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연중 제24주일 2016년 9월 11일(다해)

모든 2 2016. 9. 11. 22:30

진잠 성당(대전남부지구)

본당 설립:2001.1.30 /주보성인:한재권 요셉, 정원지 베드로

 

+ 루카 복음. 15,1-32(또는 15,1-10)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흔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흔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분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말씀의 향기>

 

예수님을 통해 계시되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 - 최교선 토마스 태안 주임

 

    올해 '다'해 주일복음은 루카가 전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만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집필한 것으로 성서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연중 2-24주일 복음은 루카 복음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불평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자신의 유산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돌아갈 유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정리 하여 원하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치는 일을 하다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 집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이들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아버지에게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온 사람을 반기듯 큰 기쁨으로 작은 아들을 맞이합니다.

 

  작은 아들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신지를 깨달으면서 아버지께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인색하고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작은 아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비유를 복음의 핵심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이들에게  '작은 아들'을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당신의 선하신 모상을 따라 창조하셨고, 이들을 자비로운 모습으로 맞이하는 분이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루카가 전하는 오늘의 복음을 주제로 '자비로우신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느님의 모든 자녀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자비로우시고 선하신 하느님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십니다. 다음 기도는 '자비의 희년 기도'중에 나오는 한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 희년 기도를 가슴깊이 느끼면서 조용히 소리 내어 바쳐 봅시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는 이들도 나약함으로 갈아입고 무지와 잘못에 빠진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바라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만나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via의 시선(감탄의 마음으로) /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 되기 보다는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더 애쓴다. 사람에게 기게스의 반지를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힘을 주는 절대반지를 받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즉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정당화가 안 될 때까지만 남을 속였다. 자신이 정직하다는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런데 희망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한다. 그래서 비관적이라는 말은 현실에 대한 감각이 높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현실감각이 매우 높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사람은 믿고 싶을 때는 "믿어도 될까?"하고 묻지만 믿고 싶지 않을 때는 "이것을 믿어야 하나?"하고 묻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기 위해서 사실(fact)을 진실(truth)로 해석하며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건과 사건 그리고 의견을 첨부해서 의견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조작한다. 자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응답을 내보낸다. 즉 느낌이 좋으면 사실로 뭔가 느낌이 좋지 않거나 불쾌하면 사실이 아닌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성을 사용한다. 이성적 인간의 걸작품이 시스템이다.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스템은 성장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은 시스템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관리자로서의 사람은 시스템을 활용해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모든 생명의 성장에 기여한다. 그러나 시스템으로 편입된 사람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기계론자들의 부속품이 될 뿐이다. 사람을 잊어버린 시스템은 사람을 소외시키고 폐기한다. 그래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도덕성"이다.

 

   사람은 도덕적 추론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불어 요청되는 것은 도덕적 직관이다. 도덕적 추론 능력만 있고 도덕적 직관이 없을 때 만들어 내는 결과는 침울하다. 이러한 시기의 이성은 사실보다는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된다. 총체적인 절망의 추락이 발생한다. 이제 "다움"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자신의 얼굴을 가리거나 가면을 써야 삶이 가능하게 된다.

 

   보시니 좋은 세상, 그 세상 속에 창조된 모든 생명의 처음은 좋았다. 감탄없이는 상봉이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감탄의 존재였다. 그런데 더 이상 감탄하지 않는다. 감탄의 자리에 기대와 분노를 채우고 살아간다.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규정되는 나를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오늘 우리는 예수의 선포를 듣는다. "주님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붓고 나를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라."

 

   지금 여기에서 선취되는 말씀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걸으셨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선취되는 하늘나라를 산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26)>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기인이 미인으로 변하는 기적

 

  1974년 보컬 그룹 '신중현과 엽전들'이 부른 "미인"이라는 노래 혹시 기억하시나요? 노래 제목은 기억못하신다 하더라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는 잊지 않으셨을 겁니다.

 

   한 번 들으면 자꾸만 따라하게 되는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는 이 노래 가사.. 이 가사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입가에 착착 감기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자꾸만 흥얼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역설적으로 우리가 자꾸만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을 현실 안에서 만나기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1.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알 수 없는 사람

2.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볼수록 실망스런 사람

3. 한 번 보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보고 또 보고 싶은 '미인'을 만나기가 현실 속에서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아름다운 사람들 만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아름다운 부분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욕망의 타성'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봐도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이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비워져야 합니다.

 

   마음이 비워져 있지 않으면 상대방은 만날수록 '미인'에서 '기인'으로 변해 갑니다. 상대방이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해 가기 때문인데, 우리는 자꾸만 상대방 탓이라 화를 냅니다. 우리 눈에는 이상해 보이는 기인도 하느님 눈에는 자꾸만 보고 싶은 미인임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다가오는 추석, 모두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가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미인'으로 보이는 축복이 가정마다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이충무 바오로 /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이 생(生)의 시간

한 조각 떼어내

맑게 닦고 갈고 갈아

그 언젠가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겨야지.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시노드 알림터>

 

   준비위원회의 분과 위원회는 성직자,수도자,평신도,전례,신심활동,본당사목,특화사목,교회운영,사회복음화 분과 등 총 9개입니다. 분과의 성격에 따라 적게는 10명부터 많게는 18명까지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21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과별 구성원은 성직자,수도자,평신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 준비위원회의 9개 분과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을 간추려서 소개해 드립니다.

 

교회운영 분과

교회운영 분과는 교구 운영과 지구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교구 운영에서는 교구 인사정책의 합리성, 교구재 정이 투명성과 건전성 등 교회의 조직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지구 운영에 대해서는 교구와의 원활한 소통 체계의 마련, 지구장 신부에 대한 합당한 권한과 의무의 부여 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 밖에도 본당 운영, 원로사제, 신청사 건립 등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수도자 분과

성소자의 감소와 수도자들의 정체성, 그리고 교구 및 본당 공동체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핵심 주제입니다. 안건을 최대한 줄이고 심도 있게 성찰하는 방향을 설정하였으며, 이를 위해 주체를 현황, 정체성, 사도직, 관계 개선, 성소 등 5개 부문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이 주제를  위해 11명의 위원들은 조사팀과 집필팀의 2개 팀으로 구분하여  활동을 하게 됩니다.

 

사회복음화 분과

사회복음화 분과는 교회의 내적, 외적인  복음화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영적인 배려가 필요하고 사회교리적 가르침을 확대하자는 등의 의견이 나왔으며, 교회 외부적으로는 교회 내부에서 먼저 정당한 임금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되면 사회가 바뀐다는 의견과 "어서 가서 복음을 전하라"라고 하는 그 '전할'복음이 무엇인지 성찰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본당사목 분과

본당사목 분과의 고민은 쉬는 교우, 주일학교와 교리교사, 구역반 모임과 소공동체 모임, 본당 내 교리교육,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연계하는 열린 교회, 혼인과 가정 문제, 본당 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사이의 공감과 소통 등 우리가 본당에서 흔히 겪는 일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쁨과 희망을 주는 통합적 사목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자는 의견입니다.

 

신심활동 분과

신심활동 분과는 신앙의 정도, 성사 생활, 기도 생활, 신앙 심화를 위한 노력, 신심단체 활동 등의 5개 분야로 구분하여 검토하자는 의견이 개진되었고, 이에 따라 신심활동의 종류와 범위, 연구방법 등 각자 준비한 조사내용들에 대한 위원별 발표시간을 가셨습니다.

 

전례 분과

전례 분과는 전례의 집전자에 대해서, 전례 교육에 관하여, 그리고 전례와 신앙인의 삶에 관하여 등 세 가지 분야를 집중적으로 살피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평신도 분과

평신도 분과는 시노드가 대전교구의 모든 이들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평신도의 모든 삶과 연관되기에, 그 출발점에서 대전 교구민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시작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이 밖에도 성직자 분과와 특화 사목 분과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교구설정 60주년을 보내면서 교구 시노드 개최에 대한 생각이 들었지만 여러 정황상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되어 다음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 교구를 직접 방문하시는 역사적인 일을 겪으면서 시대의 징표들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쇄신과 변화를 절감하며 교구 시노드 개최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물질숭배의 배금주의와 지나친 나 중심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있기에 하느님 중심과 이웃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 소통의 원활함도 필요합니다. 남북 분단의 고착화는 많은 이념적인 차이를 낳아 병처럼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기에 더욱더 함께 노력하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대전 교구는 첨단 과학기술의 대도시인 대전시에서부터 행정 특별 도시인 세종시, 중소도시, 농촌, 어촌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다양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예로부터 많은 순교자들의 믿음과 삶을 가장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교구 시노드를 통해 다방면에 걸쳐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복음적인 기쁜 삶을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고, 순교자들의 믿음과 삶을 본받아 널리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노드에서 논의할 주제들은 하느님 백성들의 논의와 토론을 통해 정해지기를 바라고 이  모든 과정에 성령께서 잘 이끌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며 몸과 마음이 지친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이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시노드의 여정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노드는 성령께서 교회 안에 일하심을 체험하는 장이기에 성령께서는 시노드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노드에 참여하는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사도적 용기를 가지고 말하고, 복음적 겸손으로 이웃의 말을 들어주며, 기도와 신뢰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