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주님 성탄 대축일 2023년 12월 25일(나해)

모든 2 2024. 1. 2. 16:31

 

 

 

 

 

주님 성탄 대축일 메시지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어자라 불리고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루카 1,76)

 

 

  + 찬미 예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외아들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교구의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며, 여러분 모두 그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느님 자비의 절정입니 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시작한 구원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에 등 돌리고 사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보다 주님의 은총이 충만했던 부유한 시절에 오히려 죄악이 커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이 자신들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 친히 이루어주시는 구원을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메시아를 보내주시고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신다는 말씀은 하느님 백성의 이러한 갈망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때가 차자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온 것입니다. “회개 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4,17)는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한 설교의 첫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하시며 선포하신 첫 말씀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태어나실 때, 이 신비를 목격한 증인들 그리고 이 신비가 이루어지도록 함께 한 여러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즈카르야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자 요한을 낳아준 사람들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방문했을 때, 태중의 아이가 뛰논다고 말하면서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주님을 낳으신 주역입니다. 목동들은 천사들의 소식에 놀라며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시간에 함께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계시를 받고 먼 길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준비해 온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들 모두 우리가 주님을 믿고 신앙의 여정을 가는 길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은 아주 특별한 인물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요한은 엘리 사벳의 태중에서 즐거워 뛰놀았다고 합니다. 이는 영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는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두고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루카 1,76)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신비가 성령 안에서 이렇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영성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성사와 말씀의 은총 그리고 주님을 닮은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성령의 감도에 이끌리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성장하여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광야로 나갑니다. 그는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지냈다고 합니다. 광야는 홀로 고독한 시간 안에서 하느님만을 대면하며 자신의 길을 찾는 장소입니다. 마치 깊은 피정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셔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마태 4,1).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상사에 쫓기며 올바른 가치를 잊을 수도 있고,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열정을 쏟으면서 정작 하느님은 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내가 정작 무엇을 좇고 살고 있는지, 내 삶에서 주님은 어떤 분 이신지, 내 이웃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깊이 묻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참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겸손은 주님을 아는 데에서 나오는 진정한 겸손 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치는 소리 역할을 할 뿐이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우리 신앙생활의 큰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했고, 예수님이 그의 앞에 오시자 즉시 자신의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요한이 작아지고 예수님께서 커지신다는 것은 요한의 존재가 점점 의미 없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요한을 통해 예수님께서 드러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 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한 것도 같은 고백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라고 불린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벌써 우리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고, 이 세 상에서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신다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주님 성탄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면 서,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는 신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조금 흐려졌지만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의 희생은 아직도 충분히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은 벌써 많은 희생자를 낳았고 아직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이 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에 너무 집착하여 오히려 불행한 상황을 만드는 일도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창조부터 종말의 완성까지 이끌어 가시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비로운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이 늘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님 탄생의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2023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