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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한승구 화백 인터뷰]

모든 2 2023. 3. 18. 05:58

[서당 한승구 화백 인터뷰]

 

“내 작품이 어딘가에서 소중한 가치로 존재하면 그게 보람”

 

입력 :  2013-04-06 13:38:07

 
“혼탁한 도시에 염증을 느껴 산골에 조촐한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조용한 산골에서 작업에만 빠져 살다보니 지금은 산사람 다 됐습니다”

1993년부터 10여 년 동안 운영한 동국불교고미술연구원 생활과 미술갤러리까지 정리하고 홀연히 경남 고성의 한적한 산골로 들어가 몇 년째 미술작업에만 몰두하며 지내고 있는 서당 한승구 화백을 만나 예술가로의 삶과 미술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술이란 것이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창조성에 그 가치를 둔다고 할 때 예술적 에너지는 무한한 지평을 열어 갈 수 있습니다”
 
 
"한승구 화백은 인간의 내면을 화면에 옮기는 것을 고집한다. 때로는 단조로움으로 혹은 난해함으로 대중들에게 다가 선다"

 

 

(질문)화가로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한화백은 “현실적인 감각을 체득하지 못해 화가로서의 삶이 평탄하진 않았어요. 고단하고 힘겨워도 운명으로 받아들여 살아오는 동안 감내해야 했던 세월이 길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도 한 눈 팔지 않고 외길인생을 살아왔던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질문)화가로서의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고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선가 소중한 가치를 지닌 채 존재해 주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지요”

한화백은 사람들은 지난 일들에 대해서 관대해 지기도 하고, 수치스런 기억도 세월이 지나면 추억담으로 회고하기도 한다며 본인 역시 한때 여러 매스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당당할 수 없는 개인적인 일로 인해 15년여의 세월 동안 침묵 속에서 지내야했다며 남모를 아픔을 떠올렸다.


 

“지난 15년 동안 과오에 대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보려 노력 중입니다” (질문)화가가 된 계기가 뭔가요?

16살이 되던 해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한승구선생은 주로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실경 스케치를 하면서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불행인지 행복인지 전국에서 열리는 미술대회에 크고 작은 상을 연달아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힘겨운 화백으로의 들어서는 계기가 됐네요”


 

“시작은 동양화였습니다. 10여년 후 불교미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면서 미친 듯 빠져들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어렵게 순수회화의 자유로운 맛을 찾게 됐습니다“ (질문)그럼 주로 다루는 화풍은 무엇인가요?

한화백은 이후 불교미술과 한국화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수묵화, 채색화, 불교회화까지 몇 해 전부터는 서양화까지 시작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나를 두고 정체성이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전 어떤 장르를 떠나 회화 그 자체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화백의 이런 소신에는 변화된 회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부터 동양화가 어느새 한국화라고 불리어지게 됐고, 한국화의 특징인 수묵의 영향은 점차 현란한 색채 속으로 묻혀 진다. 채색화 위주의 한국화가 수묵이나 전통산수화의 영역을 뛰어 넘어 지금껏 자리하던 한국화의 양상을 바꿔 놓게 된다.

서양화와 한국화의 거리는 점차 그 좁아져갔고 오늘날의 한국화 중 채색화의 경우 서양화와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재료나 표현기법 등에서 공통점이 많아졌습니다.

“한국화와 서양화를 구분 짓던 지난날의 개념이 허물어져 회화의 글로벌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화의 다양한 시도와 변화가 크다는 의미겠지요”



“화가들은 흔히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을 갖기 마련입니다. 연고지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질문)주 활동무대나 지역은 어디신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특별한 지역에서 활동했던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부산이 연고지이긴 하지만 서울, 부산, 일본 등 그 영역을 특정할 수가 없다는 한화백은 현실적 계산보다는 자존감 하나로 살아가는 현실감 제로인 내 성향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전 저게 가장 이상적인 작업장소를 꼽는다면 동토의 땅 러시아의 상페테르부룩 아니면 미국의 모하비사막에 자리한 고스트타운이라 불리는 키리코계곡이라고 말한다.

모두 혹독한 추위와 회색빛 하늘, 황량한 사막이 연상되며 곧 ‘고독’이라는 한단어로 함축된다. 한화백의 고독한 화백생활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화백은 현실성 없는 희망일 따름이지만 언제나 망상을 안고 살고 있다. 현실 속의 몽상가 이방인 혹은 주변인쯤으로 자기 스스로를 연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 중국과 국내초대전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또 경남 고성군의 옥천사 대웅전 후불탱화와 칠성각의 칠성탱화를 준비 중 입니다” (질문)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얼마 전까지 영천 은해사 조사전에 신라고승 혜철국사, 근대의 고승 고경스님, 해인사의 일타대선사 세분의 진영(초상화)을 모셨다는 한화백은 지금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중국과 국내초대전을 위한 작업 진행과 신라고찰 옥천사 대웅전 후불탱화와 칠성각의 칠성탱화를 준비 중에 있다고 말한다.

한화백은 불화가 사진으로 걸려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나라 역대 고승들의 진영를 그려 전시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또 전국 사찰에 원본이 아닌 사진으로 걸려있는 불화를 원본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연륜과 마주한 지금에 와서야 겨우 시류에 따라 흐르지 못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 이라는 말에 귀를 열고 받아들입니다 외길 인생을 산다는 것이 힘겹고 어렵지만 한 순간도 예술로부터 눈길을 돌려본 기억이 없다는 서당 한승구화백은 예술가에게 있어 가난과 배고픔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그 상황을 즐기고 이겨내야하는 모순된 기준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술이란 자유로워야 한다. 사조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구속하고 제한하는 맹점을 지니기도 한다"

한승구 화백의 작품은 고여 있고 싶지 않은 강물처럼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고독 속에 창조된다.

휴머니즘을 기저로 한 그의 작품들처럼 한화백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인 행보의 끝자리에 분명 그를 만족시켜 줄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경닷컴 조성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