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성당(홍성지구)
본당설립: 1979.9.19 / 주보성인 :성모 성천
+ 루카복음.13,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문을 열어 주십시오.'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불의를 일삼는 자들아!'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치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모르는 사이보다 아는 사이가 되자 -이봉효 프란치스코 천안구룡동 주임
오늘날 자신의 죽음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늘 지니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되겠지요? 하고 구원될 사람들의 숫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그 당시 유다인 사회 안에서 주요한 관심사였다. 이질문에 예수님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심판의 기준과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인생의 문이 닫히고 혹여 그 문틈을 통해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실제 예수님과 함께 식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 앞에서 먹었을 뿐이고, 예수님이 그의 동네에서 가르쳤으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가르침을 듣고 자란다. 늘 예수님 곁에 계신 제자들만큼이나 가르침을 받으려 쫓아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신자들도 누구보다도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더욱이 여러 방송에서 명사 강연을 수시로 접하고 들으려고 찾아나닌다. 성직자,수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예수님꽈 스치는 인연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와 예수님은 모르지 않는 사이가 되지만 아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아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단을 통해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이 세상의 수많은 문을 마다하고 비좁은 성당문으로 들어왔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시는 수난과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구원의 길을 함께 들어설 각오를 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좁은 문과 길을 잘알고 있으며 어떻게 그 문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께선 제시해 주신 좁은 문을 통해서 우리 삶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고통과 시련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 시련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의 종말은,가장 사랑하는 내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 주며 이기적인 삶으로 많은 폐를 끼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한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의 시작이 아니라 종말를 봐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은 웰빙이라는 모습에 전력투구를 한다. 웰 다잉은 바로 오늘의 삶을 웰빙하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삶이야말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 주세요!!!하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시노드사무국
시노드 준비 단계 안에서의 활동들 1 (시노드 준비위원회)
# 대전교구 시노드는 전체 과정 중 본회의를 준비하는 '준비 단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ㅣ. 준비 단계에서 진행되는 사항들은 교구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노드 교육과 홍보,의안으로 상정되어 더 나은 교구 복음화를 준비할 현실 조사와 협조,본회의에 상정될 의안 마련과 회의에 참여할 대의원 구성 등입니다.
이를 위해 교구에서는 지난 2016년 7월 5일 '시노드 준비위원회'가 출범하였고, 교구 내 모든 본당에서는 '시노드 본당위원히'가 구성되었습니다. 이 두 위원회는 준비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하릉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는 먼저 준비위원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좁은 의미의 '시노드'는 원래 대의원회의의 '본회의를 말합니다. 교구장으로부터 임명된 대의원들이 몇 차례의 총회를 가지면서 상정된 의안을 심의하고 투표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여기에 상정된 '의안'이라는 부분에 있어 준비위원회의 역할이 필요하게 됩니다. 즉,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게 되는 과정 모두가 준비위원회의 역할인 것입니다.
교구의 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 주제가 될 '의안'을 만들어가지 위해서는 "무엇을 다루어야 하나?"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과저을 거치게 됩니다.
1, 현실진다,"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시노드를 준비하는 데 있어 최우선 과제는 '보고,듣는 일' 즉,현실진단입니다. 성령의 비추심을 청하며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하느님 백성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일입니다. 작게는 우리의 모습을,더 나아가서는 본당 공동체,교구와 교구가 복음화해 나아가야 할 모든 지역의 현실에 대하여 함께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는 일은 우리 교구 안에서 맺어주신 다양한 복음의 열매들을 만나는 일이며, 복음화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과 이 시대 안에서 교구 공동체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깨닫게 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시노드 의제 선정 : "무엇을 다룰 것인가?"
시노드 준빈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자료들 토대로 우리들 안에,우리 교구,우리 교회의 현실을 모두 함께 바라보면서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분석하는 단계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사안인지를 선정하여 교회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고 검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번 시노드에 있어 주요한 내용을 담게 되는 의안 선정 초안을 만들게 되고, 여기에서 앞으로 다루게 될 의안들을 통하여 우리 교구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잇는 기본 틀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고,듣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현실진단과 분석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시노드에서 다룰 의제를 선정하는 작업과 함께 의제의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얻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각 분과에 대한 소개 및 활동내용은 추후에 다룰 예정입니다. 다음 호에는 '시노드 준비 단계 안에서의 활동들 2(시노드 본당위원회)"가 이어지겠습니다.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23)>
대회냐 축제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우리 얼굴이 저마다 조금씩 다 다르듯 살아가는 모습 또한 저마다의 방식이 있기 마련인 거죠.
하지만, 아무리 다채로눈 모습으로 살아간다 해도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대략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대회'로서의 삶인가 아니면 '축제'로서의 삶인가?
삶을 대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순위에 신경을 씁니다. 자기 자신이 현재 몇 번째 순위에 있는지 따져 보며,높으면 높은 대로 초초해하고 낮으면 낮은 대로 우울해합니다.
삶을 축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 어울림에 관심을 쏟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마냥 기뻐합니다.
대회로서의 삶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적 쌓기에 바쁩니다. 승패의 기록을 만드느라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습니다. 그들 사이엔 승자와 패자만 남을 뿐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축제로서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추억 만들기에 분주합니다. 이기고 지는 기억 말고,함께 울고 웃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 사이엔 외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대회에 출전하면 결과에 집착하고,결과에 집착하면 과정이 무시되고,과정이 무시되면 규칙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규칙이 사라질 때 타인의 존재 또한 함부로 다뤄집니다.
축제에 참가하면 결과보다 과정이 중시되고,과정이 중시되면 모두가 약속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 안에서 타인의 존재는 나 자신만큼 소중해집니다.
무더운 여름날 올림픽 경기를 보느라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었습니다. 승패의 묘미도 좋았지만 제게 가장 큰 기쁨은 공정한 규칙 안에서 서로 만나는 순수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강한 나라 약한 나라,큰 나라 작은 나라,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게임의 법칙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올림픽은 분명 대회가 아니라 축제입니다.
축제를 대회인 줄 알고 나간 사람처럼 안타까운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 안타까운 사람들을 위해 주님은 이 순간도 금,은,동메달이 아닌 행복의 메달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내 영혼의 그 어디
작은 공간에
흐린 안개 걷어내고
어느 해 가을
환하게 필
그런 꽃을
심어야지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능소화 연가 -이해인 클라우디아-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어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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