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동 성당(대전남부지구)
본당 설립:1994.8.1 / 주보성인:성모 마리아
+ 루카 복음.12,32-48<또는 12,35-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 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쓸지도 못한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 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말씀의 향기>
깨어 준비하고 있는 이는 행복하다 -김문수 야고보 신합덕 주임-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오늘 말씀이 들려주시는 가르침이다. 단순히 할 일 없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 준비하고 있는 종들'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수행해야 할 점이 있다는 점이 상기시킨다.
깨어 있을 때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점은 경험 안에서도 쉽게 이해가 된다. 과거 먹을 것이 충분하지 못했던 시절, 어머니가 잔칫집에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올 때면 먹을 것을 챙겨오시곤 하였다. 그런데 깨어 있어야 내 몫을 차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일찍 잠들어 버리면 맛있는 것을 눈앞에 갖다 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군복무 중에 보초 근무를 설 때 '깨어 있어야 한다.'는 수칙은 결국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 나라까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신앙인들은 깨어 있다는 일을 세상일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믿음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방향을 두어야 한다. 본당에서 환자를 방문하고 봉성체를 하다보면 '깨어 준비하고 기다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점을 보게 된다. 병약한 몸으로 도둑을 퇴치하기 위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참고 기다리며 신앙의 흔들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점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중,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집주인,집사로서의 충실한 모습은 무도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일깨우는 비유들인데 루카 복음사가가 처해 있던 공동체가 직면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주인이 돌아오면 분명 지난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묻고 확실할 것이므로 미리 주인의 뜻을 헤아리며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주인이 외출하고 있는 동안에 획기적이고 놀랄 만한 일들을 골라 챙기는 것만이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일은 시작은 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인내롭게 꾸준한 삶으로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주인이 바라시는 점이다.
결국 '깨어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하느님께 희망을 간직하며 현재의 삶을 살아가라는 요청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께서 '겸손한 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듯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겸손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주인은 잘 준비하고 기다린 종들을 위해 손수 식탁 봉사를 하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셨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일은 복음 말씀으로 세상을 살펴보고,현 시대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교구가 시노드를 개최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일들을 준비하고 수행하기 위해서다.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시노드 사목국
시노드(SYNOD)란 무엇인가?
초대교회 이래로 교황이나 주교는 교회 안에 중요한 문제가 발생할 때 성직자,교우들과 의논하여 해결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회의를 시노드라 불렀습니다. 따라서 시노드는 필요한 때에 교회의 중요한 문제들 해결하는 기구의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고, 가톨릭교회의 문화와 성격을 드러내는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시노드라 하면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말이지만 공의회와 더불어 이천 년 역사의 가톨릭교회가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대의원회의'라고 번역된 시노드는 희랍어 발음을 그대로 라티어로 표기한 말입니다. 희랍어로 '함께,같은 장소, 동시에' 등의 뜻을 지닌 'odos'란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함께 걸어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시노드라는 말은 어원대로 풀이하자면, 다른 여러 곳에 있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함께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는 함께 모인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문제를 연구 검토하고, 효과적인 해결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모임이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보통 그 모임의 회원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 가운데서 대표자들을 뽑아 회의를 합니다. 이때의 대표자들을 흔히 '대의원'이라 하고,이때의 회의를 '대의원 회의'라고 합니다.
우리 교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제와 수도자,평신도들이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선발된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구 대의원 회의는 교구 내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의 대표들이 모여서 교구의 현재를 되짚어 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회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노드를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느님과의 일치
제2차 바티캄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는 먼저 성령께 기도하시는 것으로 공의회를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크라코프 교구장으로 계실 때 시노드를 개회하시면서 1년 동안은 교구 공동체가 시노드를 준비하는 기도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시노드를 함께 하는 여정이라면 이 여정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쇄신과 개혁의 도구
교회 역사를 보면 시노드와 공의회는 언제나 쇄신과 개혁의 도구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정리와 반성이 시노드를 통해 이루어지며,미래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망을 세우고 비전, 즉 목표를 설정하는 일도 합니다.
3) 규율의 확립
쇄신과 개혁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규율 확립을 통해서입니다. 성직자,수도자,일반 신자들의 신원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갈등들, 교회의 모든 조직들에서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를 드러내면서 새로운 규율을 확립하게 됩니다.
4) 교육의 도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시노드가 단 시일 내에 끝나지 않고 장기적 여정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교육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시노드 기간을 통해 신앙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을 점검하고 재복음화 교육을 하며 선교 의식을 고향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시노드(synod)'란?
희랍어 syn(함) + odos(길,여정) = "우리 함께 걸어요!"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21)>
아제의 기도
주님!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영락없는 '아제'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삶의 중심에 서서 주인공처럼 살아갈 줄만 알았는데, 아재가 되어 보니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주님께 이렇게 아재의 기도를 드립니다.
젊은이들을 만나면 부디 입보다 귀가 먼저 열리게 하소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섣불리 결론짓고, 그 결론에 대해 논평하려 들지 말게 하소서.
그냥 그들의 눈을 바라보고, 그 눈동자 안에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모든 일, 모든 자리에 제 자리가 늘 있어야 할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오히려 제가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돌아가는 현실에 기뻐하게 하소서.
저의 자리가 늘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고정석이 아님을 깨닫게 하소서.
재밌는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곧바로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들이 웃어주는 일은 어쩌면 사람들이 저의 무딘 감각을 인내해 주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 웃기려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쉽게 웃어 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자꾸만 지난 시절의 기억으로 오늘의 인생 답안지를 작성하지 말게 하소서.
인생이란 시험지는 단 한 순간도 똑같은 정답으로 채울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지난 세월의 정답을 모범답안이라고 우기는 단순한 오만함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하소서.
거짓말처럼 드러나는 육신의 한계는 담담하게 인정하되,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일에는 멈춤이 없게 하소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은 힘들어도, 성당을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꽃길과도 같이 느끼게 하소서.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꽃이 내려올 때는 보인다는데, 이제 정상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발아래 지금까지 나와 함께 걸어왔던 이름 없는 꽃들에 눈길을 두게 하소서.
아제가 되었음은 주님의 '아름다운 재림'을 알게 된 축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주님, 진정한 아재의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도록 저를 부디 겸허함으로 채우고 또 채워주소서!!!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행복
무심히
하늘이 참 곱다 하며
언뜻 지나는
들꽃이 아름답다 생각될 때,
스치는 사람의 옷깃이
참 청량하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성체 성사의 고귀함과 사제의 지위
1. 예수의 말씀: 네가 천사처럼 깨끗하고 요한 세자처럼 거룩하다 할지라도 이 성사를 영하기에나 거행하기에 부당하리라.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체를 축성하고 만지며 천상의 떡을 양식으로 받는 것이 사람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다. 사제들은 얼마나 고귀한 직무와 얼마나 위대한 품위를 가졌는고! 천사들에게 주지 않는 것을 사제에게 준 것이다. 성교회 안에 법대로 신품 성사를 받은 사제들과 그의 설정하심을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사용하는 하느님의 시종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근본 되는 집권자(執權者) 시오, 무형한 주례자(主禮者) 시니, 원하시는 바가 다 그분에게 속하고, 그분이 명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복종한다.
2. 그러므로 이 지극한 존엄한 성사에 있어 자기의 오관이나 유형한 표적보다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더욱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성사에 나아갈 때는 두려운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너는 주교의 안수(按手)를 받음으로써 누구의 직무를 맡았는지 삼가 반성하라, 보라. 너는 사제가 되고, 미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신품을 받았으니, 삼가 살펴 충실을 다하여 신심 있게 제때에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네가 비난받지 않는 자로 그분 앞에 있도록 삼가라. 너는 네 짐을 가볍게 한 것이 아니요, 도리어 더 엄한 규율의 사슬로 너를 얽었고, 또 더 완전한 성덕을 닦을 의무가 있다. 사제는 모든 덕행으로 꾸민 자가 되고, 남에게 좋은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는 사람들의 보통 길로 다니지 말고, 천국에 있는 천사들이나 완덕에 도달한 지상의 사람들과 같이 행할 것이다.
3. 제의를 입은 사제는 자기와 모든 백성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겸손되어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항상 기억하기 위하여 십자가는 제의의 앞쪽과 뒤쪽에 있다. 제의 앞쪽에 십자가가 있음을, 그리스도의 자취를 삼가 살펴 열심히 따르기로 힘쓰기 위함이다. 제의 뒤쪽에 십자가를 짐은, 무슨 곤란을 당하든지 하느님을 위하여 잘 참아 받기 위함이다. 제의 앞쪽에 십자가가 있음은, 자기 죄를 울기 위함이요, 제의 뒤쪽에 십자가를 짐은, 남의 범한 죄도 동정하여 울어 하느님과 죄인 사이에 중재자 된 것을 생각하여 인자하심과 은총을 구하여 얻을 때까지 기도함과 또 성제 드림에 게으르지 않기 위함이다. 사제가 미사를 지내면, 하느님을 존경하고 천사들을 즐겁게 하며 성교회를 건설하고 살아 있는 자들을 도우며 죽은 자들을 평안히 쉬게 하고 저 자신을 모든 선에 참섭하게 한다.
-준주성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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