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31

위안과 그리움… 마종기의 詩, 무겁고 차가운 외로움 떨치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서정의 파수꾼’ 마종기 시인 ▲ 2010년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후배 문인들이 마종기 시인 시력 50년 기념의 밤을 마련해 주었다. 왼쪽부터 문정희, 오생근 시인, 김치수 평론가, 정현종 시인, 마 시인, 황동규·김혜순 시인, 김병익 평론가. 마종기 시인은 우리 시단에서 퍽 이채로운 위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생애의 많은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는 슬럼프 없이 균질적 시 쓰기를 해 온 모어(母語)의 사제요, 순수 참여의 틀을 넘어 지성적 사유를 통한 위안의 시 쓰기를 지속해 온 서정의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그의 열두 번째 시집 ‘천사의 탄식’이 나왔다. ‘시인의 말’에 “아주 멀고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고달픈 말과 글을 모아서 고국에..

자연 닮은 이준관의 동시… 슬픔의 치유자와 만나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동심 지켜온 50년, 이준관 시인 ▲ 한국시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관 시인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살아온 길을 얘기해주었다. 이준관 시인의 눈망울은 선한 사슴의 그것을 닮았다. 하늘 높은 초가을, 한국시인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시인의 눈동자는 동시를 평생 써온 맑음과 깊이를 온전하게 담고 있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50년째를 맞는 시인은 여전히 수줍은 미소로 자신이 세상에 흘려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을 꼼꼼하게 회상해주었다. 척박하기만 했던 우리 아동문학 현장에서 ‘이준관’이라는 이름은 탁하고 거친 세상의 흐름을 역류하여 평생 동시를 써온 뚜렷한 지표로 우뚝하다. 지금 같은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그의 동시가 치유의 손길을 건네는 순간이 거기 있었다. 그의 어..

원고지 10만장에 담긴 ‘청년 방민호의 꿈’… 세상 모든 글을 품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시·소설 쓰는 평론가 방민호 ▲ 최근 산문집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을 낸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시간과 공간을 씨날로 교차해 문학을 이야기하고 시대를 환기한다. 오래고도 거센 장마 끝자락에 서울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는 또래이고, 공동 경험을 여럿 나눈 동료이고, 서로의 성정을 잘 알고 있어 이야기의 핵심을 집약해 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새삼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이번에 그의 신작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책에 얽힌 이야기, 그동안 걸어온 문학 인생 이야기며 앞으로 매진해 갈 분야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방민호는 세상이 다 아는 비평가요, 근대문학 연구자다. 그런데 그는 근자에 들어 시와 소설 등 창작 부..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신동엽 ‘전경인 정신’ 잇는 ‘의예과 교수’·시인 신좌섭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 ▲ 통일과 저항의 시대적..

역사 속 시인 윤동주·송창근 목사…그의 집요한 고증, 진실 복원하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윤동주 평전’ 저자, 소설가 송우혜 초여름 햇살 따가운 금요일 낮에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송우혜 선생을 만났다. 그동안 여러 번 뵈었지만 선생은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내 기억 속에 추가해 주신다. 그때그때 휴대전화의 녹음 기능을 쓰게 된 것이 벌써 상당량이 된다. 송우혜 선생은 말할 것도 없이 저 ‘윤동주 평전’의 눈부심을 완성한 저자로 가장 유명하다. ‘윤동주 평전’은 윤동주가 살아 냈던 북간도의 역사와 상황을 사실적으로 복원하고, 당시의 극비 취조문서나 판결문 같은 자료를 섭렵하고 추적해 짧았지만 파란만장했던 윤동주의 삶을 구성해 낸 한국 평전문학의 정점으로 남았다. 정작 선생은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성과를 무엇이라 생각하실까 한번 여쭈었다. ▲ 올해로 등단 ..

어둑한 근대사에 돋보기…행간 속 민족을 사색하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정치의식 탐구’ 임헌영 비평가 ▲ 사회운동과 한국 근현대문학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의 삶을 정의하는 두 축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자 원로 비평가인 임헌영(79) 선생의 이미지는 불가피하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선명하게 각인된다. 이른바 ‘남민전 사건’으로 인한 투옥과 시련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운동에의 투신이 한 축의 면모라면, 다른 한 축은 치밀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국 근현대문학의 실증적·사상적 연구를 축적해 온 면모로 귀납된다. 그 가운데 연구소에서 오랜 열정과 공력을 다해 펴낸 ‘친일인명사전’(2009)의 성과는 우리 근대사의 어둑한 순간들을 현재로 소환해 반성적 자료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 권 분량에 4300여명을 수록한 이 책..

농부가 농사짓듯 매일 원고지 3장… 그렇게 글밭 일궜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한국소설가협회 새 이사장 김호운 ▲ 김호운 소설가가 울산 오영수문학관에 있는 오영수 선생 사진과 육필 원고로 장식한 벽 앞에 앉아 있다. 김 작가는 향토색 짙은 소설 창작의 외길을 걸었던 오영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오영수문학상 운영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소설가 김호운 선생이 올해부터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국내 최대 소설가 단체의 리더로서 4년 임기를 시작한 선생은, 그동안 선 굵은 서사를 일관되게 보여 준 우리 문단의 중진 작가다. 큰 단체의 장을 맡은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1974년 설립 이후 이번에 최초로 회원 직선제 선거를 치러 이사장을 선출했다는 점에서 외적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내적 변화를 이루어 가야 하는데, 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풀꽃 시인’도 그렇게 낮고 겸손하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서정의 품격’ 나태주 시인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풀꽃’) 이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와 파급력이 입증된 이른바 ‘국민 서정시’다. 나태주 선생은 그동안 이처럼 맑고 고운 빛깔을 띤 순정의 서정시를 써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그 안에 들어앉은 사물들이 밝은 화음으로 출렁이고 있는 힘을 느끼게 된다. 그 출렁임은 어느새 말과 사물 사이를 채우는 가벼운 파동으로 천천히 옮겨 간다. 선생은 모든 존재자들의 만남이 그 자체로 최초이면서 최후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힘들 때/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행복’)만으로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노래해 왔다. 이름 없는 풀꽃의 발뒤꿈치..

외따로운 그곳에서 홀로 서정꽃 피우다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한국작가회의 새 이사장 이상국 2019년이 다 가는 세밑에 춘천에서는 이색적인 문학 행사가 하나 열렸다. 강원문학을 소설과 시 양쪽에서 이끌어 온 전상국 선생과 이상국 선생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전상국 선생의 전집 첫 권인 ‘동행’과 이상국 선생의 문학자전 ‘국수’ 출간을 기념해 두 분의 이름을 따서 ‘상국’이라는 이름의 북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우리에게 ‘아베의 가족’이나 ‘우상의 눈물’로 유명한 전상국 선생, 농촌 사회의 활력과 그늘을 동시에 투시해 온 이상국 선생은 모두 ‘강원도의 힘’을 선명하게 일군 대가급 문인이다. 특별히 이상국 선생의 ‘국수’는 40여년 동안 고향을 지키며 다듬어 왔던 삶과 생각, 시와 산문을 망라해 ‘시인 이상국’을 들여다보는 투명한 창..

고전과 창신이 농울치는 모국어의 연금술사

[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천재 시인 이근배의 詩想 ▲ 자신의 서재 ‘신연재’에서 포즈를 취한 이근배 시인. 벼루 컬렉터로도 유명한 시인은 시와 벼루에서 삶과 시간, 우주, 예술을 읽는 듯했다. 유성호 교수 제공 내 기억에 이근배 선생은 신춘문예 다관왕으로 가장 선명하다. 신춘문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문청들의 최고 로망이다. 선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따라다니는 이 화려한 이력은, 한국문학사 전체에서 한 천재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전무후무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 196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의 작품 ‘벽’을 두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태극 시인은 “체험의 생생한 기록”이라고 극찬했다. 사진은 서울신문 그해 1월 1일자 12면. 서울신문 DB ●천재 시인의 탄생 서울신문 신춘문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