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도조(睹祖)가 되어주신 주님" 김옥순 작
수도원의 아침식탁/이해인
독서자가 큰 소리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는데
나보다 먼저 엎디어
기도를 바치고 있네
침묵 속에 감사하며
엄숙하게 먹는 밥도
수십 년이 되었건만
나는 왜 더 거룩해지지 못할까
밥에게도 미안하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창가에선 고운 새가 노래하고
나는 환히 웃으며
일상의 순례를 시작하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트위터(2013.12.13)에 '거룩함은 특별한 것을 행함을 뜻하지 않고, 사랑과 신앙으로 평범한 것을 행함을 뜻합니다. '라고 써 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의 묵상 끝에 "주님, 저의 평범한 일상이 사랑의 지향과 행동 안에서 아름답고 비범한 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해 보았습니다.
우리 글방에는 신영복 선생님이 써주신 평상심이라는 글씨가 걸려있고, 성녀 소화데레사의 자서전에 나오는 평범한 비범함에 대한 글귀들, 논어에서 발췌한 수기안인(修己安人)글씨로 만든 족자 등, 오며 가며 볼 수 있는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내게 별도의 종이에 사인을 해 달라고 하면 '늘 푸른 평상심으로 오늘도 새롭게!'라고 써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 어느덧 반세기를 살아왔어도 이 평범한 비범함에 깃든 영성을 겸손하고 인내롭게, 더구나 사랑을 넣어서 살아내기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밥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일 등 모든 것을 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오는 행복은 단지 거기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이웃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단단한 기초가 되어줍니다.
신앙의 여정에서도 좀 더 특별한 것을 체험하고 싶고, 인간관계 안에서도 좀 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고, 문학의 길에서도 좀 더 멋지고 특별하고 싶은 욕심과 허영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괴롭힐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평범하지 않고서는 특별한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날이 그날 같은 평범한 일상이 때로는 지루한 사막처럼 여겨기지도 할테지만, 나를 시간 속에 길들이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바로 평범함을 견디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평범한 길에서 멀리 있어 눈물 흘린 날들도 많았지만 평범함의 행복을 다시 살고 또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날들입니다. 한결같은 마음,평소와 같은 마음이 낳아 주는 수수하고도 순수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주인공이 되도록 제가 사랑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님 오늘도 제가 평범한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십시오. 일상에 대한 충실함이 성화의 첫걸음임을 잊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도하는데 하늘의 흰구름이 예쁘게 손 흔들며 웃어 줍니다.
이해인 수녀 시인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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