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연중 제 18주일 2016년7월31일(다해)

모든 2 2016. 7. 31. 22:30

서산 예천동 성당(서산지구)

본당 설립:2004.1.8 /주보 성인:성 김대건 안드레아

 

+ 루카 복음. 12,13-21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그때에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말씀의 향기>

 

행복하고 부요한 삶  - 최석영 이냐시오 -여사울 성지 주임

 

  오늘 복음은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무할 수 있는지를 비유를 통해 보여 준다. 우선 유산 상속 문제로 다툼이 있는 형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데 유산 상속 문제로 인한 자식들 간의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다. 상속은 해도 문제고 하지 않아도 문제라서 지혜와 분별이 필요한데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다. 필요한 곳에 유익하게 기부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어서 비유의 말씀을 하시는데 이야기를 통해서나 경험으로 볼 때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삶의 주도권이 생명과 소유를 허락하신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자기가 혼자 계획하고 결정한다. 비유에도 그것을 '속으로 생각(혼자 궁리하다:공동번역)'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과 의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재물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 살아가면서 재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재물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고 수단일 뿐이다. 또 재물로 해결될 수 없는 일도 많고 재물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재물이 많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도 많고 본받을 만한 모범적 신앙을 사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물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그에 대한 욕심은 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평가하여 욕심 부리고 집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1디모 6,9-10)

 

  그 외에 욕심을 합리화하여 누가 봐도 욕심인데 자기는 욕심이 아니라고 한다든지 모든 것을 이해관계로만 바라본다. 재물은 성실하게 일해서 벌고 절약해서 모으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면 재물을 비롯한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참 행복과 자유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그 해답은 오늘 복음 뒤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에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잘 헤아려 살려고 노력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항상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분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미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감사와 만족은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와 매이지 않는 자유를 가능하게 한다. 물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헤아려 살려고 노력하면 필요한 것은 덤으로 주신다는 말씀이나  이미 받은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해야 한다는 말씀은 모두 다 아는 것이지만, 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부디 잘 실천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재산으로 삼고 사는 가운데 참으로 부요한 삶,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9)

병인박해 그 후

  1866년에 시작되어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는 1873년까지 계속된 병인박해는 참혹했다. 박해 이전 23,000며 명이었던 신자들 중 8천여 명이 순교하거나 피난 중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추정한다. 죽음을 모면한 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고향을 떠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피난하여 살았다. 이로 인해 박해가 끝난 후에 신자들은 조선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는 1876년 이후 조선에 다시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목격담이다.

 

  그 가난은 대물림되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본래 가진 것이 없는 처지인 데다, 옛날에는 신자가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으니 '그 밥에 그 나물' 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병인박해가 끝나고 70~80년이 지나도록 천주교 신자들은 산간벽지나 갯가 오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대물림 안에는 참혹한 박해도 어쩌지 못하는 숨겨진 보화가 함께 전달되었다. 신자들은 떠돌이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잘 도와주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꺼이 받아주었다. 더 갈 곳이 없으면 동네에 살도록 해 주고, 없는 살림에도 조금씩 나누어 집과 농토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많은 옛 신자들은 거지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었다. 옛날은 거지들이 참 많았는데, 그런 이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단순히 쌀이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여 밥을 해주고, 때로는 잠을 재워주고, 아침까지 챙겨 먹여 보내주었다. 어려서 본 기억으로,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거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마당에 멍석을 깔아주고 밥상을 차려 주던 모습이 선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의 눈을 본 적이 있느냐"라고 하셨는데 오래전부터 그것을 실천하는 분들이 우리 안에 있었다.

 

  201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누구도 150년을 산 사람이 없으니 참으로 긴 시간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은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의 후손들이 찾아와 어느 기록에도 이름이 없는 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곤 한다. 그렇게 보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올 만큼 가까이에 있는 참 짧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 옛 신자들이 삶에서 실천하던 보화도 없어지지 않고 전달되고 있다. 옛날과 방식이 달라졌을 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테르툴리아누스 교부의 말대로 , 박해 속에서 생겨난 씨앗들이 자라니 열매를 맺으며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김정한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

그동안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을 집필해 주신 김정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20)>

 

여백은 공백이 아니다

 

멈추니 움직이는 행복 시계 

 

일은 완벽하게 끝을 보려 하지 말고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며

말은 끝까지 다 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누리지 말라

 

 '고전 번역 연구원'에서 보내온 메일을 열어 보니, '허균'이 정리했다는 고전 명구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차가운 얼음을 깨물었을 때와 같은 얼얼한 느낌이었습니다. 달리다 멈추는 것, 하다가 마는 것, 갖고 있는 걸 다 누리지 않는 것 속에도 삶의 행복이 있다니..

일은 완벽하게 마쳐야, 줄은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말은 다 해야, 복은 누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누려야 성공이란 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행복 공식이 돼 버렸는데..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것으로 자기 상처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지나친 자기 비하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치러야 할 일 가운데 완벽하게 끝내야 할 일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줄'에 대해 민감해져 있음을 드물지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옳고 그름의 줄이 아니라, 얼마나 힘이 있고 없고를 나타내는 줄에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곤 합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잘 모른 채 말입니다.

 

말과 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말을 시작하면 도중에 멈추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복을 받게 되면 그 복을 겸손하게 쓰는 사람을 만나기란 불가능합니다.

 

손톱만큼의 여백까지도 끝까지 채워야 할 '공백'으로 생각하는 우리, 여백의 여유가 아니라 공백의 공허함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엉뚱하게도 현명한 '중도포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건 놀랍게도 그물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빈틈없이 구멍이 메워지면 물고기 대신 물만 가득할 겁니다. 행복을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는 튼튼한 여백 많은 그물을 마음에 드리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젊은 날들에서

꽃향기가 나듯

 

삶의 긴 여로에서

진득한 사람의

자애로운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효행은 하느님 섬김으로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우며 효를 기본으로 행하는 자랑스러운 나라였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효의 향기가 조금씩 흐려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러워지는 마음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마음속에는 소리 없이 아름다운 민족임을 드러내는 효의 향기가 있어 아직까지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전히 건강하다. 이것은 가톨릭 신자인 필자로서의 생각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한 가지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본다.

 

  대전 가수원에서 버스를 타고 용문역 약속 장소로 가는 중이었다. 중간 지점 정도의 버스 정류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승차하는데, 대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승차를 하며 운전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실로 반가웠다. 왜냐하면 계면쩍은 일이지만, 나는 사실 운전기사님을 비롯한 이 사회 어두운 곳을 밝게 만드시는 데 애쓰시는 아름다운 분들께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김없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해오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가 창창한 그 청년이 기사님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내 뒤의 빈자리에 다소곳이 앉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감동했던 터라 기쁜 마음에 마침 내 뒷주머니에 어느 문학지에 실릴 '인사말'과 관련한 짧은 수필의 복사본이 있었기에, 슬그머니 뒷자리의 아름다운 친구에게 그 글을 잠깐 읽어보라고 건네줬다. 그 청년은 밝은 얼굴로 원고를 받아 읽었다. 내가 내릴 즈음 원고를 돌려받으면서 나에게 감동을 준 젊은 친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젊은이 최고'라며 웃음을 보내고는 헤어졌다. 물론 그 친구고 해맑은 미소로 답했다.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 그 심성 고운 젊은이와의 아쉬운 이별! 그날의 흐뭇함이 내 가슴에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 있다.

 

  요즈음 효의 가치가 흔들리는 듯해도 다행인 것은 천주교인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며 효를 행하고 있음으로 해서 , 오늘날 이만큼 '동방예의지국'으로의 면모를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믿는다. 나는 으뜸의 가르침이신 십계명에 주님께서 이르신 넷째 계명 '부모에게 효도 하여라.'라는 말씀대로 효를 행함이 모든 자녀들의 도리임을 새롭게 깨닫길 소망한다.

 

-김선호 마르코/가수원 성당-

 

 

사제를 위한 기도

 

*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

주님을 본받으려는 사제들을 지켜주시어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제직에 올라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

 

*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사제들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 사제들이 하는 모든 일에 강복하시어

은총의 풍부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 저희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이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고

천국에서는 찬란히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