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성당 하흑공소
청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하흑1길 2(신석리 214-8)/2017년 촬영
+ 요한 복음 11,1-4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때에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나티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다니면 이 세상의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하고 말하였다.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을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말씀의 향기>
예수님을 눈물짓게 한 여인들 - 한동성 갈리스토 해미 주임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의미를 지닌 ‘라자로’가 베타니아에서 죽었다. 두 자매를 남겨 놓고. 시신은 당일 장사 지내는 풍습에 따라 동굴에 안장된 지 나흘이 흘러 냄새가 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11) 하며 베타니아로 가신다.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오심을 듣게 된 마르타는 예수님을 마중 나간다. 그녀는 예수님을 믿었으나 그 믿음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는 질문을 던지신다. 마르타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하셨던 것 같다. 더욱이 마르타는 “돌을 치워라.”(요한 11,39)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려는 표징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다. 마르타가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는 말에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나갔다. 그녀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 드린 여자”(요한 11,2)였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이 남달랐다. 그녀는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 하며 울었다. 오빠의 죽음에 대한 설움과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못하신 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엎드려 우는 마리아와 그와 함께 있던 유다인들의 눈물에 감정이 북받치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눈물을 흘리셨다. 그분은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라는 가르침을 말보다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하느님의 눈물은 그분이 우리에게 지니신 동정과 연민의 크기를 생각하게 한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죽었던 라자로를 소생시켜 주신다.
마리아는 사순의 다섯 번째 주일을 지내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변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머리를 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릴 수 있는 용기 있는 믿음과 사랑. 값진 향유를 드릴 줄 아는 빛나는 봉헌. 오빠 라자로의 죽음으로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순수하고 진솔한 가슴. 우리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물어보자. 용기 있는 믿음과 사랑을 가볍게 여기거나 냉소하지 않았는가? 빛나는 봉헌에 준비되어 있는가? 순수하고 진솔한 가슴을 간직하고 있는가?
“주님, 저희의 불신과 욕망으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고 정결한 새 마음으로 돌려주시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한 주가 되게 하소서”.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은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길이자, 교회의 길입니다.
천주교대전교구 가정사목부는 교구설정 50주년과 21세기를 맞이하면서, 1999년 1월 11일 교구 직제 개편과 함께 설립되었고, 내년(2024년)이면 출범 25주년을 맞이합니다.
가정의 행복이 세상과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권고 [사랑의 기 쁨(Amoris Laetitia)]에서 말씀하셨습니다(31항 참조). 오늘날 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봉사의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길 원한다면, 현대 가정이 처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그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따라서 사목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가정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 즉 인간 존엄에 대한 응답이 무엇이며, 상호 신뢰와 사랑, 친교와 출산을 통한 온전한 성취에 스스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정사목부는 하느님 은총을 신뢰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삶으로 구현해 감으로써 하느님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 보여주는 주체로서의 그리스도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한 처음” 계획하신 혼인과 가정, 그리고 사랑과 생명의 존엄과 수호에 대한 복음선포를 위해 다음의 내용을 지향합니다:
1. 가정사목부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교구 차원의 통일된 가정사목 정책수립과 혼인과 가정, 그리고 사랑과 생명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와 교육을 실시합니다. 이에 따라 가정사목부는 가정-사랑-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신자들의 생애주기(부부, 부모, 자녀)에 맞춰 연구하여, 교리교육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2. 가정사목부는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와 돌봄이 최우선이 되도록 가정사목의 인식을 강화하도록 노력합니다. 여기서 가정들의 공동체인 본당은 가정사목의 중요한 임무와 역할을 담당합니다. 따라서 본당 사목 계획에 가정과 생명에 대한 관심을 고취하여 각 본당 내 가정 관련 단체들(가정생명, 청소년, 노인분과, ME 등)이 교구 가정사목부와 연계하여,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목활동을 펼쳐갈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3. 가정사목부는 “하느님께서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생명의복음 39항)라는 진리가 가정에서부터 깨닫고 실천하게 하여, 올바른 사랑과 생명 존중 문화를 이룩하는 데 앞장서 나갑니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가정사목만이 아니라, 생명-가정(혼인-성-출산)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과 그 위기의 가정과 생명을 돌보는 “가정생명”사목 활동으로 점차 넓혀갈 것입니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가정사목 전담-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13)
성 클라라 수도회 인천 강화 수도원
Order of St. Clara(Ganghwa)
「빛이 되다」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재료 : 엔틱글라스(Antique glass), 열성형유리(Fused glass)
•크기 : 235 x 48 x 3cm
•제작 : 2009년
•제작의도
가난, 정결, 순명, 봉쇄를 서약하는 클라라 회원들의 모습을 빛과 복음의 생명을 잉태하는 씨앗으로 표현하였다.
관상생활과 기도의 삶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은총을 받아 그들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헌신과 사랑의 본보기가 되는 빛이 되기를 염원하였다.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진정한 비움으로 또다시 채워지는 공간이다.
비워서 채워지는...
집착하지 않고 하나씩 비워가는 과정의 공간인 것이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분들의 마음이 빈곤하지 않고 영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지금 현실의 삶은 지나쳐 가는 여행자의 삶으로, 죽은 후 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세속적 부유보다는 영적인 부유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 교구 내 공소
합덕성당 하흑공소
하흑(‘아래검은들’)공소는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를 기념하는 곳으로 김사집 복자는 하흑에서 멀지 않은 ‘비방구지’ 출신이다. 공소예절은 1950년대 말 표진동(안드레아) 회장집에서 시작하였다. 첫 공소건물은 구호물자를 절약·매각하여 1958년에 건립하였다. 그 후 1984년 경지정리 사업으로 인해 공소가 철거되고 1985년 현 위치에 시멘트벽돌조(연면적 62㎡)로 이전 신축되었다. 당시 건축 비용은 쌀 50가마(320만 원)가 소요되었다. 2017년 수리를 통해 창문과 지붕마감재를 교체하고 내부 장식을 가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현재 공소는 구역 및 레지오 회합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교세는 15세대 37명의 교우가 있으며 21명이 성당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해외 선교지 페루, 그곳은>
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성당과 사제관 사이에 큰 마당이 있습니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우기가 시작되어 매일 강한 비가 3월까지 내리는데 그 기간에 마당에 풀이 정말 빠르게 자랍니다. 조금만 관리를 소홀히 하면 풀이 금세 무릎 높이까지 자라곤 합니다.
매일 공소 미사를 다니고, 혼자 성당과 사제관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당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바로 양을 키우는 것입니다. 지금 성당 마당에 네 마리의 양들이 풀을 뜯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네 마리의 양이 성당 마당에 있는 풀을 정말 예쁘게 가꾸어(?) 놓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과 중 하나가 바로 양들을 챙기는 것입니다. 밤새 여우나 다른 동물들이 들어와서 공격하진 않았는지 살펴보고, 양들이 마실 물이 얼어 있으면 얼음을 깨서 마실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따돌림 당하는 양은 없는지 매일 살펴보곤 합니다.
쉬는 날에 마당에 앉아 있으면 양들이 제 곁으로 와서 풀을 뜯습니다.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습니다. 양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성경 말씀처럼 양들이 제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처음엔 엄청 경계를 했지만 이제는 제가 부르면 달려와서 주변을 맴돌고 저를 빤히 쳐다보기도 합니다.
이곳 안데스 신자분들이 말씀하시기를 양을 새끼 때부터 사랑으로 잘 돌보면 강아지들보다 사람을 더 잘 따른다고 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안데스에 사시는 신자분들 대부분이 양과 알파카를 치며 살기 때문에 이제 그분들과 더 많은 공통주제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그분들 안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자연 안에서 만나는 분들을 사랑하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박상호 라파엘 신부 해외 선교(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파견)-
『해외 선교지 페루, 그곳은』을 마치며 그동안 연재해 주신 박상호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분 교리>
Q-1) 예수님께서는 왜 극형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그 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요?
A)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인간의 죄를 씻어 없애고, 인간을 마귀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당신의 교훈과 표양으로 구원의 길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그분의 가르침에 나타난 반발적인 요소이며, 둘째는 당시 유다인들이 가졌던 신관이며, 셋째는 그룹마다 가졌던 메시아관의 차이입니다.
IPCC(기후 위기 대음에 대한 국가 정부 간 협의체) 6차 보고서
찬미 예수님, 완연한 봄날입니다. 환절기라서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이기도 하죠.
오늘은 최근 나온 IPCC 6차 보고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주된 내용은 이제까지 기후 위기는 인간에 의해서 되었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확신에 근거한 문구가 아니라 추론에 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인간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확실하다는 의미의 문구가 쓰인 것과 산업화 이후 1.1도 상승 후 골든타임은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사고를 많이 봐서 골든타임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엔사무총장은 보고서 보고 후 인터뷰에서 '인류는 이제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어찌 살아가겠지만 예전의 자연과 공존하는 삶은 아닐 거 같습니다.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 각종 바이러스의 출몰 등 자연의 반격에 우리가 순응하며 지내야 하겠지요.
완연한 봄날 이런 소식을 전해드리게 돼서 안타깝지만 완연한 봄날도 그러고 보면 10년이 남지 않을 수도 있는 봄날입니다. 아직도 환경은 누구의 몫으로만 돌리고 지금을 즐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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