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6년 4월 3일(다해)

모든 2 2016. 4. 3. 22:00

법동성당(대전동부지구)

본당 설립:1995.2.6/주보성인:성모 성심

 

+  요한복음. 20,19-31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향기>

 

평화가 너희와 함께 - 이범배 바오로 금사리 주임

 

  전통적으로는 부활 8일 축제가 끝나는 부활 제2주일을 사백주일이라 했습니다. 이날은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교우들이 축제의 옷인 흰옷을 벗는 주일이었습니다.

 

  이런 이름과 관습이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의미가 퇴색된, 3000년기를 열면서 2000년 대희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하느님의 자비를 증거한 폴란드의 파우스티나 성녀를 이날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하느님의 자비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이 특정한 성인들만의 고백은 아닐 것입니다. 흙이요 먼지인 나를 나로서 살게 해주신 은총으로부터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나의 생명 자체가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임에도 그분의 사랑을 모르고 배은망덕한 나에게 결정적인 자비의 은총은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임에도 살도록 기회를 주시며 기다려주시는 은총입니다. 생명보다 큰 자비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인간성 자체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죽을 운명을 지닌 유한한 인간 육신의 생명을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으로 불러주십니다. 부활한 생명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시어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의며 그들을 용서와 자비의 자도로 파견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용서와 포용의 자비는 부활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세 번이나 평화의 인사를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죄와 죽음을 이겨낸 평화입니다. 생명을 위협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길에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이겨낸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이들에게는 그 믿음을 증거할 능력이 선사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그 선물입니다.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그 평화로 이제 생명으로 나아가는 모든 장애와 불안이 제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평화를 주시며 예수님의 부활을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016년 요한복음의 해

요한복음 이해하기(1)

 

  우리 교구는 2016년 한 해를 "말씀과 성사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해"라는 사목지표에 따라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에서 실천하는 내적 힘'(2016년 교구장 사목교서)을 길러가는 데에 전 교구의 공동체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말씀

 

  첫 신자들의 공동체는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사도 2:42)을 통해서 친교와 일치를 이루었다. 초기 교회의 빵 나눔은 그리스도께서 수난 전날 제정하신 성찬례를 의미한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코린 10:17)

 

  수천 년이 지난 현재의 교회에서도 신자들은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과 친교와 일치를 이루고 있다.

 

  성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도체는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도 그리스도와 만나고, 구성원들 간의 친교와 일치를 이룬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다른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함께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은 개인적인 신앙성숙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친교와 일치를 통한 공동체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신앙의 보호를 위한 성경의 올바른 이해

 

  요즈음 교회 안에는 성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성당과 교육회관 등지에서 많은 신자들이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이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용하여, 잘못된 성경해석으로 신자들을 위협하는 이단들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위협은 신자들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일상의 삶, 한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개인을 넘어 신앙공동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러한 위험들로부터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때, 성경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으며 그릇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교구 공동체가 2016년 요한복음의 해를 보내며 함께 요한복음을 읽고, 공부하면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우리의 신앙을 보호하고 공동체의 성장을 이루길 기도한다.

 

-대전교구 사목 기획국-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03)>

 

꽃은 황홀한 약속

    어린 시절엔 작은 것보다 큰 것에 먼저 눈이 가고, 나이가 들면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 먼저 마음이 갑니다.

어린 시절엔 꽃이 활짝 펴야 봄이 온 줄 알았지만, 나이가 드니 꽃망울만 봐도 봄날인가 싶습니다.

 

    젊은 시절엔 꽃구경보다 사람 구경이 재밌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사람 구경보다 꽃구경이 더 편하게 느껴집니다.

젊은 시절엔 밤 벚꽃나무 아래에서 친구와 맥주 한 잔 마시는 일에 신바람 났지만, 나이가 드니 벚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둥근달이 한결 더 반갑습니다.

 

 어릴 땐 봄날이 오자마자 여름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봄날엔 봄날만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봄날이 가고 바다로 달려갈 여름을 상상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저물어 가는 봄날 하루도 자꾸만 아쉬워집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봄날이 오고 또 오고, 가고 또 갔습니다. 자연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만 변해 가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매번 약속하신 봄날을 때맞춰 전해 주시지만, 사람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봄날을 맞이하곤 합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 조금 남은 저녁 햇살 아래 수줍은 꽃망울이 눈에 들어옵니다. 새삼 마음이 울컥합니다. 희뿌연 미세먼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과 낮 사이로 큰 온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약속을 지켜준 그 작은 새싹이 저를 부끄럽게 합니다.

 

  봄이 와도 서로 꽃을 먼저 피우러 다투지 않는 나무를 봅니다. 먼저 꽃 피운 나무는 그 나무대로 아름답고, 뒤늦게 꽃 피운 나무는 또 그 나름대로 멋집니다. 쫓기지 않고, 긴장하지 않고 소리 없이 약속을 지킨 그 묵묵함이 저를 또 부끄럽게 합니다.

 

  꽃은 결코 경쟁으로 피울 수 없습니다. 서로의 약속을 지킨 결과로 피어날 뿐입니다. 꽃은 그래서 황홀한 약속입니다. 부활절이 지났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부활로 약속을 지키셨는데 우리는 어떤 꽃으로 그 약속을 지키고 있을까요?

 

  강요나 설득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닌 한없는 사랑에 저절로 응답한 하느님과의 약속.. 수많은 고통의 미세먼지가 날아와도, 희망과 절망의 큰 일교차에도 굴하지 않고 파릇한 꽃망울로 하느님 앞에 거듭날 거란 그 약속.. 그 황홀한 약속을 실천하는 4월이 되길 기도해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잠에서 깨어

다시 살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순명의 진리에

깊이 감사하며

머리를 숙입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즈음한 담화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입니다. 자비의 희년과 더불어 맞는 부활시기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평화가 모든 분들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1.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루카 20,25) 이 말씀은 정치와 종교가 별개라는 뜻이 아니라 신앙인은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그리스도교는 내세의 구원만을 지향하는 종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의 실현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의무이며(「간추린 사회교리」,413항),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만연한 '무관심의 세계화'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가 처한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고통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교황 프란치스코,「제49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3항)

 

  2. 공동선과 평화와 정의에 기여하는 후보를 식별하시다.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공동선에 대한 공동 책임 (「가톨릭교회 교리서」, 2240항)이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보편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생명 존중과 사형제 폐지, 하느님의 창조 질서 보존과 생태적 생활양식으로의 전환, 남북한 대화와 교류를 통한 화해와 평화 정착, 점차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 해소, 노동자들과 농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권익 보호와 배려 등이 우리 시대의 주요 과제임을 천명해 왔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무엇보다 '소통'이 절실히 절실히 필요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역의 일꾼이지만 국가의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서도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 공동선과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각 정당과 후보를 잘 식별합시다. 사사로운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이기보다 각 후보의 공약이 복음정신에, 공동의 선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잘 식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투표에 참여합시다.

 

  3. 깨끗하고 겸손하게 일할 일꾼을 찾아냅시다.

  자비는 타인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용감하게 맞서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사회의 이러한 곪은 상처는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근간을 위협하기에 하늘에까지 이르는 중대한 죄입니다. 이 부패를 척결하려면 현명함, 경계심, 정직성과 투명성 그리고 어떠한 부정행위라고 고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자비의 얼굴」,19항)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직사회와 정치권 등 공공부문의 부패 정도를 조사하는 '국제투명성 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15년 발표에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깊이 자성해야 할 일입니다.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 임무요,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기본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된 구조적이며 고질적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깨끗한 일꾼들이 봉사자로서 겸손하고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그리고 언론도 '민주적 참여를 위한 주요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주시길 요청합니다.

 

  정직하고,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는 이들이 국민들의 대표자로 선출될 수 있도록, 철저한 검증과 냉철한 판단을 내려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자비의 희년에 시행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나라가 하느님의 자비로 충만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2016년 3월 27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