터 삼위일체 교리와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계시와 가르침들이 1065항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교회가 지난 2천 년 동안 간직해 온 소중한 신앙의 고백이다.

 

  사도신경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라고 신경을 마무리하고 있지 어디에도 영혼불멸 사상이 없다. 가톨릭을 비판하고, 자신이 세력을 넓히려는 집단의 논리에 넘어가서 수중한 가톨릭 신앙의 유산을 저버린 것이다.

 

  '새롭고 결정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계시가 완결되었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 완전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내용  전체를 점진적으로 파악해 가야 할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6항)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이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85항)

 

  밖으로는 가톨릭을 거부하는 교회와 세력들이 성경공부나 봉사활동 등의 방법으로 신자들에게 접근하고 있고, 교회 내적으로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생각과 가르침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매체들에서도 신앙의 가치를 상대화시키고 우리의 신앙을 어지럽히는 내용들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조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결단이 필요한 내용들이다.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확실한 앎이 필요하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열심히 자신의 신앙을 공부해야 한다. 책을 읽고, 기회가 되는 대로 배우자, 신앙인은 또한 세상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했던 것이다. 세상 논리가 편하고 그것이 옳고 교회의 가르침과 입장이 불편하다면 혹시 나는 그리스도의 반대쪽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Via의 시선(산다는 것) / 임상교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가난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빈궁하게 되는 것은 싫다. 풍요롭게 살고 싶다. 그러나 사치를 부리면 살고 싶지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은 단순하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이 전부다. 따라서 먹을 것과 잘 곳 그리고 입을 것이 있으면 살기에는 충분하다. 농업, 상업, 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라는 소로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체에서 느끼는 냉기보다 사회적 냉기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나는 나로써 살고 싶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로서 살지 못하고 타인이 원하는 내가 되어 간다. 타인은 누구인가? 타인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아닌 나로서 사는 것은 고통이다.

 

  흔히 '사랑'을 말한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존재하는 세상에서,성경은 하느님의 자발적 발출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을 가르친다. 사랑은 발출이다. 나로부터 나도 모르게 분출되는 힘이다.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을 이루고 수많은 생명들을 살리는 힘이 되는 것처럼, 사랑은 끊임없는 흐름의 이어짐으로 생명을 살린다.

 

  흐른다는 것은 소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어주고 분여하며 비우는 것이다. 그런데 고갈되지 않는다. 비움을 통한 채움이 사랑의 본질이다.

 

비우지 못하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믿지 못하는 나", 믿지 못하는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다. 나를 믿지 못하는 나는 타인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쌓아놓고 지낸다. 더 높은 벽을 쌓아서 성을 만들고, 지혜라는 이름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창고와 냉장고에 적채하고,싼값에 구매했다고 자랑한다. 어리석음의 우화이다.

 

  단절시키지 않아야 한다. 소통과 감정이입으로 공동체는 공동체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 너와 나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이어짐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그래서 조금 불편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시노드 사무국

 

"다른 모든 교회 행사나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의원회의(시노드)성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기도"

-교구 시노드에 관한 훈령 중에서 - 교황청 주교성과 인류 복음화성, 1997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은 2015년 12월 8일, 교구 역사상 처음으로 시노드 개최를 공식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은혜로운 날에 저는 기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들에게 "대전교구 시노드 개최"를 선포하는 역사적인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런 시노드의 궁극적 목표는 친교의 영성을 향한 한 됨의 길입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함께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고 배려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갈 것입니다. 이런 함께 가는 삶의 여정을 통해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늘 함께하시면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교구 시노드 개최 선포에 관한 교구장 주교의 담화문 중에서)

 

  이처럼 함께 가는 여정인 시노드가 개최되면서 교구의 하느님 백성들이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미사 전례 안에서 '교구 시노드 기도문'을 매일 바치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변화의 쇄신을 향한 우리의 여정을 이끌어가시는 분 역시 주님이심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이끄심에 따르고자 하는 뜻이 우리가 바치는 '교구 시노드 기도문'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기도하며 시작한 시노드의 기초단계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준비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는 교구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바쳤던 기도의 열매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보다 많은 봉사자들이 우리 교구 하느님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기 위해서 일하게 될 것이며, 이는 참된 변화와 쇄신을 위한 매우 중요한 준비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그리고 다양한 삶의 자리 안에서 시노드의 여정에 이미 함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정 안에서 모두에게 공통된 중요한 사명은 기도하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교구 시노드에 관한 교황청 훈령은 교구 시노드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교회 행사나 활동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의원회의(시노드) 성공의 비결은 다름 아닌 기도이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 운동은 매 미사 전례 때마다 '교구 시노드 기도문'을 바치는 것입니다. 향후 이를 더욱 확대하여 사제, 수도자, 평신도 각각의 기도 운동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에 먼저 2016년 9월 4일인 오늘부터 '수도자들의 고리 기도'가 시작될 것입니다. 교구 내 모든 수도자들은 시노드 여정 중에 있는 우리 교구 모든 하느님 백성들을 위한 지향으로 매일 기도할 것입니다. 사제들과 평신도들의 기도 운동은 현재 준비 중이며 시행을 위한 안내가 추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기도 안에서 하나 됨의 길을 실현해 나아가는 대전교구 시노드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125)>

  

편한데 어딘가 허전한 데?

 

 

  주차의 달인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동차 주차는 제법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다소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에 설치해 놓았던 후방 카메라가 고장 난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잘되던 후방 카메라가 작동이 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옛날에 하던 식으로 고개를 뒤로 잔뜩 젖히고 주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수없이 많이 해 봤던 일이라 저는 주차가 쉽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주차 굴욕'을 겪고 말았습니다. 마치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딴 후 처음 주차하는 사람처럼 몇 번을 왔다 갔다 헤맨 끝에 간신히 주차에 성공했으니까요. 행여 누가 본 건 아닐까 하는 머쓱함에 뒤통수까지 따가웠습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 감각이 떨어진 탓이라고 자책을 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혹시 후방카메라 때문은 아닐까하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후방카메라에 모든 걸 맡긴 탓에 제 운동감각이 무뎌진 거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주차의 번거로움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는 도구가 등장하니 편리함을 얻게 되고, 한 번 편리해지니 그 도구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 결과 나름 섬세했던 주차의 '감'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 과정..


  자꾸만 편해져서 좋은데 어딘가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들고, 쓸데없는 수고를 덜어서 좋은데 어딘가 쓸모 있던 능력들은 하나둘 줄어드는 것 같은 허전함이 커져 갑니다. 어쩌면 이 관정은 오늘은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지니 삶을 성찰하는 감각도 무뎌지고, 삶을 성찰하는 감각이 무뎌지니 점점 주님을 향한 기도의 '감'도 무뎌지고, 기도의 '감'이 단순해지니 기도가 그냥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고마운 도구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 수는 있어도, 편리한 도구들 없이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되지 않도록 묵상 안에서 주님을 향한 '감각'을 조금 더 섬세하게 다듬을 때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9월의 볕

한줌 가져다

내 작은 뜰에 흩뿌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로 키워볼까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마당>

 

주님! 이토록 부족한 저를...

 

  서울시 초등학교에서 34년 교직에서 정년 퇴임하였습니다. 교직 생활 가운데 49살의 만학으로 영어교수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남들은 34년이 긴 세월이었다 하지만, 결코 길게 생각한 적 없고 지금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꿈을 꿉니다.

 

  정년 퇴임하면 콩카 시니어 봉사단으로 해외 갈 것을 계획하고, 서류 전형 합격과 함께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고 하니, 손녀들 돌보아야 하는 책임, 건강이 악화된 남편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철 아쉬웠지만, 교사인 며느리를 따라 아무 연고도 없는 당진으로 왔습니다. 주위 분들은 낯선 당진으로 가서 어떻게 살거냐고 걱정을 해주었지만, 모태신앙인 저는 하느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아무 염려도 두려움도 없이 당진으로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손녀가 유치원에 가는 오전 3시간 동안 초등학교에서 동화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일할 수 있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방학이 되자,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저의 기도가 상달되어 시니어 클럽에서 운영하는 식당 종업원으로 알바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염려했지만, 주님 손 꽉 잡고 가장 겸손한 자로, 가장 낮은 자세로, 하느님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하겠노라 수없이 다짐하며 시작하였습니다.

 

 12일 동안, 9일은 홀에서 써빙을, 3일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였습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 홀 써빙하시는 분들의 손님에 대한 정성과 노고를 체험하면서 많은 경험과 깨달음이 컸습니다.

 

  구로 3동 성당에서 5년 동안 미사 해설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젊고 고운 목소리에 만은 교우들한테 칭찬과 얼굴을 보고 싶었다는 말을 들을 때 항상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기에 정말 난 겸손한 자로 착각해 왔었던 것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입으로는 가장 낮은 자리, 가장 겸손한 자가 되겠다고 말해 왔지만, 제 삶은 교만 덩어리였습니다. 남은 생애는 진정 주님 보시기에 겸손한 삶으로 살다가 주님 앞에 가겠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부족한 제 모습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런 저를 이제까지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원희 젬마/당진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