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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의 대화 /민병도

모든 2 2023. 3. 15. 23:12

 

고독과의 대화/민병도

 

  어제도 오늘도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화실로 찾아왔다. 이제는 예기치 못한 손님을 맞는 일에도 길이 들여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요즈음 찾아오는 이들은 대개 눈 덮인 풍경을 만끽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고자 하는 화가들이거나 글 쓰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반가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대접은 차 한 잔 내어 놓는 것이 전부지만 가끔씩은 이렇게 눈 덮인 창 밖 풍경을 다식 대신 덤으로 내어놓기도 한다.

  ​몇 잔의 차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의 옷깃에 묻혀온 도심의 이야기들이 다 소진되고 나면 한결같이 ‘혼자서 적적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걱정을 쏟아놓는다. 아마도 ‘적적’하지 않느냐는 물음은 ‘외롭지 않느냐’라는 물음의 조심스러운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물음에는 딱히 준비해둔 대답이 없다. 왜냐하면 ‘외롭지 않다’는 대답은 수긍이 잘 안 되는 과대포장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일 것이고 ‘외롭다’는 대답은 지나친 세속적 관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대개는 빙긋이 웃어넘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모두 혼자다. 어느 누구도 내가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끼지 못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게는 생각하지 못한다. 제각각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한 함께할 집단 속으로의 욕망을 저버리지 못하며 자신을 인정해줄 대상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혼자라는 것은 그 자체가 곧 외로움이다. 아무리 우주가 규정해준 질서라 하지만 그 질서를 지켜낸다는 것은 또 그만한 부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외롭다는 의미와 고독하다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외로움이 흔들리는 나무라면 고독은 미동도 않는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버려진 느낌의 혼자는 외로움이지만 찾아 들어간 혼자는 고독이다. 외로움은 우울을 수반하지만 고독은 고요와 창조를 동반한다. 외로움의 친구는 절망이지만 고독의 친구는 희망이다.

​  그러고 보니 도심을 떠나 시골로 내려온 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적적하다는 느낌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는지 모른다.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책도 읽고 강변을 거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혼자라는 게 외로움이 아니라 고요한 자유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갔다. 오히려 시를 쓰는 데 유리하고 그림을 그리는 데 자유로웠다. 이제는 혼자 누리는 고독의 공간이 더 편안하고 여럿이 함께하는 시간들이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기까지 하다.

​  그렇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고독과 친할 필요가 있다.

  ​바깥의 모습만 보면 고독은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롭다. 유리벽처럼 사면이 차단되어 숨이 막힐 듯하고 모든 길이 차단된 어둠처럼 캄캄하다. 하지만 고독의 속으로 들어가면 촛불을 켠 듯 환하고 샘물이 솟듯 언제나 희망이 넘친다.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별들은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언제나 꿈을 그릴 수 있는 하얀 한지가 펼쳐져 있고 언제나 미래로 향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

  ​물을 주면 싹이 자라고 사랑을 주면 꽃을 피우는 고독, 고독은 무엇일까. 어떤 사전의 설명처럼 ‘주위에 마음을 함께할 사람이 없어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느끼는 상태’라면 분명 슬픔의 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만으로는 고독의 참모습에 접근할 수가 없다.

​  고독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우주이며 질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고독해지기 위해 이곳, 시골 강변으로 화실을 옮겼는지 모른다. 고독해지기 위해 도심을 버렸고 고독해지기 위해 도시로부터 나를 격리시켰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고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  지금은 고독과 많이 친해졌다. 신명이 날 때는 고독과 악수를 하고 힘겨울 때는 고독과 대화를 나눈다.

​  외롭고 싶다고 다 외로워지는 것이 아니듯이 고독해지고 싶다고 다 고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고독 속으로 들어가고 싶으면 고독과도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고독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사정하고 설득하여 고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야 한다.

​  고독 속으로 들어가면 밤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상상의 씨앗들이 발아를 꿈꾸며 기다리고 있다. 내가 어떤 말을 건네느냐에 따라서 새가 되고 풀잎이 되고 산이 되고 물소리가 된다. 길이 되고 불빛이 되어 환하게 나의 영혼을 비춰준다.

  ​마침내 고독은 나의 친구이며 후원자이며 나 자신이다.

 

- 『꽃은 꽃을 버려서 열매를 얻는다』 중에서

  (민병도 지음 / 목언예원 / 2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