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속으로] 불교화가 한승구 화백
"순수회화와 종교회화,성격만 다를 뿐 예술행위는 똑같죠"
16세 때부터 동양화 그리기 시작
군 제대 후 호기심에 시작한 불화
기사입력 : 2014-11-25 11:00:00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불상을 모시게 되면 불상의 뒤쪽에 반드시 그림을 그려 배치하게 되는데 전각에 모셔진 주불(석가모니 부처님 등)에 따라 그 그림의 내용도 각기 다른 형태를 띤다.
이 그림이 이른바 불교의 성화, 통칭 불화(탱화)라 불린다. 불화는 불교의 유입과 함께 오랜 전통을 가진 예배용 성화로 주어진 의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작가의 심미안적이나 감성적 요소 등 작가의 자유로운 생각을 구가할 수 있는 일반회화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이 분야와 관련된 동국불교고미술연구소를 운영했고, 대한민국 불교미술작가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을 받다가 어느 날 홀연히 서울을 떠나 고성의 한적한 산골에서 오롯이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불교미술 작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2010년 10월 고성군 개천면 옥천사 주변에 작업실을 차린 서당 한승구(55) 화백이 그 주인공이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원래 그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한 화백은 어린 시절 부산으로 이사가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후 화가 겸 대학 강사로 활동했다. 1988년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우수),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특선 2회) 등의 수상경력과 일본, 중국, 미국, 서울, 부산 등에서 20여 차례의 개인전 및 초대전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 왔다. 특히 불교미술과 한국화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색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의 작업실은 30대 초반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직접 지어서 몇 년 동안 지내기도 했던 곳이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처음은 아니지요. 사실 제가 시골로 내려오게 된 것은 서울의 대학 강단에서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협잡스러움에 섞이는 것이 싫어 미련없이 등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으로 내려온 뒤 학계나 화단에서 활동하는 선후배나 동료들과의 연락을 완전히 단절하고 자칭 ‘독립군’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불화와 인연은 ‘호기심’
“제가 불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불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본 일도 없었고 불화라는 종교화는 회화의 범주에 넣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16세부터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고교 시절에는 학교 공부보다 전국미술대회와 대학미술대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른바 미술특기생으로 대학을 갈 수 있을 만큼의 수상 실적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동양화를 그리는 일에 시들해져 대학 전공을 바꿀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국대 불교미술학과에서 불화 그리는 것을 가르친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호기심에 그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군생활 마치고 2년 후 늦깎이 대학생활을 시작했지만 오래전부터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림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 덕택에 대학 졸업 전부터 사찰의 불화를 그리면서 불화 작품 경력이 26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전국의 중소 사암들에 불화, 단청, 개금, 벽화, 진영 등의 작업을 해왔다. 그 외의 시간에는 개인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전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시회를 가진 작품들은 대부분 일반회화에 속한다.
그가 불화와 일반회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장르간의 벽은 큰 의미가 없다는 자신의 확고한 철학에 따른 것이다.
“순수회화든 종교회화든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일 뿐 결국은 예술행위로 동질성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두 장르를 오가면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더 힘들고 더욱더 치열하게 작업을 해야 하는 난제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 누구에게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제 작품을 좋아해 주는 사람의 관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영(영정)에 집중하고파
“얼마 전 타계하신 중요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삼락자 석정스님께서 생전에 저에게 ‘스님의 상을 그리는 일은 불화를 그리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는 석정 스님의 말을 항상 되새기며 고승들의 진영(혹은 영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스님들의 진영은 초상화의 개념이 아니라 불화의 개념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불화를 통칭 ‘탱화’라 일컬었는데 진영을 두고 ‘영탱’이라고 불렀던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스님들의 모습을 그린 진영은 예배 대상이 되는 불화의 개념이었습니다. 실제로 고려시대로부터 조사 신앙이 보편화 되어 왔고 오늘날에도 조사전이라는 전각에 고승 또는 조사스님들의 진영들이 예배용의 성격으로 모셔져 있기도 합니다.”
그는 진영은 그리게 되는 주인공의 외모와 내면적 인품에 치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영 의뢰를 받을 때 주인공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도 중요합니다. 진영 제작의 어려운 점은 그리는 자체가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주문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왜곡된 주문을 해오면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그림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서 주문자의 기호에 맞춰 제작을 해달라고 하면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게 없지요.”
진영은 이처럼 작업 과정이 어려워서 이 분야의 사람들은 진영 그리는 일을 ‘노예그림’ 그리는 일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는 일반화가들에게는 흔치 않은 이 작업에 빠져 그동안 15위의 진영을 제작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심혈을 기울여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싶단다.
▲시골에서 일과와 계획은
“산중이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도 육체적인 노동을 필요로 할 때가 많아 한시도 게을리 보낼 수가 없습니다. 올해부터 농사를 지었는데 정말 하루가 짧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고성 옥천사 대웅전 후불탱화와 칠성각의 작업을 마치고 이제 산신탱화와 독성탱화를 시작한다. 또 내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초대전을 위한 작업도 진행 중에 있다.
그는 “유럽에서 세계적으로도 이미 인정받고 있는 고려불화풍의 불화로서 활동을 꾸준히 해보고 싶다”며 “또 여러 사찰들에 봉안돼 있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진영들을 한 점 한 점 모사를 해가는 작업도 진행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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